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지리산, 남원 기행… ‘자생적 근대화’의 ‘미발(未發)의 계기’로서의 사림과 ‘세계공화국’의 꿈
[정대성 칼럼] 지리산, 남원 기행… ‘자생적 근대화’의 ‘미발(未發)의 계기’로서의 사림과 ‘세계공화국’의 꿈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7 14:33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에 한국어, 영어로 된 처녀시집과 한국어, 영어, 일본어 시 및 창작화로 된 시화집을 서울에서 내게 됐다. 그 출판사 사장이 시골로 가자고 권유했다. 행선지는 남원이었다. 안재원 서울대 교수, 남원에서 필드워크를 하는 혼다 히로시(本田洋) 동경대 교수도 동행했다. 우리는 영사정, 사제당, 사제당 기념관, 영천서원, 혼불문학관, 백제신라 산성, 보절면 소재 고인돌, 순흥 안씨 종묘, 매천 황현의 큰 따님의 묘소, 광한루 등지를 강행군했다.

필자가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생으로 공부할 때 학기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서 장학금도 주면서 현지답사도 제공했다. 국문과에서도 현지답사를 갔다. 매번 따라갔기에 석박사 과정 10학기 동안의 답사로 가보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였다. 석사논문 주제였던 목포는 여러 번 답사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남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KF 답사여행으로 진도를 갔을 때, 이토 아비토 동경대 교수와 함께 버스 안에서 잡담을 나눈 일이 생각나는데, 혼다 교수는 진도 연구의 권위자인 이토 교수의 제자였다.

안재원 교수는 성리학을 도입해 소수서원에 배향된 안향의 9대손인 안처순, 안전, 안창국의 후손이었다. 독일 괴팅엔 대학 박사인 안 교수는 서양고전이 전공이지만, 동양 고전은 물론 자신의 고향 보절면의 <보절면지>까지 집필하는 등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다.

<보절면지>는 지방사 연구의 수준을 격상시킨 역작이다. 그런 안 교수와 동행하며, 니체가 독일의 본 대학에서 쫓겨났고 고전문헌 학계에서 지금도 기피되는 이유 등에 관해서도 재미있게 얘기를 나눴다. 고 박종철 열사의 기념관이 신림동의 하숙집 근처에 세워진다는 소식도 들었다면서 “일본에는 아직 칸트 같은 사상가가 나오질 못했다”고 툭 던진 화두가 수수께끼처럼 다가오는 가운데 영사정에 도착했다.

허물어져 가는 일반 정자 같은 영사정은 원래 소쇄원보다 앞선 시기에 세워졌다. 영사정의 건축이 담양 소쇄원의 건축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초기 정자 양식을 간직한 보물급 건물이라고 한다.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와 김인후가 시문 가사를 노래하고 경학을 논한 곳이 영사정이고, 김인후는 <영사정기>를 썼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사림 세력으로 옥계 노진,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백호 임제,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등이 있었고, 이들의 사상과 철학이 나중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등의 노력을 통해서 서원 운동, 향약 운동 등 조선 중후기의 사상사 학맥 및 사회운동사의 시발점이 됐다고 한다.

이를 입증하는 문헌이 <사제집(思齊集)>이다. <사제집>은 사제 안처순이 구례 현감으로 부임해서 인근의 지리산의 나무로 <근사록(近思錄)>을 목판으로 출판한 뒤에, 이를 다시 축약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근사록>의 단순 요약본이 아니다. 소위 ‘요순에서 공맹으로 이어진 성인의 길’을 다시 살리고 실천의 길을 닦는 방법과 지침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다소 길고 세세한 <근사록>의 내용 가운데에서 철학적으로 중요한 핵심을 뽑아내서 일목요연하고, 특히 과거 공부가 아닌 실천과 수양의 학문으로 유학을 되살리는 기상, 기골을 담은 책이다.

논증의 집중도는 여느 현대 철학자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고, <근사록>이 조선에서 위용과 위세를 얻게 된 것도 사제가 보여준 집중력과 엄밀함 덕분일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남원 지역이 영호남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과, 훈구파의 사양화라는 시대적 전환도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 비록 정암 조광조로 대표되는 기묘 개혁파가 기묘사화(1519년)로 희생되긴 했으나, 그들의 사상, 운동이 어떤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한 뿌리라고 한다면, 영사정, 사제당(1521년)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메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물적 증거들 중 가장 소중한 자료가 보물 <기묘제현수필>(1518년)과 <기묘제현수첩>이다.

필자는 TV 역사 액션 드라마의 시나리오 습작을 쓴 적이 있다. 짱바라(칼싸움)나 닌자 같은 액션이 들어간, 중앙관청과 소쇄원, 지리산 등을 무대로 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사림파 사이의 갈등을 그린 것인데, 위 <수필>, <수첩>을 보지 않았음이 후회된다. 돌이켜 보건대, 기묘사화와 기묘사림 후학들의 활약은 현대 한국 민주화 운동권 같은, 조선시대 붕당 정치를 통한 권력 분립을 가져온 일대 사건이었다.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빛고을 광주라면, 사림 운동의 성지는 용성(龍城)골 남원인 셈이다. <수필>(목판본: 사제선생 실기 권지오) 한글 번역본에서 인용해본다.

순지(안처순의 자)는 목민관의 인자하지 못함을 논하면 백성들의 실정을 알지 못함을 슬퍼했고, 수령들의 충성스럽지 못함을 말하면 재물에 청렴치 못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인자한 정치를 베풀고 풍속을 교화시킬 것을 생각함이 어찌 얕겠는가?(유용근)

주상께서 군(안 군)의 요청을 들어주사 고을을 맡도록 허락하신 것은 성조(고조선)에서 효도로 다스림을 숭상해서 인(어짐)과 서(용서)에 근본하여 정사를 했기 때문이다.(정응지)

안재원 교수에 의하면, 안처순이 노부모 부양을 이유로 구례 수령으로 낙향하고, 자손이 영사정, 영천서원을 짓고 공덕을 기린 것은 ‘대효(大孝)’에 의한 나라 다스림을 겨냥한 것이다. 이 대효 사상은 사제 안처순이 남원에 머물러 실천하려 했던 애민 정신에 철학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음은 안처순이 자신의 책인 <사제집>에서 인용한 11세기 횡거 장재의 <서명(西銘)>에 대한 주자의 풀이이다.

많은 사람과 사물이 하늘과 땅의 사이에서 태어나 같은 기운으로 하나가 되고 같은 본성으로 하나가 되니, 바로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와 한 가족이 된다. 크고 작은 등급이 같지 않으니, 바로 사랑하고 소원하며 멀고 가까운 구분이 생기는 것이다. “무릇 세상에 지치고 늙고 다치고 병든 사람과, 어린 고아와 늙은 부모와 홀아비와 과부, 이들 모두는 어려움에 처해도 의지할 곳도 없고 호소할 데도 없는 우리의 형제들이다.”라고 하였으니, 군자가 정사를 다룸에 이런 사람들을 가장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제집> 상편에서)

조선에서 장횡거의 <서명>에 담긴 평등사상과 애민 사상에 주목하고 이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첫 번째 책이 <사제집>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제 안처순이 남원에 머물게 된 경우는 정치적 패배와 낙향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은 사건이다. 군왕 중심의 통치학에서 백성을 근본으로 놓는 애민 사상을 실천하고, 그 실천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기르는 군자학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기획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조선 중기의 유학은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관학에서 사림학으로, 중앙학에서 지방학으로, 군주론에서 군자론으로 말이다. 특히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전통에서 ‘치인(治人)’을 강조하던 전통으로 ‘수기(修己)”를 중시하는 시발점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안처순의 <사제집>은 학계의 주목을 받아야 마땅한 문헌일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과 철학에 담긴 개혁정신 때문에 기묘사림이 기묘사화의 참변을 당한다. 기묘 명현들의 안처순에 대한 송별사, 송별시들은 기묘사화 때문에 더욱 와닿는다. ‘어진 정치’의 표상은 유교의 대의명분이고, 나아가, 모종의 신화화 작용이 있었을 수 있지만, 권력의 폭주, 가렴주구에 대한 부정에는 사회사상의 어떤 발전 형태를, 청렴에 의한 자기 통제에는 당시 사상사적 틀의 한계성 속에서나마 ‘민’권 의식, ‘인간 평등’ 사상의 맹아, 그 ‘미발의 계기’라도 엿볼 수 있다.

‘미발의 계기’라는 개념은 일제 관학의 이른바 정체성(停滯性), 타율성 사관, 조선 사회는 뒤떨어져서 스스로 근대화할 힘이 없었다는 역사관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실학’ 개념과 함께 북한 사학계, 고 카지무라 히데키 교수 등이 선도했다. 북한은 사회주의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에도 자본주의 맹아가 발전했음을 증명해야 했다. 소련, 동유럽이 붕괴된 오늘날 우리는 예컨대, 카라타니 코진 식의 ‘세계공화국’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흔히들 그리스 로마 철학, 기독교 신학에 기초한 서양문화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투쟁으로 간파하는 인식론과, 현실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이성, 감성에 관한 고찰이 발달했고, 조선 사회는 성리학, 정주학에 몰두하는 나머지, 그런 사상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당파 싸움을 일삼아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믿어왔었다. 그런데, 일본 메이지 유신에서 보듯, 유교가 자본주의 발전과 궁합이 좋았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조선 유학 사상 속에서도 ‘자생적 근대화의 맹아’를 보는 시각의 유효성은 이미 공인돼있다.

민(백성들)이 무지하다고 말하지 말라. 본성은 피차 다를 것이 없다. 민이 완악하다고 말하지 말라. 가르침이 있으면 누구나 다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엄숙함으로 임하여 차근차근 인도하고 간곡히 타일러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한다면 하늘을 어기겠는가? 사람을 저버리겠는가? 자신을 속이겠는가?(유용근)

겨레(民)를 인도함에 그들의 욕망을 따름에 달렸다. 겨레가 의복, 음식을 원하므로 농사철을 아니 빼앗아,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게 해주고, 부역과 세금을 절제하여 편안케 해준다. 항산(恒産)이 풍요로와야 항심(恒心)이 있다. (중략) 사람의 마음이 꽉 막히고 이욕이 어지럽게 끌어 금수와 거의 같다. 수령 노릇하면서 자신의 본성 있음을 알지 못하는데, 겨레의 본성 있음을 알겠는가? 겨레가 이미 삶을 보전치 못하는데 인륜 있음을 알겠는가? 하물며 예의의 풍속이 이뤄지겠는가?(성세창)

왕은 아담의 후손이라는 가부장론, 왕권신수설이나 조선 왕은 고조선의 계승자라는 사상이 비슷하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억누르기 위한 왕권, 정부의 강화라는 영국 왕당파의 논리가 조선 훈구파나 외척, 측근 세력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면,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설은 사림파가 추구한 서원, 향약 운동의 사상과 일맥상통되는 데가 있다. 다만, ‘본성’을 잃은 가짜 사림들, 폭력적 토호들도 적지 않았고, 무혈, 유혈의 여러 정치 혁명들과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상공업의 발전은 있었다. 허균의 <호민론>, 정여립의 공화사상 등이 있었고, <정감록>이나 동학이 나왔다. 드디어 동학이 혁명을 시도하지만, 왕권의 부정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서양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 ‘국어’의 보급이라는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그런데, 조선 사림들이 한문 문화에 갇혀 살았는 데 비해 서양은 라틴어에서 해방됐다는 의미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홍길동전>이나 창가, 판소리 등 ‘국어’ 문학이 중요하다. 광한루에 가니, 필자가 한때 <춘향전>의 번역학, 서지학적 연구를 한 일이 회상되는데, 이제 생각하니, 춘향이가 남원에서 태어나야만 했던 개연성을 느낀다. 권력의 부패에 대한 자유연애의 승리라는 주제는 조선적 민주주의의 맹아로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백제, 신라 산성을 가서는 오카야마의 타카하시를 떠올렸다. 그곳에는 도래인으로 보이는 집단의 산성이 남아 있고, 기와, 항아리 조각들이 지금도 산재해 있다. 신라가 백제 산성을 활용해서 연장한 흔적도 확인된다. 그만큼 당시 남원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왜란, 재란 때도 활용됐고, 바다의 이순신 장군 같은 역할을 육지의 남원이 해냈단다. 막연하게 일본 천황의 혈통이 백제, 신라에 있다고 알고 있지만, 도래인은 산에 사는 ‘오니(鬼)’가 되어 아랫마을 사람들을 괴롭혔고 도래인 중에는 바닷가나 섬에 들어가 왜구 세력과 야합한 무리도 있다 한다. 헌데, 천황이 우리나라를 적극 침략한 적이 없다. 우리 인식에서도 왜구의 연장 선상인 무사 계급이 침략해 온 걸로 알고 있어, <대한 독립선언>에서도 ‘무사계급’이란 말이 나온다. 한편, 일본은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라고 우기기도 한다.

일본 유학자들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양명학이나 천황을 어떻게 봤을까? 메이지 유신 때 어떻게 왕정복고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그들은 양명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천’ 개념을 중시했다. 그런 사상사적 바탕이 현대 일본의 입헌군주제에 스며들어있다. 우리 사림의 경우 자연권, 혁명권 사상이 약했다. 그러면서 남한은 4월 혁명, 군사 쿠데타와 민주당의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 일본은 입헌군주제이지만, 군주(천황)에 대한 혁명권은 없다. 북한, 중국은 ‘공화국’이지만, 진보정당, 또는 개인의 독재체제이고, 북한은 세습제이기도 하다.

한때 북한을 ‘유교 사회주의’라 정의한 학술 연구서(동경대학출판사)도 나왔는데, 북한은 독재자가 권력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여, 항간에서는 ‘김씨 왕조’라는 말도 있고, 인민의 혁명권은 없다. 우리가 국제금융 세력과 함께 가든, 전 세계가 ‘제4의 교환관계’인 ‘세계공화국’으로 진화하든, 사림 사상을 되돌아봐야 할 듯하다.

카라타니 씨는 기독교 같은 세계 종교에 그 맹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기야, 인권의 모태는 인간의 자연권인데, 그것은 천부인권, 즉 하늘이 준 권리다. ‘하늘’은 ‘만왕의 왕’, ‘왕 중 왕’이며 어떤 국가 권력보다 위에 위치한다. 그것을 부정하면 ‘파라오’, ‘리바이어던’의 혹독한 절대주의 전제 권력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북한, 중국의 전제 정치에 대해 이의신청할 자연권이 있다. 달리 말하면, 완숙된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면 각 개인이 완숙된 ‘민’, 즉 제대로 된 시민, ‘새로운 사람’으로 성장해있어야 한다. 북한, 중국, 나아가 러시아 등지의 ‘민’을 계몽해야 한다.

그 한 가지 모색의 시발점으로서, 그리스 철학, 퓨리탄이즘, 프로테스탄티즘도 좋지만,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아비투스(일상적 관행, 사고방식)와 밀접된 사림 문화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잘 하면, 칸트가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민주 공화국이 되어 하나 되는 ‘국제 연합’의 전제하에 꿈꾼 ‘세계시민(코스모폴리탄)’, ‘영원 평화’의 개념으로까지 맞닿는 지평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 중간 지점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있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이번에 출판하는 처녀시집에는 전근대 조선 시인들의 한시의 번안시가 많고, 시화집은 거의 전체가 번안시들이다. 조선 한시의 함의성에 관해서는 따로 논하겠다. 그림은 조선조 문인화들을 모사한 것들도 많은데, 이번에 감상한 <영사정 팔경시>에 붙여진 작자 미상의 8폭의 그림들도 압권이었다.

최명희의 혼불 문학관은 의외로 잘 조성돼있어 흡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사정, 사제당 기념관은 너무 초라했다. 사림의 에토스(인격적 힘)가 충만한 그곳에,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의 성지로서 성대한 기념관과 박물관이 건립됐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안 교수가 ‘천지’의 ‘땅 지’ 자가 사림 발흥의 암시적 상징이라고 역설한 정암의 시구절을, 칸트의 ‘세계공화국’, 즉 ‘영원 평화’의 ‘미발의 계기’로서 음미하기 위하여 인용해 본다.

그대의 떠나감 마침 봄철이니/ 하늘과 땅이 인화함과 온화함 기르네(조광조)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3-03-28 04:20:54
주권없는 패전국 불교 Monkey 일본의 성씨없는 점쇠(일본에서는 천황). 그뒤 한국에 주권.학벌없는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점쇠가 세운 마당쇠).

윤진한 2023-03-28 04:20:18
http://blog.daum.net/macmaca/3127@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승계로, 6백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최고(最古,最高)대학.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두 대학만 일류.명문대임. 해방후 조선성명 복구령으로, 유교국가 조선의 한문성명.본관등록이 의무인, 행정법.관습법상 유교나라 한국. 5,000만 한국인뒤 주

윤진한 2023-03-28 04:19:30
Royal대며, 일류.명문으로 지속적 제한을 하는게 옳습니다. 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https://blog.naver.com/macmaca/222842508991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윤진한 2023-03-28 04:18:29
각종 학교 교과서와, 헌법.국제법으로 대학학벌을 판단하는 성대출신입니다.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고려말 성균관으로 개칭, 조선 성균관, 해방후 성균관대로 계승).

수천년 역사를 기록한 正史인 세계사와 한국사를 조합하여, 학교교육을 받아온 한국이라, 학교교육의 제도권이론은 대중언론.입시지의 새로운 도전을 반영해오지 않았습니다.교과서(국사,세계사), 헌법, 국제법을 못이기는 대중언론.입시지의 한계를 알아야 함. Royal 성균관대, 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로 설립이 기획되어 세워진 귀족사제 이나시오의 예수회(교황청의 실세)산하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다음 Royal대 예우! 성균관대(양반대학)와 서강대(가톨릭계 예수회의 귀족대학)만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