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5)
[과학문화유산] 우리 유산, 재발견(5)
  • 이종호<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 승인 2014.01.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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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부족이 과학성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도깨비감투』도 있다. 머리에 쓰면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마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몸에 등거리를 걸치거나 풀잎을 지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은 마술적 물건을 얻게 된 방법은 여럿이다. 도깨비에게서 직접 얻는 방법도 있고 도깨비가 장난하다가 버려 둔 것을 갖고 온 경우, 나무 밑에 누워 있다가 곤충이 떨어트린 풀잎을 줍게 되는 경우도 있다. 도둑질의 형태도 시장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 외에 남의 집 제사음식을 훔쳐 먹는 경우도 있고 형제간의 선악대립을 담은 시나리오도 있다. 이 유형은 서양의 ‘요술 모자’와 같은 내용이며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도깨비감투』는 서양의 투명 인간과 같이 인간의 육신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인공은 투명 인간이 되었음에도 남을 해치거나 감투를 이용하여 권력이나 정권을 잡으려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잔치 집이나 제사 집 음식을 훔쳐 먹는 정도이고 관가에 끌려가서 곤욕을 치르거나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투명 인간 이야기는 특히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긍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충족하는 과정에 부당한 일을 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권선징악이 주류를 이루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현대감각에 맞춘답시고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을 탈취하는 등의 일을 꾸미게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한민족이 도깨비를 창안했다는 점이다. 중국에도 도깨비와 유사한 것이 있지만(망량(魍魎)이나 이매(魑魅) 또는 독각자(禿脚子)) 이들은 사람을 흘리는 정체불명의 요괴다. 일본에도 오니나 천구(天狗) 등은 신이나 귀신,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말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자적 노선을 걸어 온 창작품으로 유럽의 요정과 같은 존재이다.

도깨비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도깨비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도깨비 팀’이나 ‘도깨비 방망이’라는 말이다. 시즌 중에 갑자기 바닥에서 연승을 하거나 연패를 당할 대 도깨비라는 별칭을 붙여준다. 이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성적이 종잡을 수 없는 팀이거나 타율의 기폭이 심한 선수 등을 지칭할 때 붙여준다.

도깨비 방망이란 말에는 매우 짙은 해학이 담겨있다. 그 누구도 방망이 속에 도깨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들은 도깨비를 설화나 소설에 등장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단군신화의 이야기도 과학적인 관찰이 돋보인다. 단군신화의 요지는 인간이 되려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 100여일을 동굴 속에서 먹으라고 하는데 곰은 이 약속을 지켜 인간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곰의 생태를 보면, 곰은 기본적으로 초식동물이자 잡식 동물이므로 마늘이든, 쑥(쑥은 기호성이 높다)이든 무엇이든 잘 먹는다. 그러나 철저한 육식 동물인 호랑이는 풀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기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배가 고픈 경우 호랑이도 풀을 먹는다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지만 호랑이가 풀을 먹는 것은 소화를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다.

두 번째로 한반도의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지루한 동굴생활 100일 정도야 곰이 겨울잠 자는 기간을 생각하면 긴 시간도 아니다. 반면에 호랑이는 겨울이라도 먹어야 하므로 절대 한자리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곰은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새끼를 안고 다니기도 한다. 겨울잠을 자고 새끼를 안고 나오는 곰은 멀리서 보면 그대로 인간 여성의 형상이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자주 발견되었다는 설인(雪人)이 사실은 대형 곰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하튼 호랑이와 곰 중에서 인간화 시키려면 곰이 적격이라는 설명이다. 최종욱은 단군신화는 신화이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소설이라 칭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동물 생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주변 자연에 대한 관찰이 돋보이는 것으로는 까치집 이야기도 있다. 까치는 서조(瑞鳥)로 한국인들이 극히 우대했다.

 
까치와 같은 부류인 까마귀는 귀신을 볼 수 있다하여 까마귀가 울면 불길을 예감하였지만 까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인식했다. 신라 효공왕은 성 안에 까치집이 몇 개나 되는가 정례적으로 보고하게 했다. 임진왜란 때 피난 가 있는 의주 행궁 남쪽 느티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자 기쁜 소식이 올 것을 확신하고 선조와 신하들이 맞붙들고 울었다고 한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盧)씨가 제주도에 유배돼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제주도에는 없는 까치가 배소(配所)에 와서 요란스럽게 울었는데 그날 인조반정의 소식과 더불어 유배에서 풀렸다고 한다.

조선 성종 때의 일이다. 성종이 민정시찰 차 밤나들이를 하는데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부인이 나무토막을 입으로 물고 까치 소리를 내니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지아비가 역시 까치 소리로 응수하며 그 나무토막을 입으로 옮겨 받았다. 사연을 물었더니 자신이 50년 되도록 과거를 치렀으나 번번이 낙방하므로 집 남쪽에 있는 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으면 급제한다는 말을 듣고 두 내외가 까치가 되어 까치집을 짓고 있는 중이라 했다. 성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를 과거에 급제시켜주었다고 한다.

까치가 이와 같이 길조로 인식되었으므로 한국인들의 까치에 대한 관찰은 그야말로 놀랍다. 집안에 까치가 집을 지으면 과거에 급제하므로 많은 사대부 집에서 인공적으로 까치집을 집 안의 울안에 뜯어 옮겨주곤 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런데 까치집에 상록수인 전나무 잎 하나를 깃(둥지) 속에 꽂아 놓지 않으면 까치가 강제이주당한 집에 들어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까치집에 전나무 잎을 넣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겨울철에 많은 새들이 둥지 속에 파란 나뭇잎 하나씩을 꼭 넣어 둔다. 독수리의 경우는 특이하여 매일 같이 푸른 잎을 갈아두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새들의 이런 특성을 현대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푸른색 잎에는 ‘테르펜’이란 물질이 있는데 이들이 각가지 병원이 되는 미생물을 죽이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선조들이 푸른색 잎에 이런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은 몰랐겠지만 새 둥지에 푸른색 잎을 넣어 둔다는 것은 상당한 관찰력의 소산임은 물론이다. 물론 선조들은 푸른색 잎의 효용을 잘 알고 있었다. 떡갈잎에 떡을 쪄먹고 소나무잎으로 송편을 빚어 먹는데 이것은 나뭇잎에서 발산되는 물질이 내장 속의 세균을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사무가인 ‘바리공주’도 만만치 않은 상상력을 보여준다. 일명 ‘바리데기’, ‘오구풀이’, ‘칠공주’, ‘무조전설(巫祖傳說)’이라고도 하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베풀어지는 ‘지노귀굿’, ‘씨끔굿’, ‘오구굿’, ‘망묵이굿’ 등의 무속 의식에서 구연된다. 바리공주는 약 20여 편이 채록되었는데 각 편의 내용은 전승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매체로 다음 내용을 기본으로 한다.

① 옛날 국왕 부부가 딸만 계속 일곱을 낳는다.
② 왕은 일곱째로 태어난 딸을 내버린다.
③ 버림받은 딸은 천우신조로 자라난다.
④ 왕이 병에 든다.
⑤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신이한 약물이 필요하다.
⑥ 만조백관과 여섯 딸이 모두 약물 구하는 것을 거절한다.
⑦ 버림받은 막내딸이 찾아와 약물을 구하겠다고 떠난다.
⑧ 막내딸은 약물 관리자의 요구로 고된 일을 여러 해 해 주고 그와 혼인하여 아들까지 낳은 뒤 겨우 약물을 얻어 돌아온다.
⑨ 국왕은 이미 죽었으나, 막내딸은 신이한 약물로 아버지를 회생시킨다.
⑩ 그 공으로 막내딸은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일반적으로 바리공주는 오구대왕이 다스리는 불라국의 공주로 태어난다. 오구대왕은 인물과 재주가 출중한 젊은 임금으로 열일곱에 길대부인과 결혼하는데 아들을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째도 딸이었다. 이들이 딸만 일곱을 낳은 이유가 혼례일을 잘못 정하였기 때문으로 이는 과거에 인간의 길흉에 어떤 내재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하튼 바리공주는 죽은 아버지를 살려 내는데 이는 무당이 가진 권능 중에서 병을 다스리는 의사로서의 권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의술이라 볼 수 있는데 바리공주가 더욱 힘을 받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를 살려 낸 효행을 하였고, 사회적으로는 국왕을 부활시켜 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 공훈을 세웠다는 점이다.

즉, 개인적 효녀로서의 바리공주가 국가의 공신으로서 집단적 추앙을 받는 영웅이 되고, 다시 모든 사람의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바리공주가 현세와 내세를 관장하는 영속적인 인물이 된다. 바리공주는 지옥에서 헤매는 귀신들을 극락왕생하도록 빌고 이승으로 오면서 저승으로 가는 배들의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생명수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초월적인 존재이므로 우리나라 무속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숭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바리공주가 어떤 연유로든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아이디어 정도는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바리공주가 약을 구하러 떠나갈 때 아버지가 주는 물건이 심상치 않다. 그는 딸에게 비단으로 만든 옷, 무쇠로 만든 질방, 주령, 신 그리고 지팡이를 준다. 옷을 제외하면 모두 철로 만든 물건인데 이들 하나하나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질방은 액체를 담는 그릇이므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주령(방울)은 무당 혹은 제사장이 의식에 사용하던 무구다. 주목되는 것은 무쇠 지팡이로 짚기만 하면 천리, 이천리를 가는 축지법을 부린다. 지팡이는 몸을 의지하는 기능과 함께 고대로부터 장로(長老)나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지물로 여겨 왔는데 일반적으로 사찰의 큰스님이나 지니는 것으로 일반 승려들은 소유할 수 없다.

바리공주가 철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신비한 힘을 지닌 영적인 존재를 의미하는데 실무적인 면에서 바리공주가 생명수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므로 빠른 시간에 곳곳이 찾아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세상은 넓으므로 바리공주가 이들을 찾을 수 있도록 무기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축지법을 사용할 수 있는 철지팡이이다. 무속 즉 미신이라 하여 경원하기도 하는 바리공주 이야기만 해도 그 속에 담겨있는 상상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작품은 비교적 과학적 지식이 필요한 내용을 주제로 삼지 않았으며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가 과학기술면에서 뒤떨어진 요인이었다고 줄기차게 비판을 받아왔지만 『흥부전』, 『옹고집전』, 『도깨비감투』, 『홍길동전』, 『바리공주』등등을 보면 우리 조상들도 많은 작품 안에서 공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상상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외국 것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앞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우리 것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보 부족이 과학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유산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적은 상태에서 우리의 유산에는 과학성이 없다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느 유산에 과학성이 있는가를 찾는 것이 보다 시급한 일이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우리 유산일지라도 그 속에 깃들어 있는 과학성을 꼼꼼히 살펴보면 남다른 선조들의 과학성에 새삼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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