[시론] 반야월(半夜月)도 박달재를 넘는구나
[시론] 반야월(半夜月)도 박달재를 넘는구나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3.2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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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아마도 인류 생성과 함께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원시인들이 무슨 노래를 했을 것이냐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소리를 내기 시작한 모든 동물은 말로 의사를 표명한다. 말은 노래가 아니지만 조금 느리거나, 조금 빠르면 운율이 생기고 높낮이를 더하면 노래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을 하거나, 사냥을 나갔거나, 물장난을 치는 시간에도 동물로서의 희노애락을 반사적으로 표현하다보면 거기에 의식하지 않았던 말의 굴곡이 생겼을 것이다. 이것을 가다듬으면 원초적인 노랫가락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개나 소도 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어떤 때는 진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길고 낮은 소리를 내는 수도 있어 노래하는 강아지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하는 수도 있다. 아무튼 인류는 노래가 있음으로서 정서를 순회시켰고 허튼 생활의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는 종족에 따라서 운율이나 곡의 선율이 전혀 다르다. 더운 나라의 곡조와 추운 나라의 곡조는 완전히 기조를 달리 한다. 아프리카의 단순 명료한 음조(音調)와 북아메리카와 같은 음악이 판이하게 표가 나는 이유는 계절의 한난(寒暖)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음악의 본류는 점차 복잡하고 기교가 넘쳐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른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영역이 갈리기 시작한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악기의 다양성과 작곡가의 출현, 악보의 존재 그리고 성악의 본격적인 발달로 고전음악의 장르를 열어왔다.

반면에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서는 각기 특이한 악기와 음악이 발전되어 왔으나 악보는 전해지지 않은 채 구전과 전승(傳承)으로만 이어져 온 느낌이다. 근래에는 우리 국악에서도 악보를 애용한다.

국악만을 유일하게 대중들이 즐기는 음악으로 여겨왔던 우리에게 서양의 클래식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가볍고 경쾌한 현대적 대중음악이 도입된 것은 아마도 일제 강점기였을 것이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우리 민족에게는 애수어린 노래들이 주조를 이뤘다.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기 시작한 대중가요는 배우기 어려운 판소리나 창을 제치고 단연 한국인의 정서를 휘어잡았다. 게다가 구슬프고 애수어린 곡조의 흐름은 우리의 입맛에 딱 맞았다.

판소리를 하던, 창을 하던 간에 그들은 모두 광대에 속하는 천인계급에 속했다. 그러나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는 신분이 공식적으로 상승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 할 만큼 높았다. 타향살이를 부른 고복수는 가히 스타였다. 새로운 연예시대가 열리기 시작했고 요즘 세계를 휩쓰는 K-팝의 전신이 그들이다.

가수들은 이제 최고의 연예인으로 존경받는다. 과거의 쓰라렸던 천대는 간 곳 없고 돈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수많은 가수들이 오고 갔지만 그들의 뒤에는 노랫말을 지어준 작사가와 곡을 붙인 작곡가가 있다.

작곡가와 작사자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 박시춘, 손목인, 반야월 등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더라도 인구에 회자된 지 오래다. 평생을 바쳐 곡을 짓고 노랫말을 만들었다. 가수가 부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반인들은 대개 노랫말에 빠지는 이들이 많다.

물론 음율의 흐름에 따라 흠뻑 젖게 되지만 곡보다 가사에 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요즘 랩이라는 노래가사는 나이든 사람은 알아듣기도 어렵다. 입술만 달싹달싹 하면서 무슨 노래 가락은 나오는데 도무지 알아듣기가 고약하다.

반면에 과거의 유행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은 참으로 가슴에 찡한 게 많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도 전국을 적셨다. 6.25 직후에 대히트를 기록한 ‘굳세어라 금순아’도 피난민의 설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어서 혹한을 이기고 피난 내려온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 중에서도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수복 이후 인민군에게 납치되었던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야말로 창자를 끊어내는 슬픔을 던져줬다. 반야월이 쓴 노랫말은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반야월은 95세를 기록하며 3월26일 천안한 폭침 2주기 날에 세상을 떴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은 우리들의 입에서 떠날 줄 모른다. 박재홍이 부른 ‘울고넘는 박달재’는 만인의 애창곡이며 권혜경을 시켜 부르게 한 ‘산장의 여인’은 낙엽이 흩어진 쓸쓸함과 병든 여인의 애절인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다.

남인수가 말년에 부른 ‘무너진 사랑탑’이나 일세를 풍미한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 그리고 김태희가 불렀던 ‘소양강처녀’는 대통령 후보까지 한 박찬종의 애창곡이다. 그가 일제말기에 친일가요를 낸 오점도 없지 않지만 평생 노랫말로 국민을 웃기고 울린 공로는 이제 저 세상으로 떠난 그를 추모하는데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대중가요의 작사수준을 최고의 경지로 이끌었던 반야월에게는 역시 같은 길을 걷는 자식들이 있어 편안한 길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반야월(본명 박창오)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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