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법원이 부활시킨 대일청구권
[시론] 대법원이 부활시킨 대일청구권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05.3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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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맺어진 한일협정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굴욕외교라는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1964년 타결될 뻔했던 협정은 1년 뒤에야 겨우 성사될 수 있었다. 야당은 물론 전국의 대학생들은 한일협정 반대투위를 결성하고 망국적인 굴욕외교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로 인하여 6.3사태가 일어났고 수많은 대학생들이 투옥되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정부는 정통성을 확보하고 빈약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서 일본으로 부터의 수혈(輸血)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김종필은 김.오히라 메모를 작성하며 독도문제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서 5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일 간에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빌미를 줬다. 게다가 한일협정은 일본의 조선 강점피해에 대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청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강점기 시절의 개인적인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대해서 법원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법원은 수십 건에 달하는 개인 피해 청구소송을 대부분 기각했다. 이미 한일 양국정부가 협정을 통하여 청구권에 대한 일괄처리를 했기 때문에 개별적인 청구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징용으로 끌려가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수십만의 강제노동도, 정신대로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리개 노릇을 했던 위안부들이나 모두 일본으로부터 혹독한 청구기각 판결을 받았다. 한국의 법원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청구권 행사로 일괄타결된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징용 피해자들이 보상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한 것은 1990년이다.

이때는 한일협정 당사자인 박정희정부가 무너지고 신군부의 철권통치도 사라진 다음이다. ‘87년 민주화를 이룩했으나 김영삼과 김대중은 고질적인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군부 잔재인 노태우에게 정권을 헌납했던 때다.

이 소송은 강제징용 피해소송과 강제징병 피해소송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소송, 전범 피해소송으로 확산돼갔다. 1990년에서 2008년까지 18년 동안 일본법원에 제기된 피해소송은 40여건에 불과하다. 그것은 ‘청구권’의 마수가 뇌리를 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구권은 승소에 대한 희망을 잃게 만드는 강력한 제동역할을 했으며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한 명백한 태도를 유보했다. 자칫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한 탓이다. 그러나 일본과 똑같이 유대인을 학살하고 점령국의 국민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독일은 달랐다.

나치정권을 인수인계한 신생독일은 강제노역자 150만 명에 대한 보상책으로 정부에서 50억 마르크를 출연하고 강제노역의 수혜자였던 16개 기업이 공동기금 50억 마르크를 출연했다. 1999년에 시작한 독일의 배상계획은 2001년 성공적으로 보상을 마무리했다.

이로서 개인적인 배상소송을 벗어날 수 있었고 나치학살에 대한 참회의 모습과 함께 선진문화를 자랑하는 독일로 거듭 태어나면서 통일의 번성을 누린다. 반면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인한 청구권 소멸만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며 개인소송을 외면해왔다.

이에 대해서 이번에 한국의 대법원은 개인 청구권은 한일협정으로 소멸될 수 없다고 명쾌하게 판결했다. 그것은 첫째로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를 합법이라고 보는 일본법원의 견해를 전적으로 부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우리 민사소송법 제217조3호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만 외국법원이 내린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며 따라서 일제의 강제동원도 당연히 불법이라는 논리다.

둘째로 강제징용의 주체가 되는 일제시대의 회사들이 전후(戰後) 새로운 법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채무 승계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를 반박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본회사들이 일단 해산절차를 밟은 후 다시 신법인(新法人)으로 등록한 것은 배상채무는 물론 노무자에 대한 미지급 임금채무까지 벗어나려는 꼼수로 ‘회사정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으로 정리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동일회사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명쾌한 논리다.

셋째로 일본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청구권은 한일협정청구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여 오랫동안 끌어왔던 청구권의 효력범위에 대해서 확실하게 판결한 것이다. 넷째로 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해서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인정할 수 없으며,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인해서 개인의 청구권이 없어졌다는 설에 대항하기 어려웠던 현실 문제를 감안하여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다.

이 판결의 주심을 맡은 김능환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했다”고 소감을 밝혀 판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큰 고뇌를 했는지 알게 한다. 한국의 경제사정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맺어진 한일협정이 정당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던 과거사가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본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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