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가벼운 대화(Small talk)
[김재동칼럼] 가벼운 대화(Small talk)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28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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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는 직역하면 작은 대화이다. 즉 가벼운 대화라는 뜻이다. 미국의 일상에서는 늘 스몰 토크로 모든 대화를 시작한다. 개인적인 대화든 비즈니스로 일 처리를 하든 가벼운 대화로 물꼬를 튼 다음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웃과 친구,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시 말해 스몰 토크는 미국의 대화 문화인 것이다. 

미국 문화에 적응하기도 전 일이니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차가 없었던 나는 주로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여행을 했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던 때라 차표를 예매한다든지 당일 차표를 사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일정한 시간 전, 직접 가서 줄을 서야 했다.

하루는 미국에서 첫 여름 휴가여행 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뒷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영어가 부족했던 터라 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입가에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일관하느라 진땀을 뺀 일이 있었다. 그것이 스몰 토크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였다. 

더 곤란했던 상황은 휴가를 떠나는 첫날에 벌어졌다. 차에 올라보니 이미 차 안은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꽉 차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몸이 큰 중년의 흑인 여성이 이미 앉아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주로 차가 없거나 수입이 적은 서민들이 이용했다. 승객 중 거의 반 이상이 흑인이었다. 

그녀는 말하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계속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느냐, 어디 가느냐, 이름이 뭐냐, 하는 일은 뭐냐, 학생이냐, 시시콜콜한 것들을 쉼 없이 물어왔다. 나는 몇 마디 겨우 답을 했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표정으로 대신했다. 
 
버스는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이 있는 도시마다 정차했다. 그때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했다. 다시 차에 올라 착석하면 그녀는 어김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는 척 연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 여행의 묘미는 자가운전을 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차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첫 여름휴가의 첫날은 그렇게 끝을 맺고 말았다. 

미국에서는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스몰 토크에 노출된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타인에게 내가 먼저 가벼운 말을 걸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한 장소가 있다. 바로 엘리베이터 안이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Hi”, “Hello” 하면서 가벼운 대화를 한다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미국인들은 스몰 토크를 비즈니스와 대인관계를 잘 이끌어가기 위한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나 종교에 관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어떤 칼럼에서 스몰 토크 주제로 피해야 할 몇 가지를 읽은 적이 있다. 

“첫째 돈 문제(Finances) 둘째 정치와 종교(Politics and Religion) 셋째 성(Sex) 넷째 죽음(Death) 다섯째 외모, 상대방의 나이, 살이 찌고 빠진 것에 관한 것(Appearance) 여섯째 개인적인 험담(Personal Gossip) 일곱째 지나치게 전문분야의 주제(Narrow Topics) 여덟째 과거의 연인(Past Relationships) 아홉째 건강(Health)”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한다. 암묵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수순인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과의 사이에서는 금해야 한다. 몇 살이세요?(How old are you?) 또는 결혼하셨나요?(Are you married?)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상대의 가족 관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먼저 하는 편이 낫다.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가족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날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에서 벌어졌던 그 흑인 여자와의 대화는 스몰 토크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면으로 보면 그녀는 나름,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듯하다. 옆자리의 아시안 청년의 불편이 염려된 나머지 계속 말을 걸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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