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꺾는 노래
꽃을 꺾는 노래
  • 박청하 논설위원
  • 승인 2010.07.03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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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漢詩이야기]

 
牡丹含露眞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 띠고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李奎報의 ‘折花行’

折花行: ‘절화’는 꽃을 꺾는다는 뜻이고, ‘행’은 악부시체의 하나. 직역하자면, 꽃을 꺾는 노래라는 뜻.

牡丹含露眞珠顆: ‘모란함로’ 모란꽃에 함초롬히 이슬이 맺힌 것을 표현한 것. ‘진주과’ 진주처럼 영롱하다. 모란은 5~6월경에 꽃이 핀다. 이슬은 해 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한밤중엔 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모란꽃에 이슬방울이 진주처럼 맺혔다니, 초저녁은 아닌, 깊은 밤 잠자리에 들 때인 듯. 활짝핀 모란꽃, 맑은 이슬방울, 이런 개념들은 익을대로 익은 농염한 여인, 낭군 품에 안기고 싶어하는 여체를 연상시키는 시어다.

美人折得窓前過: ‘미인’ 건전하게 신부라고 봐야 옳겠지만, 한시에선 반드시 정처 신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여러 상상을 할만한 곳. ‘절득’은 꺾었다는 뜻인데, 남자가 여인을 품에 안는 것을 상징한다.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묘한 여운을 남기는 대목. 꽃을 꺾어 들고, ‘창전과’ 창 앞을 지나간다.

含笑問檀郞: ‘함소’ 미소를 머금은 것, ‘단랑’은 낭군. 미소를 지으며 낭군에게 묻는다.

花强妾貌强: ‘화강’ 꽃이 낫다. 여기서 ‘강’은 더 낫다라는 뜻. 꽃이 나아요? 내 모습이 더 나아요? 라고 낭군에게 묻고 있다. ‘첩’은 정처인지 애첩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상에서 약간 벗어난 예가 더 감미로울 듯.

檀郞故相戱: 낭군이 짐짓 장난을 친다.

强道花枝好: ‘강도’는 못이기는 체하며 말하는 것. ‘화지호’ 꽃이 좋다는 뜻이다.

美人妬花勝: ‘화승’은 꽃이 낫다는 뜻이고, ‘투’는 질투한다는 뜻. 미인은 낭군의 말을 듣고서 질투심이 발동했다.

踏破花枝道: ‘답파’ 밟아서 깨뜨리다. 꽃을 발로 밟아 짓뭉개는 것. ‘화지’ 꽃가지를. ‘도’는 말한다는 뜻이다.

花若勝於妾: 꽃이 만약에 첩보다 낫거들랑. ‘승어첩’ 첩보다 낫다 라는 뜻이다.

今宵花同宿: ‘금소’ 오늘밤. ‘화동숙’ 꽃과 함께 잠자다 라는 말. 이 시 배경은 늦은 저녁 잠자리 들 시간이다. 낭군은 지금 당장 미인을 품에 안고 싶어한다. 겉으론 농담도 하고 짐짓 여유롭지만, 내면엔 밀고 당기는 숨막힌 긴장감이 깔려있다. 낭군의 애간장을 녹이면서 미인이 짐짓 딴청을 부리고 있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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