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62] 역사<삼국지>와 소설<삼국지>
[삼강만평(三江漫評)-62] 역사<삼국지>와 소설<삼국지>
  • 정인갑<중국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5.02.12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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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삼국지·三國誌>와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 두 가지 책이 있다. 한국인들이 즐겨 보는 <삼국지>는 사실은 중국의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그러면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어떻게 다른가?

1. <삼국지>는 역사책이고 <삼국지연의>는 소설책이다. 중국에는 2천여 년 전의 <사기·史記>로부터 <명사·明史>까지 24가지 역사책 즉 ‘이십사사·二十四史’가 있는데 국가에서 편찬했기 때문에 ‘정사·正史’라고 하며 <삼국지>는 그 중의 네 번째 정사 책이다.

서기 220년부터 280년까지의 중국은 위(魏)·촉(蜀)·오(吳) 세 나라가 대치되어 있은 시기인데 이를 중국 역사상 ‘삼국시기’라고 한다. <삼국지>는 이 시기의 역사를 전문 기록한 책이다(동한 말년의 역사도 다소 포함돼 있음). 저자 진수(陳壽)는 삼국 시기에 태어나 위에서 벼슬을 한 적이 있으며 진(晉)이 오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할 때 이미 48세였다. 그는 삼국시기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여 <삼국지>라는 정사 책을 썼다.

<삼국지>는 비록 정사이지만 진수 개인의 힘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자료도 풍부하지 못하고 내용도 충분하지 못하다. 또한 다른 정사에 있는 ‘지(誌)’나 ‘표(表)’도 없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배송지(裵松之)가 남조(南朝) 송문제(宋文帝)의 명령에 다라 주해를 달았다. 140여종의 역사책으로부터 자료도 보충하고 오류도 바로 잡았는바, 주해의 편폭이 <삼국지> 원문을 초과할 정도이다.

<삼국지연의>는 <삼국지> 등에 근거하여 엮은 소설이다. 수나라 때부터 이미 삼국에 관한 이야기가 민간에서 생기기 시작하여 송나라 때는 삼국의 옛말을 전문적으로 하는 연예인이 생겼으며 원나라 때는 이를 무대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원말·명초의 나관중(羅貫中)이 상기의 것들을 집대성하여 소설 <삼국지연의>를 창작해 냈다. 후세에 <삼국연의>라 부른다.

2. <삼국지>는 다른 정사와 마찬가지로 인물 중심의 전기(傳記)로 씌어져 있다. 그러나 <삼국연의>는 스토리 중심으로 씌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인물의 전반 과정을 단번에 파악하려면 <삼국지>를 보아야 하고 어떤 역사사실을 단번에 파악하려면 <삼국연의>를 보아야 편리하다.

3. <삼국지>는 정사이므로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고 <삼국연의>는 문학 작품인 이상 허구가 많다. 조조는 정치, 군사, 인재 등용 등 모든 면에서 매우 탁월한 인물이다. 삼국을 위가 통일시킬 수 있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역사 본래의 모습이다. <삼국지>는 위 본위로 씌어져 있으므로 위에 관한 편폭도 많고 조조를 힘써 부각했다. 그러나 <삼국연의>는 촉 본위로 돼 있으며 유비, 제갈량은 힘써 부각했으나 조조를 극력 폄하하였다. 두 책을 면밀히 대조해보면 많은 허와 실의 차이를 많이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 차이점은 위 본위냐, 촉 본위냐 이다.

4. 중국의 정사는 진실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의 부친은 제갈량이 마속(馬謖)을 죽일 때 그에 연루돼 곤형(髡刑, 머리칼을 베 버리는 형벌)을 당했다. 그러므로 <삼국지>에서 제갈량을 폄하(貶下)했다는 설이 있으나 세심히 분석해본 결과 <삼국지> 전반에 제갈량을 헐뜯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삼국지>의 진실성에도 제한성이 있다. 위·진 위정자를 과대 찬양하거나 그들의 잘못을 감추어준 것들이 또한 뚜렷하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당시의 황제까지 비판한 예와 비기면 차이점이 많다. 저자 진수가 위에서 벼슬을 했고 진나라 때 집필한 원인이 작용했다. 중국의 24사는 다 다음 왕조 때에 이전 왕조의 역사를 쓰는 것이 관행이다. 진(晉)왕조는 비록 삼국시기 위(魏)의 다음 왕조이지만 진왕조의 왕족 司馬씨는 이미 위의 실권을 장악하였으므로 위의 연장선에 위치한 셈이다. 진의 진수가 <삼국지>를 집필한 자체가 문제이다.

5. <삼국연의>를 읽은 독자는 인구비례로 보아 한국이 중국보다 10배 이상 많다(중국의 1만 인구당 <삼국연의>를 본 사람이 10명이라면 한국은 100명이나 될 듯하다). 그러나 삼국시기의 정수(精髓)를 아는 한국 사람을 필자는 보지 못했다. 삼국시기의 정수는 중국의 호족(豪族)지주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양반사회가 붕괴되고 서족(庶族) 지주계급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삼국시기의 수많은 호걸―원소, 원술, 공손찬, 유비, 손견 등은 모두 왕족·호족·양반 계층이고 유독 조조(환관의 양아들)만이 쌍놈 계층이다. 그러므로 독자나 저자 나관중의 아무리 유비가 승자이기를 바라지만 최종 승자가 조조일 수밖에 없다. 양반사회가 붕괴되고 쌍놈이 정치무대로 등장하는 대세와 일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1,800년 전부터 양반사회가 무너졌지만 한국은 한일합방 때에 와서야 양반사회가 무너졌음을 음미해보면 의미심장하다.

한국인들이 역사 <삼국지>를 보지 않으므로 이런 시대의 정수를 감지할 수 없는 유감을 낳는다. 그러므로 한국 독자, 특히 정치를 하고자 하는 자라면 역사 <삼국지>를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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