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러시아어로 ‘한국현대시’ 번역한 김태옥, 블라디미르씨
[인터뷰] 러시아어로 ‘한국현대시’ 번역한 김태옥, 블라디미르씨
  • 최승현 기자<모스크바 프레스>
  • 승인 2012.09.0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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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21일 출판기념회

20세기 한국의 현대시가 러시아로 번역 출간됐다.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태옥씨가 ‘초벌번역’을 했고, 동양문학 전공자 블라디미르 이바니츠키씨가 ‘문학번역’을 맡았다.

고려인이 김소월의 시집과 최인훈의 광장 등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적은 있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시인들의 시를 러시아로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 김씨와 블라디미르씨는 한국문화원의 도움으로 9월21일 소박하게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라며 <모스크바 프레스>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 두분은 어디서 만나셨습니까.
“이발소에서요.(웃음) 머리를 깎으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죠.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고 있는데, 블라디미르가 이거 한국어냐고 대뜸 물었어요. 블라디미르는 동양문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한번은 초대받아 집에 갔는데, 벽면이 동양 서적으로 가득차 있더군요.”

한국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했던 김태옥씨는 한-러 번역에 뜻을 두고 러시아에 온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국립사범대학교 박사과정 중 전공교수로부터 “한국문학 작품은 번역이 잘 됐는지, 안 됐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평가하고 비평할 만한 번역물 자체가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 중에 블라디미르를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의기투합에 20세기 한국시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출판까지 생각하지 않았다가 30명의 한국 현대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한 후, 출판까지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2007년 5월 쯤 블라디미르를 만난 후 2년에 걸쳐 33명의 작품을 번역했고 2010년 출판을 결심했다. 김태옥씨는 모스크바 교민사회를 비롯해 관련 지원사업을 펼치는 단체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예상외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러시아인 3명 중 1명은 한국 핸드폰을 쓴다. 최고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러시아인들의 가정에서 메이드인 코리아 전자제품을 찾기는 쉽지만, 한국문학을 찾기는 힘들다.  “저작권 문제가 컸어요. 해당 사항이 없어 우여곡절 끝에 출판 지원금으로부터 2천달러를 받았는데, 저작권료만 3천달러를 지불했어요(웃음).” 개인의 사비를 털어 김씨와 블라디미르씨는 5년 만에 ‘20세기 한국의 시’를 출간했다.

- 한국 시를 번역하면서 느낀 소감은
“러시아시와 한국 현대시의 가장 큰 차이는 시어라고 생각해요. 시를 번역하면서 러시아인들과 한국인들이 갖는 세계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죠. 시어로 표현된 이미지와 메타포가 신선했습니다. 소수이지만 한국의 시를 애호하는 독자층이 있기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블라디미르씨의 말이다. 김태옥씨는 덧붙여 “20세기 한국시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기회가 되면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 어려웠던 점은.
“러시아 운율에 맞추면서도 우리나라 시의 운율감을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유시도 러시아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식으로 작업했죠. 이호시나 이영도 시인의 시조 같은 경우 시조가 갖는 맛깔스런 소리를 그대로 살리려했어요.” 김태옥씨의 말이다. 그는 “힘들지만 재미있었던 작업이었다”고 소개했다. “(블라디미르에게) 계속 시를 읽어줬어요. 마치 여자 친구에게 시를 읽어주는 것처럼요.(웃음),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의 경우 시가 가지고 있는 언어유희를 어떻게 러시아어로 번역할까 고민했지요. 조금 과장하면 블라디미르는 아마 이 부분을 천번 이상 고쳤을 거예요.”

한편 현재 문학 번역을 지원해주는 한국의 정부기관 및 단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이 전부다. 번역 지원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현지 출판과 유통문제도 숙제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작품들(단편 포함)이 러시아어로 번역됐지만, 출판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번역인 양성을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번역 윤리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무성의한 번역, 엉터리 번역, 기존 번역의 표절 같은 것들이 설 자리가 없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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