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4] 창립 60주년 흔들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연재-4] 창립 60주년 흔들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2.11.1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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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이자 한중수교 20주년의 해다. 하지만 연변은 위기를 맞고 있다. 조선족 인구가 급속히 줄어간다.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조선족이 빠진 자리에는 한족들이 들어오고 있다. 연변의 주도인 연길시에서는 매년 1천800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조선족 자녀의 탈선도 적지 않다. 자치주 해제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월간중앙의 요청으로 9월 초 중국 연변 조선족 사회를 취재했다.<편집자주>

흑룡강신문은 ‘자치주 60년의 명암’을 조명한 기사에서 한국과 중국내 대도시로의 인구유출로 조선족 인구감소와 가족해체 등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연변의 주도인 연길시에서는 매년 1천800쌍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부부 한쪽이 오랜 외지생활을 하면서 생긴 불화가 주된 이유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조선족 자녀의 탈선도 적지 않고, 취직하지 않거나 취직해도 직장에서 오래 버티지 않아 연변에서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처럼 인구유출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자치주의 위치도 위협받고 있다.

연변자치주 조선족 인구는 1995년 86만명에서 2009년 80만명으로 7%가 줄어들었다. 1992년까지 2명을 유지했던 출산율도 2000년 들어 급격히 하락해 0.7명 이하로 떨어졌다. 조선족 자치주 건립초기인 1953년 전체의 70.5%를 차지했던 조선족 인구 비율은 지금은 36.7%로 낮아졌다.

소수민족 비율이 30%를 밑돌면 자치주가 해제될 위험이 있어서 조선족 인구 감소추세가 계속되면 연변이 자치주 지위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용희 주장이 중앙정부에 자치권 반납을 시도했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이용희 주장이 자치주를 반납하는 대신 연길시를 자치주와 같은 지구급으로 격상시켜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소문일 뿐 확인된 얘기는 아닙니다. 아마 이용희 주장이 우리말도 서툴고, 중앙정부의 일에 적극 따라서 이런 얘기가 나왔을 것이란 해석이 있어요. 하지만 자치권 반납은 인민대표회의에서 논의 결정하는 것이지, 주장의 권한에 속한 일이 아닙니다.”

연변주 정부와 연길 시 정부와 밀접히 관련된 일을 하는 박준덕씨의 얘기다. 그는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비서장과 연변과기대 최고위과정 동창회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백두산 관할권이 2005년 연변자치주에서 길림성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서도 자치주 권한이 축소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요. 당시 한국언론은 백두산 관할권은 중국 정부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전된 것으로 동북공정의 일환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중국이 조선족 자치주 경제에 타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도 지역에 대한 영토분쟁의 싹을 자르기 위해 강행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백두산 관할권이 성정부로 넘어간 것이 주정부의 자치권 축소와 별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중국 중앙정부는 백두산과 같은 명승지는 성정부가 관리하는 정책을 취해왔어요. 백두산의 관할권 이전이 이미 계획돼 있었다는 말입니다. 장가계나 황산도 성정부가 관리합니다. 주요관광지를 성정부에서 관리해야 제대로 투자도 하고, 보존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장백산(백두산) 관할권이 길림성으로 넘어간 후 큰 투자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지금 상황이 달라졌어요. 성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으나 시설 운영비도 나오지 않자 관할권을 다시 연변자치주에 넘기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해요.”

박씨는 연변자치주가 백두산을 관할하고 있다면, 백두산에 지금 같은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변자치주 정부가 새로 이전한 청사 앞에는 21만평방미터에 이르는 아리랑광장이 펼쳐져 있다.
연변도서관이 들어선 곳은 아리랑광장 중앙부분. 이곳도 9.3 자치주 성립 기념일을 맞아 성대한 개관식을 치렀다. 천안문광장으로 치면 모택동주석기념관이 있는 자리다. 김삼 조글로 대표의 안내로 아리랑광장을 찾았을 때, 도서관은 개관식 리허설 행사가 한창이었다.

▲ 연변도서관에서. 좌로부터 안미란 부관장, 김용진 과장, 김삼 조글로 대표
도서관 건물 외벽에는 개관식 행사를 위해 ‘지식으로 사회를 조화롭게 하고…’ 등을 적은 현수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리허설 행사 현장에서 만난 김용진 도서관장과 안미란 부관장은 도서관이 아리랑광장에 자리 잡게 된 것을 자랑했다.

“도서관은 부지면적이 1만2천9백20평방미터, 건축면적 6천평방미터입니다. 현재 40만권의 장서가 있는데, 향후 1백50만권으로 늘릴 예정입니다. 한국의 중앙도서관과는 DB를 교류를 하고 있어요. 우리말로 된 도서는 10만권입니다. 한국에서의 도서유입은 통관수속 때문에 어려운 형편이지요.”

아리랑 광장의 도서관 옆에 또 다른 기념조형물도 들어섰다. 연변자치주 제 1대 주장 겸 당서기였던 주덕해의 동상이 그것이다. 동상은 연변대 미술학원의 김영철 작가의 작품이다. “연변에는 지금의 이용희 주장을 포함해 모두 13명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주장과 당 서기를 조선족으로 임명했으나, 뒤에 당서기는 한족, 주장은 조선족으로 임명하는 게 관례화됐지요. 당 서기는 행정방향과 집행원칙을 결정하고, 주장은 실무행정을 집행하는 일을 합니다.”

▲ 아리랑광장의 주덕해 초대자치주장 동상
김삼 대표의 설명을 들으면서 주덕해 동상을 둘러봤다. 주덕해의 원명은 오기섭(吳基燮). 1911년 3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군. 그는 1929년 화룡현 수동촌에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1931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소련동방노동대학 학습을 거쳐 1937년 연안조선혁명군정대학 총무처장을 맡았다. 1945년 조선의용군 제3지대 정치위원을 거쳐 동북국 민족사무처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동북의 벼농사는 조선인이 개척했고, 항일과 해방전쟁의 승리에는 조선인 피의 대가가 크다”면서 중국 조선인들에게 중국국적과 토지소유권을 줄 것을 중앙에 건의했다. 그 결과 1952년 9월3일 연변에서 조선족자치구 정부가 성립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민족이 자치주 정부를 갖고 있는 곳이 됐다.

“주덕해는 초대주장으로 무려 15년을 근무하며 자치주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자지정부를 수립 전에 민족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면서 연변대학도 세웠습니다. 연변대학 총장도 맡았지요.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그는 참혹한 정치적 박해 아래 연변을 떠났고, 1972년 호북성 무한에서 억울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4인방 타도후 그의 명예가 회복됐습니다.”

▲ 연변대학 정문
연변은 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아 주정부 청사앞 아리랑광장에 그의 동상을 세우는 결정을 내렸다. 역사적 공적을 인정한 것이다. 아리랑광장의 주덕해 초대주장 동상은 새로운 감회를 주었다. 연변대학을 찾은 것은 순전히 주덕해 동상 때문이었다. ‘민족대학’을 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던 것이다. 연변대학은 새 학기 개강을 맞아 운동장마다 군사훈련 대열로 가득 차 있었다. 신입생들이 받는 군사훈련이었다.

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남녀 학생들을 지나치면서 대학의 언덕을 오르자 항일무명용사비가 있는 숲에 닿았다. 항일투쟁 과정에서 스러져간 이름 모를 용사들을 기린 비는 솥두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정판룡 문학비와 부딪쳤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내 자신의 전도를 위해 동포들의 부름을 거절할 용기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1960년 5월초 연길에 살구꽃 배꽃이 필무렵 나는 연변대학을 잘 꾸려보려는 꿈을 안고 북경을 떠나 북으로 가는 열차에 앉았다-<고향떠나 50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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