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호 일본 국사관대 교수, “2.8독립선언 정신으로 한일미래 모색”
신경호 일본 국사관대 교수, “2.8독립선언 정신으로 한일미래 모색”
  • 동경=이종환 기자
  • 승인 2022.09.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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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호 일본 국사관대 교수
신경호 일본 국사관대 교수

(동경=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동경 소재 수림외국어대 총장인 신경호 일본 국사관대 교수는 지난 4월 사단법인 2.8한일미래회 회장을 맡았다. 초대 김영열, 2대 홍래윤 회장에 이어 제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사단법인 2·8회한일미래회는 1919년 조선 유학생들의 2·8독립 선언을 기념하는 사업을 해 온 단체로, 지난 3월 26일 정기총회에서 단체명 2·8회가 2·8한일미래회로 바꿨습니다.”

8월 15일 동경 가구라자카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신경호 교수는 이렇게 소개하며, “취임 후인 7월 2일 와세다대학 니혼바시 캠퍼스에서 2.8한일미래회 주최로 학술심포지엄도 열었다”고 말했다.

2.8독립선언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일본에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919년 2월8일 독립 선언식을 가졌다. 이 사건은 한국의 첫 독립 선언서인 무오 독립 선언서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재일유학생들은 1918년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춘원 이광수는 서울에서 현상윤, 최린과 독립운동을 논의했고, 1918년 11월 도쿄로 돌아와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고 있던 최팔용과 조선인 유학생들을 규합해 독립 선언을 기획했다. 춘원은 2.8 독립 선언서를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작성했고, 신변을 우려한 최팔용의 제안으로 선언문 작성 후 상하이로 도피한다.

조선청년독립단의 이름으로 발표된 당시 결의문에는 “만국 평화 회의에 민족 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도 적용하기를 요구한다”면서, “이 목적을 전달하기 위하여 일본에 주재한 각국 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 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인을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또 “요구가 실패할 때에는 일본에 대해 영원히 혈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재일유학생들은 이날 각국 대사관과 일본 국회 의원, 조선총독부, 일본 여러 지역의 신문사에 독립 선언문을 발송했다. 유학생들은 이날 오후 2시, 동경 조선YMCA 강당에서 조선 유학생 학우회 총회를 열고 독립 선언문이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하지만 백관수가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자마자, 대회장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60여 명의 유학생을 체포했다. 이후 2월 12일과 28일에도 재일유학생들은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 행진을 시도했다.

“이 일로 인해 최팔용, 백관수 등 재일유학생들이 다수 기소됐습니다. 이들을 변호한 사람이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였습니다. 이런 분의 활동도 2.8한일미래회에서 기리고자 합니다.”

전남 고흥 태생인 신경호 교수는 1983년 일본 유학을 떠나 1988년 일본대학 법학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후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2년부터 국사관대학 21세기 아시아학부 교수로 부임해 지금까지 교편을 잡고 있다.

“국사관대학 학생 67명을 한국에 데려다주고 막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은 고려대에서 한 달간 공부하면서 독립기념관도 가고, 판문점, 민속촌도 돌아보며 한국의 문화와 현실을 이해하고 돌아옵니다.”

신경호 교수가 시작한 이 같은 학생들의 한국방문 행사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사관대 시간강사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의 한국방문 교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동안 고려대에 보낸 학생만 2400여 명입니다. 학생들은 항공료까지 모두 자비 부담으로 한국을 방문합니다. 20년간을 계속해왔어요. 코로나 기간인 2020년과 2021년만 인터넷 줌 강의로 대체했어요.”

신교수가 추진한 학생교류는 고려대뿐만 아니다. 전남대와 안동대, 한양대, 동의대에도 각기 250명에서 400명까지 보냈다. 일본 학생들이 한국을 알 수 있도록 마련한 활동들이었다.

신 교수는 자녀들에게도 한국인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 세 아들은 모두 동경한국학교를 다녔다. 대학도 모두 한국으로 보냈다. 늦둥이 막내인 딸도 동경한국학교에 재학 중이다.

“아들 셋이 모두 한국 해병대에 복무했습니다. 결코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자원해서 해병대를 지원했어요. 첫째는 해병대 제6여단 63대대, 둘째는 해병대 제2사단 포병여단 포8대대에서 복무한 후 전역했고, 막내는 해병대 제7여단에 지금 복무 중입니다.”

재야역사가 이덕일씨는 저서에서 “조선은 양반이 군대가지 않는 나라”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이어 망국에 이른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군대 기피증은 오랜 역사가 있다.

하지만 신경호 교수의 아들들은 해외에서 태어나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를 자원입대하고, 그것도 모두 해병대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아주 눈에 띄는 경우다.

유학생시절 재일동포 기업인인 수림 김희수 선생과 가까웠던 신교수는 그 인연으로 김희수 선생이 세운 동경수림외국어대학를 떠맡아 경영하고 있다. 또 수림재단 상임이사로도 활동하며 2세 교육에 큰 뜻을 뒀던 고 김희수 선생의 현창 활동도 적극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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