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단장(斷腸)의 아픔
[김재동칼럼] 단장(斷腸)의 아픔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4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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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斷腸)이란 말이 있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으로 나와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픈 마음을 어찌 헤아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지구상의 어떤 언어로도 그 아픔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한 미국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딸을 떠나보낸 지 5주란 시간이 지나서일까? 아니면 아직 딸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어서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식사 시작 전에 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굴에 어리는 표정과는 사뭇 다른 슬픔을 보았다. 안경 너머로 흘러나오는, 그의 눈빛은 보일 듯 말 듯 젖어있었다.

그는 무난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목사와 단둘이 마주 앉아 2시간 30분을 대화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종교가 없는 일반인과 목사의 만남, 대화상대로서 쉬운 조합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참 괜찮은 목사다. 평소 우리의 대화 내용은 문학과 책, 종교, 정치, 사회, 철학, 예술 등 다양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잠시나마, 그가 슬픈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주로 그에게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미국 차기대선이나, 미국의 미래에 대해 질문했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특히 후쿠시마 핵 폐기 수 방류가 임박해 오는 것에 대해, 인류가 감당해야 할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했다. 감리교회의 역사와 배경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대화로, 막내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상실의 아픔을 생각 저편 한구석으로 밀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문득문득 꺼내 보게 될 딸의 기억과 슬픔을 안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오래전, 미국교회에 나가는 한국인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교회 미국인 성도 중에,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여신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불과 며칠 전, 자식을 잃은 어머니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죽은 딸은 40대로, 세 아이의 엄마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였다. 딸의 장례를 치른 며칠 후 그녀를 교회에서 본, 그 한국인 친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성도들에게 딸 장례식에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 한국인 친구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화사한 옷차림에 손톱에는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고, 웃는 얼굴로 인사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문화 차이에서 오는, 겉으로 비추어진 모습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아픔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미국 부모들이 겪는, 자녀 잃은 아픔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가족의 죽음이란, 한국인의 정서로 바라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문화와 정서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일 것이다. 딸을 잃은 그 어머니의 겉모습은, 슬픔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 한국인 친구도 이제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마다, 개인마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상실의 아픔을 느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 한국 부모나 미국 부모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그 아래 더 많은 아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한 친구 외, 타인 앞에서 슬픔 같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의 정서는 조금 다르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녀를 잃은 부모라면, 차림새와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 말씨 몸가짐 등 어딘가 숙연함과 슬픔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 목사의 딸은 아빠라는 단어에 담긴 우주를 안고,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는 목사이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여러 번 읽었으며, 그 책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목사이기 이전에 한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란 것을 깨달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얇디얇은 베일이 그것을 분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딸을 사랑한 만큼, 깊게 자리한 상실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고 느꼈을 상실의 실체를, 껴안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딸 지연 양은, 그의 가슴에 단장(斷腸)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며, 그리움과 사랑으로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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