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봄날, 물빛에 취하다··· 물을 그리는 화가 남여주
[기고] 봄날, 물빛에 취하다··· 물을 그리는 화가 남여주
  • 정유림(큐레이터, ART_IN 대표)
  • 승인 2021.03.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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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나 인생을 ‘물’에, 어떤 사람에 대한 표현으로 누군가를 ‘그릇’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람의 모습과 마음이 각각 이듯, 그릇은 그 쓰임과 모습이 저마다 다르고 담을 수 있는 내용도 다르다. 화가 남여주의 작품 속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그릇과 꿈꾸듯 휘날리는 꽃잎들, 희미한 물고기의 형태를 지닌 생명 들은 그것이 실체이든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사물과 환경에 투시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선과 악,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 때론, 같기도 다르기도 한 모든 것들을 자연스레 하나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물’이다. 물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각각의 물을 통해 투영되는 항아리나 그릇 위로 날갯짓하듯 하늘거리는 꽃잎은 화려하지만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인생과 사람, 자연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 세월과 인연의 이야기를 펼쳐내기도 한다. 그 위로 ‘물’은 조용히 속삭이듯 이야기하며 흐른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어루만지는 듯한 투명한 물의 상(象)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달항아리 앞으로 흐른 물은 길 지나간 자리마다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부서지듯 쏟아져 내린 달빛이 처량하기도 했지만, 항아리 머리 위로 쏟아진 달빛조각들이 물에 부딪혀 반짝이는 윤슬이 볼수록 아름답다.

그릇과 꽃잎 위로 감실대며 지나는 흔적을 보이거나, 위로하며 안아주듯 살포시 내려앉기도 하며 물길이나 물의 흐름을 번지듯 퍼트리거나 때론 바람에 살랑거리는 듯 표현하여 보이지 않는 존재의 형체를 살포시 드러낸다.

35년간 물에 투영된 인생과 자연을 캔버스에 담는 작업을 해온 남여주 작가.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자개장을 바라보며 ‘물’을 느꼈었다고 말한 적 있다. 엄마의 냄새로 가득한 자개장에서 맑고 투명하게 흘러내리던 물의 속삭임은 몸과 마음을 정화 시켜주는 것 같았다. 이후 오래전 과거의 그 시간이 주었던 편안함과 평화로움은 작품으로 태어났고 수십 년간 한결같이 ‘물’을 그리는 작업에 취해있다.

예술가의 작업은 정신에서 나온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붓끝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느꼈던 감정, 작가의 바람처럼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그녀가 어릴 적 느꼈던 평화로운 감정이 오롯이 전해지길 바란다.

코로나로 움츠러들어 얼어붙었던 사람의 겨울에도 봄이 왔다. 지금, 화가는 그대 가슴의 잔잔한 물결 위로 작은 돌을 던졌다. 그녀가 그려낸 아름다운 그릇에 시선이 머물렀다. 숨 막히는 아름다움에 달빛도 머문다.

아, 어느 봄날 나는 꽃 향에 물들고 반짝이는 물빛에 흠뻑 취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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