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이웃에 베푼 작은 것들이 우리사회를 변화시켜
[해외기고] 이웃에 베푼 작은 것들이 우리사회를 변화시켜
  • 황현숙(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9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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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도 참 많이 감사했습니다”라는 인사말로 2021년의 12월을 마감하고 싶다. 내가 아는 모든 지인들, 나에게 힘이 되어준 자녀들, 그리고 큰 기쁨으로 다가온 외손녀의 탄생에 그저 감사한 마음만 가득하다. 지난해부터 겪어온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서 많이 위축되었고 심신이 피곤해졌었지만 잘 견뎌내었다. 또한 올해는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하다는 의미를 제대로 실감한 일 년이기도 하다. 무릎뼈에 금이 가는 응급사고를 당해서 몇 달간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 학생이 나와서 2주 동안 학교가 문을 닫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었다.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인해서 사회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일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한 셈이다. 남을 배려 때에 나 자신도 역시 배려받을 수 있다는 이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기다리던 긴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꽤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마음껏 아침에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방학을 아이들처럼 손꼽아 기다리며, 학기가 끝나는 날짜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몸에 배어든 신체 리듬의 시계는 방학의 시작을 느끼지 못한 채 이른 시간에 눈을 뜨게 만든다. 그 덕분에 새벽 시간의 여유를 누리며 강변로를 따라서 보타닉가든에 있는 열대우림 나무숲으로 산책을 나간다. 명상 프로그램, ‘숨이 주는 편안함’을 들으며 호흡운동을 시작해본다. 키 큰 열대 나무들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과 나뭇잎들이 뿜어내는 물기 섞인 촉촉한 공기를 가슴 속 깊숙이 들이마신다. 신선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잠자고 있었던 탁한 숨이 서서히 빠져나오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숨을 잠시 고르며 다시 긴 숨을 밖으로 내보내는 호흡운동을 반복하게 되면 머리가 맑아진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행동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니까 자꾸만 걸으려고 애를 써보는 것이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정신과 신체 건강 모두에 좋은 물질로 알려져 있다. 가장 큰 효능으로는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진정 효과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기관지 천식과 심장, 폐 기능 강화에 역시 도움을 주며, 혈압 조절 및 콜레스테롤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건강을 도와주는 열대우림 숲과 이웃해 살고 있으니 행운이며, 자연으로부터 받는 혜택에도 감사할 뿐이다.

무성하고 싱그러운 초록 잎의 나무들이 호위하듯 늘어선 강변길은 나의 발길을 가볍게 하고 늘 행복한 마음으로 채워준다. 집에 돌아와서 진한 허브 향내 풍기는 목련꽃 차 한 잔을 만들어 마신다. 호흡기관이 신통치 않은 나에게 손수 한 잎 한 잎 다듬어서 만든 귀한 목련 꽃차를 멀리에서 보내준 분이 있다. Y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며 건강을 열심히 보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해마다 나이에 숫자 하나가 더 보태지면 몸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아우성이 들려오는데 이 또한 삶의 기본 원칙이라 여겨진다. 나는 이미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 발을 내디뎌서 하루하루 부딪히는 오늘을 소중하게 간직하려 한다. 내일이 되면 내일에 주어질 시간 약속을 미리 가늠할 수 없어서이다.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이제 갓 백일을 지낸 손녀의 사랑스런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을 카톡으로 보냈다. 그녀는 어느새 할머니 팔불출이 되어있는 나를 은근 지적하면서 “한국에서 요즘은 손주 자랑하면 돈 내고 밥 사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이 시집 장가를 안가니 손주 안아보기를 기다리는 부모들의 실망이 커서 그런 말을 한대요.” 실감나는 말이다. 자녀를 키워서 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자녀들의 가정에 손주의 탄생을 기대하는 부모들의 기다림을 풍자한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한다. 손녀를 안겨준 딸에게 감사하고 팔이 아파도 손녀를 위한 도우미 역할을 자청해서 하고 있다. 이 또한 나이 들어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쁨이 아닌가.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시티거리에는 사람들의 물결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거리의 악사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특이한 악기들을 연주하며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들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고, 들어주는 관객들도 즐거워한다. 나눈다는 게 뭐 그리 큰일도 아니고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떼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산타클로스가 한번 되어보는 거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것들이 모여서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주일 미사가 끝나면 매주 다른 자선단체에서 와서 한인공동체가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기 바란다며 기부금 봉투를 놓고 간다. 캄보디아의 미혼모 피난처를 짓는데 도와달라며 호소하거나, 브리즈번의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려고 하니 기부를 해달라고 호소를 한다. 

기독교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호주사회에 살면서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마음 편케 기부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좋겠다. 사랑하는 마음과 실천하는 행동을 조화롭게 엮어나가야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지 않을까. 한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숫자 하나 더 늘어나는 내 삶이 내년에도 감사의 풍요로움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황현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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