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주간의 파라과이 방문기(2)… 대표적인 한인기업 누뜨리 우에보스도 견학
[기고] 2주간의 파라과이 방문기(2)… 대표적인 한인기업 누뜨리 우에보스도 견학
  • 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22.02.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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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뜨리 우에보스’ 50년 전 이민 온 구완서 회장 설립한 회사
아들 구일회 한인회장 가업 이어가
파라과이서 꽃 피운 양계사업, 200만 수 눈 앞에

(1편에서 이어져) 다음날 9월28일 드디어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오신 박지웅 선교사를 만났다. 며칠 전부터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던 분이다. 실은 내가 파라과이까지 출장을 온 김에 브라질에 들러 그동안 평양과기대에서 상파울루대학 석사과정에 유학을 왔던 4명의 학생을 도와주셨던 분들을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브라질 코로나19 방역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는데 박 선교사가 자진해서 아순시온으로 오겠다고 해서 기다린 것이다.

특히 이분은 KOSTA(한국유학생수련회)남미지역 총무로 사역하며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섬기는 일에 집중해 왔고 그런 과정에 내가 2000년, 2002년 두 번 집회 강사로 왔을 때 만났던 분이다. 또한 평양과기대 유학생들을 돌보는데도 온 마음을 기울여 도와주셨던 분이기 때문에 나로선 여간 고맙고 반가운 분이 아니다.

오전 일찍 도착해서 곧바로 우리 내외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오찬까지 함께 나누며 평양과기대 유학생들이 2016년 리우 올림픽대회 후속 프로그램인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9월17일-18일) 때 북측에서 온 선수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했던 내용을 소개하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평양과기대 학생들이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유학을 못 오지만 이후 유학이 가능할 때가 되면 상파울루대학뿐만 아니라 한국의 연세대와 같은 맥킨지대학에도 유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은 평양과기대 개교 후 지금까지 50명 가까운 학부 졸업생들이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대부분 유럽 쪽 대학으로서,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 케임브리지대학, 옥스퍼드대학, 스웨덴 웁살라대학, 스위스 취리히공대 등 명문대학에 석박사 과정을 다녀왔다. 그 가운데 브라질 경우는 특별한 케이스였는데 이곳에 있는 한인 기업인들과 브라질 사회사업가들이 힘을 합쳐 이들을 초청하고 장학했기 때문이다.

박 선교사는 내가 브라질에 가지 못하는 대신 9월30일(목) 아침에 상파울루에 있는 씨다지교회(City Church)의 깔리토 목사와 줌(Zoom)으로 대화하도록 준비해 뒀다고 말했다. 전해 듣기로 깔리토 목사는 북한과의 교류 및 협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로선 매우 유쾌한 제안이었다.

그날 오후 5시에 전국 규모로 양계장 사업을 하고 있다는 한인기업인을 만나기 위해 적십자병원을 방문했다. 파라과이한인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구일회 사장이라는 분이다. 양창근 선교사가 주선한 일이다. 아버지 구완서 회장께서 입원해 계시기 때문에 다른 장소에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병원을 찾아간 것이다.

아버지 가업을 이어받은 구일회 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누뜨리 우에보스' 공장을 견학했다.

갈 때 평양과기대 홍보 자료와 졸저 ‘회복의 능력’을 들고 가서 차분히 학교 근황을 소개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구일회 사장이 미안해서 그런지 내일 아버님이 퇴원하시니 모레쯤 아침 일찍 아순시온 근교에 있는 양계장(누뜨리 우에보스) 현장으로 오시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고 해서 그리하기로 했다. 양창근 선교사에 따르면 구일회 사장 형제들이 모두 신실한 기독실업인들이고 한인사회를 위해서 많은 후원을 해온 모범적인 이민가족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에는 우리 내외가 이번 파라과이 출장을 위해 도움을 주신 분들을 초청해서 저녁을 대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자리하신 분들은 동양여행사 이경희 대표 내외와 아들, 양창근 선교사 내외와 아들, 브라질에서 오신 박지웅 선교사, 그리고 양창근 선교사가 초청한 구호단체협의회 담당 목사까지 합쳐 모두 8분을 모시게 됐다. 그 자리가 참으로 귀했던 것은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서로 우애하고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악한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열망은 파라과이의 영적 부흥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양 선교사와 함께 다녀온 이과수폭포를 보고 느낀 감동을 이야기하자 다들 영화 ‘미션’에 대한 평가로 대화가 확대됐다.

거기서 나는 비로소 ‘넬라 판타지아’의 가사가 ‘미션’의 줄거리를 반영하는 내용임을 알게 됐다. ‘가브리엘의 오보에’연주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만 가끔 들었지 가사에 대해선 전혀 무지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비장함까지 느끼게 했다. 왜냐면 그날 함께 자리한 분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영혼 저 깊은 곳에 인류애로 가득 찬’ 미셔너리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9월29일 오전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아순시온에 있는 한인교회를 두군 데 방문했다. 낮에는 오찬을 겸하여 어제저녁에 만났던 분들과 박지웅 선교사가 소개한 김정호 목사, 오전에 방문한 아순시온교회 담임목사까지 합세하여 평양과기대 지원을 위한 전략회의를 가졌다.

무엇보다도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먼저 학생들의 면학과 해외유학을 장려하여 북한의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나의 뜻대로 상대방을 끌고 갈 게 아니라 상대방의 갈급함과 니즈(Needs)에 따라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그들의 마음을 사고 그들과 함께 공동선을 이루는 첩경이라는 데 공감했다.

또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낮은 곳으로 임하신 진정한 의미이고 그 기초위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앞으로 우리 내외가 걸어가야 할 길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지침으로 받아들여졌다. 우정어린 설복처럼 격려와 위로가 넘치는 모임이 됐다.

저녁 8시에 박지웅 선교사의 주선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제갈영수 회장과 무역업을 하는 김성림 집사를 줌(Zoom)으로 만났다. 이 두 분 한인기업인들은 평양과기대 유학생들이 상파울루대학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그 인연으로 제갈영수 회장은 평양과기대를 방문하여 재학생들을 위한 특강도 했고, 지금까지 학교 당국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두분 한인기업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다음날 9월30일(목) 새벽 6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양창근 선교사와 함께 ‘누뜨리 우에보스’ 양계장을 방문했다. 아순시온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양계장의 규모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150ha에 이르는 부지에 모든 양계 시설이 전자동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고 각개의 크고 작은 공장 주변을 녹지대로 조성하여 환경적으로도 무척 쾌적했다. 대표이사 구일회 사장이 우리 일행을 직접 안내하여 각 공장의 설비 기능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양계 수는 산란계 130만 수와 병아리 40만 수를 합쳐 170만 수를 운영하는 규모였으며, 최종적으로 200만 수까지 확보하려고 증설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고 했다. 파라과이 계란 소비총량의 25%를 공급하고 있다는 ‘누뜨리 우에보스’의 시작은 원래 9만 수가 목표였다고 한다.

50년 전에 이민 온 구완서 회장께서 구씨 집안이니 한국식 발음으로 구만 수까지만 달성해도 좋겠다고 시작한 양계사업이 이제 곧 200만 수를 눈앞에 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80대 중반에 접어든 아버지 구완서 회장의 끈질긴 집념과 성실성이 결국 네 자녀와 함께 파라과이 최대의 양계 가족기업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집념과 성실성의 근간에는 기독교신앙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히 자리잡아 있다는 게 구일회 사장의 '아버지를 위한 고백'이었다. 공장을 다 둘러본 다음 집무실에 가서 차 한잔하며 나눈 얘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실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감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구 사장의 간증을 듣고 있던 양창선 선교사가 느닷없이 “구 회장님 가족이 평양과기대를 위해 양계장 시설을 지원해 주신다면 씨드 머니(seed money)로 나도 작지만 만불을 헌금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양 선교사가 이번 여행에서 꼭 만나 보고 가셔야 할 분이 있다고 하면서 새벽같이 끌고 온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부탁을 나 대신,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처럼 그렇게 용기 있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곁에 앉아있는 아내를 돌아보자 그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감동이 되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뜨거운 숨결로 말했다. “선교사님이 만불을 내시는데 총장이 가만있을 수 없지요. 저도 십만불 헌금하겠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구일회 사장도 무척 감동되는지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눈을 들어 창문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양계장 공장 너머로 아침 해가 환히 떠오르고 있었다.

양계장에서 돌아오는 대로 10시에 호텔방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상파울루에 있는 씨다지교회의 깔리토 목사와 함께 줌(Zoom) 회의를 했다. 박지웅 선교사가 통역했고, 교회 측에서 가브리엘 선교목사란 분이 한 분 더 동석했으며, 어제저녁에 줌으로 친교를 나눴던 김성림 대표도 동역자 차원에서 함께 동석했다. 한 시간 반가량 대화하는 가운데 나는 이 줌(Zoom) 회의를 통하여 장차 내가 평양과기대 중장기발전계획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 지에 대해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됐다. 그것은 ‘외국인문화센터’에 대한 비전이었다.

깔리토 목사는 2018년에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브라질교회 지도자들과 기독실업인들이 20여명 동참했다고 한다. 국제사절단 형태로 방문한 이들이 여러 곳을 탐방하는 가운데 평양에 있는 모 대학을 방문했을 때 현지 관계자들이 평양시 외국인문화센터 건립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 후 실력 있는 몇몇 기독실업인들과 함께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더 이상 진전치 못하고 보류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2년 9월에 한 번 더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까지 연장해서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혹시 평양과기대에서 자기들을 초청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는 평양과기대가 국제사립대학이고 외국인 교수들이 가르치는 대학이기 때문에 단위 기관장으로서 외국인을 초청할 권한이 있다고 답변을 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는 내 마음속에 “이제 때가 이르렀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오래 전 부터 평양과기대의 숙원사업 중 하나로, 외국인 교수들이 요청한 외국인 전용 예배당과 국제학교 건립 프로젝트가 있다. 대학 부속기관으로 이미 책정해 놓은 일이지만 예산이 없어서 건축할 엄두를 못 내고 있던 터다. 그런데 뜻밖에 브라질 씨다지교회의 협조로 외국인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사역을 준비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나는 다른 어떤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마음속에 평양과기대 안에 다목적 강당으로 외국인문화센터를 세워 국제학술컨퍼런스와 문화공연 및 실내체육을 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와 함께 외국인 전용 예배당과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 및 상담실까지 수용하는 복합시설을 갖추게 되면 장차 대학 발전뿐만 아니라 북한 다음 세대의 국제화 교육을 위한 일에 능동적인 매체 사역의 터전을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꿈과 비전을 갖게 된 것이 깔리토 목사와의 줌(Zoom) 회의를 통해 얻은 영감이요 희망사항이다. 이와 함께 내가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룰 때 같은 지체로서 북한을 품고 아픈 곳을 치유하고 돌보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말하는 그 놀라운 영성과 자비의 신념이었다.

내가 깔리토 목사께 묻기를 어찌해서 북한에 대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우리 몸이 하나인데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 지체가 아프면 우선 그것부터 먼저 치유하고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변하던 깔리토 목사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맴돈다. 한국교회가 배우고 마음에 새겨야 할 귀한 교훈이라고 믿어진다.

실은 그날(9월30일)이 아순시온을 떠나는 날이다.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일이라도 더 보고 가도록 배려해 주신 양창근 선교사님의 덕분으로 새벽부터 양계장을 다녀왔고, 그러고 나서 곧장 줌(Zoom)으로 국제회의를 하는 바람에 시립병원에 가서 출국 전 코로나19 체크를 하고 PCR검사 서류를 받아 와야 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 두 사람이 검사 장비를 들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와서 검사했다. 그 후 호텔 체크 아웃을 하는 대로 이경희 대표의 집으로 가서 마지막 오찬을 같이 했다. 물론 양창근 선교사 내외도 함께 참석했다. 공항 배웅까지 해드려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그리하시라고 했다.

우리가 식사를 거의 마쳐가는데 구일회 사장의 아버지 되시는 구완서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양 선교사의 얼굴이 일순 환하게 펴졌다. 구완서 회장님이 아들한테서 얘기를 듣고 공항으로 떠나가기 전에 나를 꼭 만나봐야겠다고 하시면서 이경희 대표 집으로 오시겠다는 것이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양 선교사가 설득하여 지금은 출국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이곳까지 오시지 말고 공항 진입로 입구에 있는 주차장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양 선교사의 차를 타고 먼저 약속장소로 출발했고 아내는 이경희 대표 가족들과 같이 곧바로 공항으로 가서 나중에 출국장 대합실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구완서 회장님은 나를 만나자마자 선뜻 평양과기대 양계장 설비 지원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파라과이에 이민 와서 사업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다고 하시면서 이제 더 늦기 전에 북한 주민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평양과기대에 양계장을 세우면 학생들뿐만 아니라 병원, 보육원, 양로원 같은 곳에도 계란을 공급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시면서 실무적인 계획은 아들하고 의논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나 감동이 되어 가슴이 떨렸다. 구 회장님의 손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해 드렸다. 양 선교사님도 얼굴이 상기된 채 연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출국할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구 회장님이 바지 포켓에서 주섬주섬 봉투를 하나 꺼내시더니 내게 주셨다. “이거 조그만 성의로 드립니다. 총장님 필요하신데 쓰세요.” 나는 또 심장이 멎는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그마한 체구의 구 회장님을 껴안아 드리며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진심을 토로했다. 나중에 비행기 안에서 확인해 보니 봉투에 만불이 들어 있었다.

구 회장님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우리 내외의 파라과이 여행은 막을 내렸다. 아순시온 공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만남의 교집합이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는다. 희망과 믿음의 능력을 그때처럼 실감 나게 체험한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참으로 귀한 일을 경험했다.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10월2일(토) 12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인편으로 영주권과 함께 주민증도 받았다.

감개가 무량하다. 이제 평양에 들어갈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고 국경이 열리기만 하면 현지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갖췄다. 영주권을 손에 쥐고 눈을 감으니, 눈앞에 이과수폭포가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미션’의 포스터에 새겨진 희생자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여러 사람의 얼굴이 겹친다.

이경희 대표와 강성현 목사, 양창근 선교사 내외, 델 에스테의 김수현 회장 가족들, 박지웅 선교사와 깔리토 목사, 제갈영수 회장과 김성림 대표, 구완서 회장과 구일회 사장 등 여러 명의 얼굴들이 하나의 얼굴로 거듭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다.

십자가에 묶인 채 폭포 아래로 떨어져 내려가던 희생자(예수님)가 폭포 밑자락에 닿기 직전에 무지개 속에서 갑자기 양 날개를 펼치며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마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어디론가 높은 곳을 향해 ‘자유의 비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꿈꾸는 최고조의 삶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디선가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환상인가?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주민(과라니족)과의 소통을 위해 오보에를 연주하는 가브리엘의 마음에 나를 감정 이입해 본다. 아, 이것이 내가 불러야 할 ‘사명의 곡’인가? 영주권 취득을 위해 갔다가 만난 파라과이 선교사들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 준 ‘넬라 판타지아(환상 속에서)’의 가사가 내 영혼 속에 기도문이 되어 되살아난다. 마치 ‘환상 속에서’ 환상을 보는 것 같다.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노인의 꿈이 죽은 듯하나 죽지 않고 벽공으로 비상을 시작하는 것 같다.

필자소개
현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참포도나무병원 이사장, 신아시아산학관협력기구 이사장, 북경대동북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중앙민족대학 민박동학회장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중앙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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