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특별했던 ‘점령군’의 독립기념일
[이계송칼럼] 특별했던 ‘점령군’의 독립기념일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1.07.10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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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미국독립기념일은 미국 시민으로서 나에게는 37번째였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솔직히 말해 고국의 8·15 광복절과 같은 그런 감흥은 없다. 예년 같으면 별 감정도 없이 하나의 공휴일로서 대충 지나쳤을 터이다. 그런데 한국 신문 뉴스의 단어 하나가 내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했다. 한 유력 대선후보의 ‘미 점령군’ 발언이 그것이다. 

왜 하필 동맹국의 최대 명절, 생일을 앞두고 그런 주장을 편 것일까?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신중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 발언의 진의를 떠나, ‘점령군’이란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를 보면 ‘전쟁에서 어느 일방이 승리했을 때, 패자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자신의 군사적 통치하에 둔다’는 부정적 뜻이 담겨 있다.

발언 당사자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그의 주장은 ‘미국=제국주의자=주한미군=점령군’이라는 단편적인 역사의식이 드러난다. 한미관계는 동맹이 아니라 미국의 전리품으로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미국의 속국이라는 인식 말이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이를 고쳐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주장으로 보이는데 무엇이 어떻게 새로워지는 걸까 그런 의문까지 들었다. 

나뿐만 아니었을 터이다. 마음이 불편했던 재미동포들이 꽤 있었다고 들었다. ‘점령군’이라고 하자. 그래, 그 ‘점령군’이 우리에게 어떤 해악을 끼쳤나? 별사람 다 봤네… 나에게 그런 억하심정마저 생겼고, 고국 친구들에게 화풀이 아닌 화풀이까지 하고 말았다. 

“지난 70여년 대한민국을 도와주고 지켜준 ‘점령군’, 그래서 역사 이래 최초로 주권국가로서 주권을 당당하게 행사하게 해준 ‘점령군’ 미국, 이곳 미국에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도록 해준 ‘점령군’,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우린 오늘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다네. 점령군 만세!” 그리고 아내와 난 친구들과 어울려 미국 생활 처음으로 ‘점령군’ 미국에 감사하며 독립기념일 축하파티까지 가졌다.

서울에 사는 한 친구가 다음과 같이 답을 보내왔다. “바이든 정부 들어서 미국이 국내외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상황에 독립기념일을 맞아 그 의미가 더욱 빛나 보이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그간 국익보다는 진영논리, 정치적 이익추구 행태를 우선시해 왔지. 이제는 최대 우방국까지도 폄훼하고 있네 그려.” 

친구의 표현대로 ‘우방 폄훼’ 맞다. 요새 세상 우리끼리가 어디 있나. 미국인들도 아마 거두절미하고 ‘미국=점령군’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자존심과 관계되는 일이다. 그들은 2백년 역사 이래로 남의 나라 영토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유럽이 자기들의 안보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을 스스로 끌어들여 NATO를 만들었듯, 우리 역시 그랬다.

우파 측이 흔히 써먹는 주장이라고 하겠지만, 그 덕에 공산주의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굳히고, 자본주의 꽃을 피워 전 세계가 놀란 경제 기적을 이뤄냈다. 이게 곧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독립성과 주체성의 핵심이다. 물론 역사학자들의 논쟁거리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이 사실만은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고 대부분의 국민, 보통사람들이 가진 정서라고 믿는다.

고국은 이제 대선정국에 돌입했다. 좌도 우도 아닌, 오직 위대한 조국을 염원하는 한 해외동포로서 고국의 정치인들에게 부탁한다. 지난 역사를 더 이상 제 입맛대로 재단하여 정치에 이용하지 마라. 무엇보다도 국민들을 갈라치고 반목시키는 일이다. 지난 4년은 해외동포들에게도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당신들이 과거사를 두고 벌였던 이념과 정파적 논쟁 때문에 동포사회도 둘로 갈라져 줄을 서며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이제 그만 하자. 지난 과거를 부정적 측면만 부각해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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