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21] 위트컴
[아! 대한민국-221] 위트컴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3.06.24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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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950년 8월 18일은 부산이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임시수도가 된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수도를 대전(6월 27일), 대구(7월 16일)를 거쳐 부산으로 옮겼다. 당시 부산역은 열차편으로 도착하는 피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보다 앞서 해방 직후 해외에 나가 있던 동포들이 밀려들면서 부산은 유례없는 인구 폭발을 경험한다. 28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던 부산은 전쟁 막바지 10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상태를 거듭하면서 부산은 1,023일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된다.

기름종이와 양철조각으로 비만 가릴 정도의 지붕을 얹은 판자촌들이 공동묘지에까지 빼곡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피란민들은 가마니와 판자 따위로 산비탈에 움집과 판잣집을 지었다. 그렇게 생긴 피난민촌이 남구 우암동과 서구 아미동, 중구 영주동 등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부주의가 화재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에 당시 부산을 불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1953년 11월 27일, 영주동 판자촌에서 큰불이 났다. 이 불은 시속 11.8km의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주택 3,132채가 소실되었고 이재민만 3만명이 발생했다. 사망자도 29명이나 됐다. 하지만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 정부가 이들을 돕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미2군수사령관으로 부산에 와있던 리처드 위트컴(Richard Whitcomb, 1894~1982) 준장이 사령관 직권으로 군수물자를 풀어 이들을 구휼했으니 추위에 갈 곳 없는 시민들을 위해 천막을 치고 침구류와 옷과 식량을 나눠준 것이다. 당시 위트컴으로서는 상부의 허가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군수물자의 무단전용이었다.

결국 위트컴은 미 하원 청문회에 서게 되었고 이 청문회에서 그는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는 답변으로 하원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많은 구호품을 안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영도를 순찰하던 중, 고통 속에 아이를 낳는 산모를 보고 병원건립을 추진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메리놀 병원이다.

그는 피란민들에게 부족한 의료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 장병 월급을 1% 모으는 기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가 직접 갓을 쓰고 도포 차림으로 거리로 나가 모금운동을 하는 모습이 미국 잡지 <라이프>에 소개되기도 했다. 위트컴은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장전동에 50만평의 메리놀 병원 부지를 확보했다. 밴플리트 장군이 한국전쟁의 영웅이라면 위트컴은 전후 재건의 영웅이었다.

그는 전역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남은 일이 있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해병 1사단 병사들의 유해를 송환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33세 연하의 파트너 한묘숙과 함께 했다. 위트컴은 자신의 연금은 물론 사재를 모두 털어 넣었다. 한남동 13평짜리 아파트가 그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이었다.

부인이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를 비밀리에 접촉하면서 유골송환 작업을 진행하던 중, 1982년 7월 12일 위트컴은 미8군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리고 13만 4,000㎡의 유엔기념공원에 2,315명의 유해와 함께 안장되었다. 위트컴은 여기에 묻힌 유일한 장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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