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49] 문화유산 종주국은 변할 수 있다
[삼강만평(三江漫評)-49] 문화유산 종주국은 변할 수 있다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7.17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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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TV에 인센티브 투어로 한국에 온 1,000명의 중국 관광객이 한복을 입고 좋아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한류에 도취되어 왔으며 한복도 한류의 한 내용이라는 의미를 피력했다. 문화유산의 종주국에 관한 재미나는 이야기꺼리라는 생각이 들어 본 문장을 써본다.

일본인이 편찬한 <한화대사전漢和大辭典>의 맨 뒤에 여러 페이지의 사진과 그림이 있다. 거기에 중국 한漢나라 때의 복장이 수록돼 있는데 우리 한복韓服과 매우 비슷하였다. 무슨 영문인지 그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필자는 은퇴 후 중국 하남성河南省 남양시南陽市 남양사범대학에서 1년간 초빙교수로 있은 적이 있다. 사범대학은 와룡가臥龍街에 있으며 동쪽으로 약 500미터 떨어진데 와룡공원이 있다. 바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출산出山하기 전에 ‘와룡선생’으로 불리며 있던 곳이라고 하여 나도 이제는 은퇴했으니 이곳에서 은거생활을 한다는 감이 들어 별다른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뜻 깊은 점은 그곳의 한화석漢畵石전람관을 본 것이다. 화석은 문짝만한 돌 판에 그림을 조각한 것이다. 호족豪族 가문의 사람이 죽을 때 같이 매장했던 화석을 무덤으로부터 발굴하여 전람관에 집중시켜 놓았다. 동한東漢은 중국 역사상 호족豪族 지주계급의 번성기이며 전국의 호족이 주로 남양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 화석의 80%이상이 남양에 있다고 한다.

화석에 나타난 복장은 옷이 무릎 밑까지 드리웠고 옷깃은 왼쪽 겨드랑이 부근에 헝겊고름을 매는 것으로 연접된다. 우리 한복과 거의 같다. 당연 문화적으로 훨씬 선진적인 중국의 복장이 한반도에 파급되었을 것이지 벽지 한반도의 복장이 중국으로 전파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한평제漢平帝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漢四郡을 세워서부터 서진西晉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317년간 한반도의 대부분지역(북부)은 중국의 식민지였다. 지금 한국인이 선진국에 가서 며칠만 관광하고도 그 나라의 옷을 사 입고 돌아와 우쭐대는데 317년간 중국의 식민지로 있은 한반도가 중국식 복장을 배워 입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 후 중국의 옷은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옷깃의 연접 부위가 옆으로부터 가운데로 옮겨지며 단추로 고름을 대체했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북위北魏(5~6세기) 때 완성되었다. 그러나 한복은 2,000년 전의 양식을 기본상 보존하며 끊임없이 더 예쁘고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한복은 한국의 복장이다. 말하자면 중국의 유산이 한국의 유산으로 변한 셈이다.

한국의 유산이 중국의 유산으로 변한 것도 있다.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이 그의 전형적인 예이다. 우황청심환은 한국 동의의 약이었으며 중국에는 본래 없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보면 알다시피 그때 조선의 사절단이 중국에 가면 중국인들이 한국의 우황청심환을 선물로 받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후에 무슨 영문인지 한국의 우황청심환이 없어졌다. 1980~90연대에 세계 각국의 우리 동포와 한국인들이 중국의 우황청심환을 얼마나 사갔는지 모른다. 후에 한국에서 새로이 우황청심환을 제조하기 시작했는데 원래 이름을 중국에 빼앗겼으므로 부득불 ‘우황청심원’이라 이름 지었다. 한국의 문화유산 우황청심환은 완전히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돼버렸다.

지금 중국 티베트인이 머리에 쓰는 삐딱하게 생긴 털모자는 본래 영국 군인의 모자였다고 한다. 몇 백 년 전 영국군의 한 개 소부대가 인도로부터 티베트에 쳐들어왔다가 반항에 부딪쳐 철수할 때 버리고 간 모자였다. 그것을 티베트인이 주워 썼으며 또한 자체로 만들어 지금까지 써 왔다고 사회학 학자는 고증해냈다.

필자는 몇 년 전 사천성四川省의 관광명소 구채구九寨溝 관광간 적이 있다. 구채구는 티베트인 마을 9개로 조성된 것인데 판매하는 상품이 거의 다 티베트 풍격의 제품들이었다. 영국인을 비롯한 구미 사람들이 상기 삐딱한 티베트 모자를 사거나 쓰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몇 백 년 전의 자기네 것인데 말이다. 역시 영국의 문화유산이 티베트의 문화유산으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은 역사의 범주에 속하므로 특정적인 역사시기에 예속된다. 1400년 전에 당나라에 잡혀간 고구려인 20만 명이 지금은 200 만 명쯤으로 불었을 것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잡혀간 조선인 60만 명이 절반쯤 돌아왔다고 해도 지금은 500만 명쯤으로 불었을 것이다. 이 7백만 명은 당연 지금은 중국인이다.

문화유산 역시 역사의 범주에 속하며 한 역사시기에는 A국 A민족의 유산이다가 다른 한 역사시기에는 B국 B민족의 유산으로 전이될 수 있다. 문화유산의 종주국이 이렇게 변한 예가 인류 역사상 수없이 많은 것이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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