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죽음의 일상화
[대림칼럼] 죽음의 일상화
  • 류경자 중국 서남민족대학교 강사
  • 승인 2021.10.01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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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연세가 꽤 있는 분이긴 했지만 워낙 건강한 분이시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2주 전까지만 해도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 그 분이 해주시는 밥을 먹곤 했다. 나중에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어머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숨을 거두기 전까지 딸과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었다고 한다. 흔히들 마지막 유언으로 아주 중요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분은 딸과 일상을 얘기했다. 마침 딸이 차를 바꿀 예정이었기에 딸과 어떤 차를 사면 좋을지 차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딸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보낸 것이다. 친구는 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을 했다고도 했다. 어머니는 본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연명치료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주저없이 서명했을 것이다.

한국은 2016년 연명치료와 관련된 법, 즉 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켰다. 원래의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라고 하며 ‘존엄사법’이라고도 부른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 법이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흔히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 환자나 뇌질환 환자들의 경우 단순 생명 연장을 위해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혼수상태에서 똥오줌을 받아 내거나 호흡을 돕기 위하여 기관 내 삽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말도 전혀 할 수 없게 되고 가족과 만나기도 쉽지 않으며 결국은 쓸쓸하게 혼자 죽어가면서 ‘품위 있는 죽음’이란 전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존엄사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명치료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리고 2021년 8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3년 6개월(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 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자신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예전에는 죽음을 논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 수치를 통해 우리는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은 우리의 일상과 멀지 않으며 삶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기 암 환자에게 병의 진행을 속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생각한다면 굳이 속이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나 그 가족들이 죽음을 터부시하거나 환자 본인이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렇지만 본인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면 그 환자가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환자에게 솔직하게 병의 진행 상황을 얘기하면 그 순간 힘들지는 몰라도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는 셈이다.

언젠가 일본에서는 죽음 체험이 인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현재 일본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일본에서는 잘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죽음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슈카쓰(終活)’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의 장례식장을 예약하고 수의 및 납골 방법을 선택하며 심지어 임종 후 지인들에게 연락할 방법까지 정할 수 있다. 또 자기의 의식이 갑자기 없어질 때를 대비해 엔딩노트를 작성하기도 한다. 관에 미리 들어가 보고 수의를 입어보는 등 ‘죽음 체험’을 하는 젊은 층들도 있다. ‘죽음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잘 죽고 싶은 사람들’이다.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태도이며, 그래서 생겨난 말이 ‘웰다잉’이다.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잘 죽고 싶은 사람들’이란 바로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李箱)의 <종생기>는 작가가 자신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방식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 것이다. <종생기>의 주인공은 이상(李箱)이며 소설에 이상이 죽는 과정과 그가 죽은 후 그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소설은 정확히 이상(李箱)이 ‘대작 <종생기> 한 편’을 남기고 ‘1937년 정축(丁丑) 3월 3일 미시(未時)’에 ‘향년 만 25세 11개월’로 죽었다고 쓰고 있다. 그가 이 소설을 쓰는 목적은 “<종생기>가 천하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 아래” 그의 ‘인색한’ “맵씨의 절약법을 피력”한 것이다. 물론 실제 이상이 죽은 날은 1937년 4월 17일이다. 바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차를 두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흔히 무거운 주제로 생각되는 ‘죽음’을 그는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소설에서 이상은 삶에 연연하며 제대로 된 ‘에피그람’ 한 구도 얻지 못한 채 일생을 마무리하는 것에 못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이상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한 군인과 톨스토이의 임종 모습 비교가 인상적이다. 그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한 군인과 톨스토이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풍자적으로 비교한다. 여기서 군인은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고 인생을 잘 끝냈지만, 톨스토이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유언을 남기면서 자신의 일생에 흠집을 하나 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그런 실수 따위는 할 리가 없다고 쓴다. 여기서 유언 한마디의 차이란 삶에 미련을 갖고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곁에서 떠나보낸다. 또 타인의 죽음을 통해 다시 선명해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으며 그 시간이 지금 당장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류경자 중국 서남민족대학교 강사, 한국체육대학교 강사
연변대학교 중문과 학사·석사,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
역서 『디지털기술과 신사회질서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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