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㊻] 조지아의 폴리포니와 백만송이 장미
[홍미희의 음악여행 ㊻] 조지아의 폴리포니와 백만송이 장미
  • 조지아 트빌리시=홍미희 기자
  • 승인 2023.06.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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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와이너리 앞 폴리포니 연주
조지아 와이너리 앞 폴리포니 연주

(조지아 트빌리시=월드코리안신문) 홍미희 기자

코카서스 3국 중 하나인 조지아에서 우연히 폴리포니를 만났다. 조지아는 포도주의 나라다. 기원전 유적을 가도 포도주를 보관하는 와이너리가 있을 정도로 포도주에 대해 애정과 자부심이 있고 역사가 깊다. 지나가면서 보이는 집에는 포도나무가 몇 그루씩 자라고 있을 정도다. 특히 조지아의 동쪽에 위치한 카헤티는 조지아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 생산지다. 폴리포니와의 첫 만남은 카헤티의 와이너리에서였다. 와이너리는 넓고 아름다웠다. 잘 손질된 길을 차를 타고 들어가자 한 건물이 나타났고 그 건물의 입구에는 남성들 5명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가 조지아의 폴리포니였다.

원래 폴리포니는 2개 이상의 성부를 지닌 다성부 음악을 말한다. 폴리포니는 서로 수직적으로 꾸며주는 관계 화성의 호모포니와 대칭적인 개념으로 여러 개의 선율이 독립적으로 흘러가며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다. 르네상스 시대 음악가인 팔레스트리나는 심지어 6성부로 된 다성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는데 폴리포니는 바로크 시대에 대위법적 양식을 가진 푸가, 카논 등으로 발전했다.

조지아 폴리포니[사진=위키피디아]
조지아 폴리포니[사진=위키피디아]

이 폴리포니는 여러 나라로 퍼지면서 다성합창으로 발전했는데 조지아의 폴리포니가 가장 유명하여 2001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조지아의 폴리포니는 종교와 축제, 애도의 모든 장소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 속에서 늘 연주되고 있다. 주로 남성중창으로 부르고 기타와 같은 악기로 반주하기도 하고 무반주로도 부른다. 공통점은 너무 당연하지만 각자 다른 성부를 맡아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포도를 수확할 때 부르는 노동요, 성당에서 수도사들이 부르는 성가, 크리스마스 캐롤, 혼인과 장례식, 집안의 잔치에서도 폴리포니를 만날 수 있다. 그냥 평범한 가족 모임에서도 할아버지, 아들, 손자, 삼촌까지도 각자 다른 성부로 노래 부르기도 하고 조금 큰 잔치라면 노래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긴 시간을 즐긴다.

카헤티의 카레바 와이너리에서 만난 폴리포니는 말하자면 권주가였는데 이 지역 폴리포니의 특징은 베이스 음을 기본으로 하는 노래였다. 바로크 시대의 오스티나토처럼 길게 뽑는 베이스음이 있고 여러 개의 성부로 노래를 부르는데 악보도 없이 그저 체득된 화음과 성부로 노래 불렀다.

그다음 폴리포니를 만난 곳은 한 성당에서였다. 조지아는 아르메니아와 함께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현재도 조지아정교를 믿고 있다. 이 나라가 기독교의 나라인 것은 처음 5월 10일에 도착했을 때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은 공휴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고 학생들도 학교를 가지 않아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성안드레아 축일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성당은 서유럽에서 만난 성당과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조지아 카페의 연주자
조지아 카페의 연주자

조지아의 성당은 현재 진행형으로 기도하는 곳이다. 들어갈 때도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이나 모자라도 써야 하고 남자들은 모자를 벗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 들어가도 거의 모든 성당과 수도원에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수사님과 신부님들을 만날 수 있다. 실제 미사가 진행되고 의자가 없는 성당 안에는 주민들이 서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한 성당에서는 백일이 좀 지났을 법한 아기가 세례를 받기도 했다. 관광지가 아닌 실제로 삶 속에서 기도드리는 곳이 조지아의 성당이다.

어느 날 미사를 드리고 있는 성당을 들어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역시 폴리포니였다. 녹음된 음악이 아닌 실제 연주하는 소리에 여기저기 살펴보니 2층 구석 기둥 옆에서 서 있는 몇 명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의 성당은 대부분 창문이 없고 천장이 있어 그 자연 빛에 의존하여 보는 경우가 많다. 또 사진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 찍을 수 없었지만, 그곳이 성가대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례 성가에도 폴리포니 방식으로 미사를 드렸다.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

또다시 폴리포니를 만난 것은 트빌리시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간 한 카페였다. 2명이 이것저것 심지어 생일축하까지 다양하게 노래하다가 자연스럽게 폴리포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냥 편하게 부르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 생활에 속해있는 폴리포니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조지아에 살고 있는 이광복씨는 “여기서는 목소리로만 연주하는 것을 폴리포니, 폴리페니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참 듣기 좋아요. 악보도 안 보고 다 외워서 부르죠. 이곳 사람들은 잔치할 때도 불러요. 춤도 추고 댄서도 부르고 대부분 악기도 같이 불러요. 폴리포니는 즉흥적이고 자율적인게 많아요.”

‘폴리포니’ 외에 또 하나 조지아에서 만난 노래는 ‘백만송이 장미’였다. 이 곡은 알고 보니 조지아에서 유명한 화가인 니코 피로스마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였다. 그는 카헤티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하여 트빌리시 상인의 양자로 들어가게 됐는데 말이 양자지 그저 일꾼에 가까웠던 그는 간판을 그리면서 생활했다. 그의 그림은 당시 미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알콜 중독과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조지아에 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트빌리시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를 찾았다. 어떻게 보면 현대적이기도 하고 원색에 강렬한 그의 그림은 오늘날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니코 피로스마니와 여배우 마르가리타
니코 피로스마니와 여배우 마르가리타

백만송이 장미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는 프랑스 출신의 마르가리타라는 여배우를 짝사랑하게 됐다. 그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림과 살고 있던 집 등 모든 것을 팔아 엄청난 양의 장미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피로스마니라는 사람은 알지도 못한 채 어떤 부자가 선물했을 거라고 짐작하며 그곳을 떠났다. 이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러시아의 시인이 가사를 붙이고 역시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수인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굉장한 히트곡이 됐다. 이 곡은 전세계에서 번안됐고 우리나라에서도 가수 심수봉이 가사를 붙여 노래했다.

알라 푸가초바
알라 푸가초바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그림이 전부였다네
자신의 집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도 팔아
그 돈으로 바다를 덮을 만큼 장미꽃을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네

아침에 그대가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듯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죽이며 서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짧았네 밤에 기차가 그녀를 데려가 버렸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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