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어울리며 둥글게 살아간다
[해외기고] 어울리며 둥글게 살아간다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 승인 2022.06.23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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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내린 빗줄기는 마른 땅을 적시고 나무들의 갈증을 풀어주며 촉촉한 물기를 머금게 한다. 자연의 이치란 이처럼 하늘과 땅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호주사회도 참으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루뭉술하게 엮이면서 살아간다.

호주에서 살아온 긴 시간은 나의 삶에 변화를 주며 생활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퓨전 음식처럼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람은 역시 부딪히고 생존 터에서 적응하는 인지력을 본능적으로 타고난 모양이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는 운동경기를 보면서 퀸즐랜드팀을 열렬히 응원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최근에 호주 축구 대표팀과 페루팀의 축구시합 중계방송을 보면서 열심히 호주팀을 응원했다. 점수를 얻지 못하고 패널티 킥으로 승부차기를 겨루는데 마치 한일전을 지켜보는 듯 흥분이 되었다. 공을 차는 선수들이나 막아내는 골키퍼들의 긴장한 모습을 보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동점(4-4)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순간에 페루 선수가 찬 공을 광고 풍선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든 호주 골키퍼 앤드류가 막아내는 순간에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마지막 한 골을 넣기에 실패한 페루의 응원석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그리고 한편에는 승리한 호주 팀의 환호하는 모습도 클로즈업이 되었다.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는 호주선수들의 환희가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페루 선수들의 애달파하는 모습도 찡하는 느낌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호주에서 소수민족 그룹인 페루 사람들은 축구시합의 승리를 통해서 자신들의 힘든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색 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페루 사람들을 보니 한국의 붉은 악마응원단이 떠올랐다. 오래전, 브리즈번에서 한국팀의 축구시합이 열렸을 때 딸과 함께 붉은 티셔츠를 입고 볼에는 태극기 페인팅을 하고 ‘오~필승 코리아’를 목이 아프도록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이래서 나는 한국인이며 또한 호주인임을 깨닫게 된다.

호주 백인 사회에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민자로 살면서 자존심 상하는 일을 한두 번쯤은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한마음이 되어주는 친구들, 그들은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호주인 양부모들이다. 한국문화를 무척 아끼고 한국 음식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들을 보면 인종차별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최근에 방탄소년단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난 일이 화제가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방탄은 유명한 손가락 하트(K-heart)를 함께 날리며 화기애애한 만남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같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아시안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한 증오범죄, 인종차별을 이 사회에서 몰아내자는 것이다. 노래라는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인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엮어가는 방탄소년단의 큰 힘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다민족 문화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유난히 많았던 한 공립 하이스쿨에서 일할 때 다문화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이슬람 종교를 믿는 이슬람교도 여학생들은 교복 치마의 길이를 발목까지 길게 해서 입고 머리에는 주로 하얀색 히잡(스카프)을 쓰고 등교를 한다. 인디언 계의 남학생들은 검은색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수염을 길게 기른 채 학교에 온다. 백인 학생이나 아시안 계 학생들은 대체로 머리에 금발이나 혹은 화려한 색깔의 염색을 해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 그리고 남학생이나 여학생들의 귀에는 다양하고 현란한 귀걸이를 달랑거려서 눈을 부시게 만든다. 학교 교복의 규칙이 있지만 그런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단정한 교복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는 눈이 번쩍 떠지는 획기적인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한 남학생은 한국인 선생인 나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몇 마디 한국말을 배우기도 했다. 굿 보이(Good boy)를 한국말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어서 “ 착한 녀석”이라고 장난스럽게 가르쳐 주었더니 수업 시간에 한국말로 “나는 착한 녀석, 선생님은 착한 여자”라는 말을 해서 웃기곤 했다.

구약성서에 바벨탑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느님은 탑이 완성되기 전에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장을 던졌던 교만한 인간들에게 언어의 혼란이라는 벌을 내렸다. 하느님은 관대하신 분이라서 현대사회에서는 다민족 다문화사회의 조화로움으로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렇듯 우리는 어울림의 묘미가 있는 사회에서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안으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는 결론을 나름대로 내려본다. 진정한 Harmony(조화)는 나눔과 사랑을 바탕으로 쌓아 올리는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탑과 같은 것이 아닐까…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퀸즐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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