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02] 표해록(漂海錄)
[아! 대한민국-102] 표해록(漂海錄)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6.02.0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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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표해록은 조선 성종 시대 문신이었던 최부(崔簿,1454~1504)가 1487년 제주에 추쇄경차관(부역이나 병역 기피자,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는 임무를 맡은 관리)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황망히 고향 나주로 떠났던 뱃길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 중국을 거쳐 돌아오는 과정을 적은 중국견문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최부 일행 43명은 큰 풍랑을 만나 바다를 떠돌다가 중국 절강성(浙江省) 해안에 닿게 된다. 해적에게 잡히고, 왜구로 몰리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중국 땅에 도착했다. 중국 땅에 도착해서도 왜구로 오해받는 등 난관은 계속되었지만, 최부는 조선 선비의 의연함으로 이를 극복하고,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를 통해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 이동한 뒤, 다시 육로를 거쳐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148일만에 조선 땅으로 돌아왔다.

중국 명나라 당시 중국의 강남과 강북, 그리고 요동지역을 모두 가본 조선인은 최부 일행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외적의 정탐을 막는다는 취지로 외국인들의 강남지역 여행을 금지했다.

최부가 귀국하자 그의 진귀한 여행기를 듣고 감동받은 성종은 부친의 상을 뒤늦게나마 치르러 가야한다는 최부를 눌러앉힌 뒤 먼저 기록을 정리할 것을 명한다. 이때 8일 만에 엮은 견문기록이 ‘중조견문일기(中朝見聞日記)’인데, 이것이 30년 뒤인 중종 때 「표해록」으로 간행돼 일본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현재 국내외에는 8종의 「표해록」관련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중세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3대 중국견문록으로 꼽힌다. 최부는 항저우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전 구간을 주행한 최초의 조선인이었고, 대운하의 운용과 실태에 대해서도 동시대 중국인보다 훨씬 더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최부 일행은 바다에 표류하면서도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그때마다 낱낱이 생생한 기록으로 적어두었고, 그것을 「표해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정리한 것이다.

“물 위에 드러난 것만 해도 기다란 행랑채와 같고, 거품을 뿜어내어 하늘에 솟구치는데, 물결이 뒤집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표류하던 중에 고래를 만난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노를 저어 영파부성(寧波府城)에 이르니 물을 가로막아 성을 쌓았는데, 성은 모두 겹문, 문도 모두 겹층, 문 밖도 겹성, 그리고 수구(水溝) 또한 겹성이었습니다. 모두 홍예문을 설치했는데, 문에는 쇠로 만든 문짝이 있어 배 한척이 드나들만 하였습니다. 다시 노를 저어 성안으로 들어가서 상서교에 이르니, 다리 안 강의 넓이는 100여보나 될 만하였습니다.” 이는 표류 끝에 도착한 영파성의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 견문록 가운데는 중국의 인문지리에 대한 지식은 물론 중국 관리와의 문답(問答) 내용이 나오는데, 예컨데 조선의 역사와 풍습에 대해서는 일목요연하게 답변하면서도, 호구(戶口)나 병제(兵制), 전부(田賦) 등에 대해서는 자신은 유신(儒臣)이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다고 회피하는 등 국익을 생각하여 말을 삼가는 모습이 역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요컨데 조선의 관리이자 지식인으로서의 인문학적 소양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그가 표류 전에 이미 「동국통감」과 「동국여지승람」의 제작에 참여한 당대의 젊은 학자였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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