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술을 마셔도 너무 마신다
[시론] 술을 마셔도 너무 마신다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2.11.16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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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기분 좋다고 마시고, 언짢다고 마신다. 술이란 이처럼 묘한 것이다. 가슴에 복 바쳐 오르는 설움도 한꺼번에 날리고, 묵직했던 스트레스도 언제 그랬더냐 싶게 훌훌 털어 버리는 게 술이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 답답한 마음에 한 잔 꺾어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만 간다.

술에 의존하여 현실을 잊어보겠다는 안타까움이 그 속에 베어 있지만 술에서 깨어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는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술뿐이다. 머리 아픈 문제만 생기면 한 잔 기울이고 본다. 습성이 생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른다. 알코올 중독을 정신병의 일종으로 취급하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불안을 가져오고 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점점 증대되고 있는 온갖 범죄의 근원이 이들 중독자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 만연하고 있는 성범죄자의 80%이상이 술을 핑계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 폐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과거에는 성범죄자들이 재판을 받을 때 “술에 취해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하면 ‘정신미약’으로 취급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일자 요즘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술’을 핑계 대더라도 참작하지 않도록 결정하여 애꿎은 술 탓이 없어지게 된 것은 술을 위해서 다행이다.

술은 어떤 면에서 소통의 대명사다. 말이 없던 사람도 술만 들어가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말이 많아진다. 속내를 푸는 것이다. 이것은 여자고 남자고 똑 같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마셔왔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여자들도 남모르게 술을 마셔왔다.

구중궁궐 깊숙한 왕비전(王妃殿)에서도 술은 성행했다. 수많은 후궁에 둘러싸인 왕이 젊은 왕비를 돌보지 않고, 왕비는 외로워 독수공방을 하노라면 별수 없이 상궁 나인을 불러 몰래 술에 곯아 떨어져야만 잠을 이뤘다. 이런 날이 허구 헌 날 계속되다보면 이제는 술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왕비의 투기심이 극악을 부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예전부터 좋은 술이 많았다.

전주 이강주나 경주 법주 같은 술은 지금도 좋은 술의 대명사처럼 인구에 회자한다. 어디 그뿐이랴. 전국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특색을 나타내는 술이 넘쳐흐른다. 우리나라의 전통주인 막걸리는 예로부터 농주(農酒)로 불려왔다. 대통령 중에서 농촌을 찾아 논두렁에서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신 대통령은 유일하게 박정희 뿐이다.

그러나 그 뒤에도 막걸리는 시중에서 크게 팔리는 술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발효주로서 막걸리의 효능이 소개되면서 거꾸로 일본에서 붐이 일어났다. 한국 막걸리는 그 덕분에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되었으며 수출효자 품목에도 끼었다.

이렇게 좋은 술이 많은 한국에서 어쩌자고 양주는 그렇게 많이 팔릴까. 인구 5000만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 17년산 이상의 고급 위스키를 69만8000상자를 소비하여 세계1위의 반열에 올랐다. 그것도 2001년부터 11년째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당당히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세계 12위의 경제대국답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인구 3억1000만 명인 미국은 겨우 47만8000상자에 그쳐 우리보다 20만 상자가 부족한 2위에 머물렀다. 인구 13억4000만에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성장한 G2 중국은 23만4000 상자밖에 안 된다. 인구 1억3000만 명으로 우리보다 머릿수는 8000만이 많다는 일본은 쩨쩨하게 14만 상자를 채웠을 뿐이니 과연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부어라, 마셔라 지화자 좋다고 상다리를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룸살롱에서 기쁨 조를 사이에 두고 폭탄주를 돌리는 호기를 부려야만 대접이 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고급 위스키의 한없는 확장을 도와준 게 아니겠는가. 술이 가지고 있는 풍류는 선비의 자랑이지만 술에 중독 되어 허우적대는 한국의 실태는 너무나 부끄럽다.

가뜩이나 명품에 맛들인 한국인을 위해서 프랑스의 루이뷔통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자기 나라 국민을 위해서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졸부의 나라로 비취는 한국에서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고 하니 장사해 먹기 얼마나 수월한가.

위에서 거론한 술은 위스키에 국한했지만 국민주 ‘소주’에 이르면 더 할 말이 없다. 냉수 마시듯 들이 킨 소주가 한 사람 앞에 50병꼴이다. 마셔도 너무 마셨다. 가뜩이나 식성이 서구화하면서 우리나라는 암(癌)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여기에 술로 인한 암 유발의 대문을 활짝 열었으니 병원에 넘쳐나는 환자들로 건강보험이 축나고 있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이라고 한다. 실제로 한두 잔 반주(飯酒)는 기분을 풀어주고 대화가 부드러워진다. 당연히 그렇게 마시면 건강에도 좋고, 상대방에게도 예의를 갖춘 것이 된다. 이 단순한 공식을 잊어버리고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며,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면 이는 망신을 떠는 지름길이다. 머잖아 한 해가 저문다. 망년이다, 송년이다 온갖 핑계를 대고 마실 일뿐이다. 스스로 자제하는 술 문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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