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종대왕의 문제해결 방식 담은 '8자 요결'
[칼럼] 세종대왕의 문제해결 방식 담은 '8자 요결'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5.04.22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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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 여주대 교수 강조..."광문(廣問) 서사(徐思) 정구(精究) 전치(專治)"

▲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널리 묻고, 천천히 생각해서, 깊이 파고든 다음, 오로지 매달려라.” 이런 뜻의 ‘광문(廣問) 서사(徐思) 정구(精究) 전치(專治)’가 세종대왕이 문제를 해결하는 여덟글자의 요결이었다는 내용의 강의를 들은 것은 4월19일 한국지도자아카데미에서였다.

이날 세종대왕 리더십 전문 연구자인 여주대 박현모 교수가 ‘세종의 승계와 제가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면서 세종대왕의 문제해결 방식을 위의 8자 요결로 정리했던 것이다. 박교수는 세종의 문제풀이 방식을 담은 책 <세종이라면>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박교수는 세종대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집안을 다스리는 게 더 어렵다고 한탄했다는 세종실록의 내용을 소개했다. “천하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물론 큰 일이지만, 집안을 다스리는 일이 제일 어렵다(治國平天下雖大, 齊家最難)”고 했다는 것이다.

세종은 특히 아들과 며느리 문제로 속을 썩였다. 속을  가장 많이 썩인 아들은 넷째인 임영대군이었다고 한다.그는 악공의 딸인 어린 기녀를 첩으로 들이거나 궁궐 여종과의 스캔들을 일으키는가 하면, 정신병 증세가 있는 아내 남씨와의 이혼 문제로도 아버지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큰 아들인 세자(나중에 문종)의 부인들도 대궐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첫 세자빈은 정신병으로 결국 쫓겨났고, 두 번째로 들어온 세자빈도 궁궐 내에서 동성애 스캔들을 일으켜 세종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가최난(齊家最難)이라고 한탄한 세종이기는 하지만, 이순신장군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북방을 개척하는 등 조선왕조 통틀어 최고의 임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박교수는 세종이 태종의 셋째아들이면서도 세자인 양녕대군과 둘째인 효령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몇가지 큰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나는 호학불권(好學不倦). 공부를 좋아해서추울 때든 더울 때든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적인 지도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다스림의 본질을 안다(識治體)는 것. 의견을 개진할 때도 사람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을 낼 정도로 사물의 본말을 꿰고 있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세종은 과하지 않고 적당할 때 멈출 줄 아는 ‘적중이지(適中而止)’의 능력도 겸비해 국왕의 바람직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고 박교수는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종의 문제해결 스타일을 위의 8자로 정리했던 것이다. ‘광문(廣問) 서사(徐思) 정구(精究) 전치(專治)’라는 세종의 문제해결 방식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물론, 누구든 가슴에 늘 새겨놓아야 할 명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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