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수석부의장 "정부는 북한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이기택 수석부의장 "정부는 북한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1.05.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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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의 생명수련원에서 본지와 인터뷰

맨앞이이기택 수석부의장
“어디 다녀온 건가… 그동안 잘 안보이던데…”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경기도 양평의 남한강가에 있는 생명연수원에서 기자를 반긴다. 최인식 국민건강운동연합 대표가 운영하는 연수원으로 효소단식과 ‘만병통치약’ MSM을 보급하는 무대다. 이날 이갑산 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 상임대표의 주선으로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셨는데…?
“MB의 대북정책이 뭔지 아는가? ‘비핵 개방 3000’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보이고 개방을 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이 나는 맞다고 생각해서 민주평통을 맡았다”

-여전히 그 정책이 옳다고 보는가?
“그렇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당당한 정책이어야 한다. 당당한 스탠스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그네들이 굽혀서 들어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정책은 옮은 것이다”

-지난해 평통에서 북한에 연탄을 지원했는데….
“미국과 광명 협의회가 작년 연초에 연탄 5만장을 북한에 보냈다. 판문점을 통해 보냈다. 북한이 지정한 장소에 두고 가라고 해서 실어다 줬다고 한다. 아마 이 연탄은 조개탄으로 만들어져서 북한 군인들 엉덩이 덮이는데 쓰였을 것이다”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인가?
“북한에 전단뿌리기를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근에는 첨단기술을 적용한 풍선도 개발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나에 1억5천만원 하는 풍선이라고 한다. 리모트 컨트롤로 원하는 곳에 전단을 투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풍선에서 투하된 전단에는 1달러 지폐가 들어있다고 한다. 1달러면 북한 사람들이 며칠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효과가 더욱 크다고 말한다.

-탈북자들이 보내는 편지도 북한 정부에 위협적이라고 하는데…
“그렇다. 탈북자들은 가족들에게 돈을 보낸다. 편지도 보낸다. 이 편지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통해 이북에 있는 탈북자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이때문에 북한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북한 정부에 속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은 탈북자들이 보내는 편지 때문에 최근에는 탈북자 가족들을 격리수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갑작스런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데…
“통일은 갑자기 올 수밖에 없다. 더 큰 조국을 만들이 위해 통일은 이뤄져야 한다. 북한 주민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한다. 통일이 되면 우리의 자본력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통일한국이 세계 4,5위 국가가 될 것이라는 연구보고들도 나오고 있다”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지금의 통일운동이 과거의 독립운동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우리는 북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4.19동지 회원들과 단체들, 뜻있는 NGO 단체들, NK지식인연대 등 탈북자 단체들이 함께 북한 민주화운동을 펼쳐야 한다. 곧 이들을 묶어서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단체를 만들 것이다”

-북한민주화에 앞장서는 이유는?
“나는 4.19를 했다. 4.19는 민주화 운동이자 통일운동이다. 4.19 당시 이승만 정부는 발포를 했다. 이를 무릅쓰고 학생혁명을 이뤄냈다. 4.19의 민주화 정신은 북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지금 중동과 아프리카에 퍼지고 있는 재스민혁명의 열풍도 우리의 4.19의 정신이 거기서 부활한 것이다”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4.19 학생운동은 건국시기의 사상적인 학생운동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좌우과 아닌, 민주주의를 추구한 학생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민주주의’ 하나를 일념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의 독재와 장기집권을막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이 막을 내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1979년 10.26 사태가 일어나는 배경에 그의 짙은 그림자가 어려있다는 것이다.

“그해 5.30 전당대회를 했다. 이철승 김영삼 그리고 내가 당대표 경선에 나섰다.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나는 결선투표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이렇게 소개하는 그는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철승씨를 당대표로 시키기 위해 강하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정부가 강하게 압력을 가해왔다. 내 누이가 하는 태광산업는 세무사찰을 받고 있었다. YS를 밀면 태광을 문닫게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앞으로 내가 정치를 못하게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그는 YS의 손을 들었다. 그의 지원아래 YS가 당대표로 당선돼 대정부 강경투쟁에 나서서 정부는 서둘러 그를 국회에서 제명해 부마사태를 촉발시키고, 나아가 10.26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이기택 수석부의장은 평생 야당 외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야합으로 불린 YS 김종필 민정당의 3당 합당 때도 그는 YS를 따라가지 않았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그의 신조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DJ가 정계은퇴 약속을 뒤집고 4수로 대통령에 출마할 때도 반대하고 나섰다. DJ로부터 집권하든 않든간에 차기 대통령후보로 밀겠다는 약속과 집권하면 초대총리를 시키겠다는 회유가 있었지만 따르지 않았다. 신의가 없어서는 정치가 아니다고 생각하고 DJ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북한민주화에 매진하고 있다.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물러나더라도 이 일에 매진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우리는 북한에 지난 60년간 밀려왔다. 이제는 정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밀리면서는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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