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희로애락’ 단상
[대림칼럼] ‘희로애락’ 단상
  • 전춘화(소설가)
  • 승인 2023.09.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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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까마득한 꼬마 시절부터 일기를 썼다. 하루가 얼마나 지루하거나 숨가빴거나 뒤숭숭했던지를 막론하고 고즈넉한 밤 엎드려 누운 채로 일기장을 펼쳐 그날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쓰고 일기장을 덮으면 마음에 작은 평안과 안도가 일었다. 쓰다 보면 그날이 어떤 하루였든 다시 돌아볼 용기를 불러일으킬 때도 있었고, 분주함에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작은 순간을 기억에 소환할 수 있는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니면 낮 동안은 파도같이 큰 일인 것 같았는데 쓰고 보니 사는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초연해지는 마음을 갖게 된다거나. 일기책 한 권을 채우면 문방구에 뛰어가 새로운 일기장을 고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첫 페이지를 펼칠 땐 기록하게 될 미래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나는 그렇게 삶에 밀착하는 법을 배웠다. 삶이 뭔지에 대해 철학자만큼 진지하고 깊은 성찰은 어려웠지만 여전히 살만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미래에 대해 절망보다 기대하는 마음이 한줄기 빛처럼 남아있다면 그걸로 삶을 대하는 태도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십대를 마감하던 즈음에, 그러니까 스무 살 생일날 나는 삶을 기록하는 방법을 더 만들고 싶었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연말마다 언론과 티비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평가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매년은 힘들겠지만 나도 10년에 한 번씩이라도 삶에 평가서를 작성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스무 살의 생일날 10대 시절을 돌아보며 희로애락을 하나씩 뽑아 적었다. 가장 큰 기쁨은 백일장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 가장 화나는 일은 엄마가 내 일기장을 훔쳐본 것, 가장 슬픈 일은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가장 큰 낙을 느꼈던 건 매번 일기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새로운 일기책의 첫 페이지를 펼칠 때.

만 30세의 생일날 나는 일기책이 아닌 키보드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 바빠진 탓도 있겠지만 점차 어른이 되어갔던 탓에 일기를 잘 쓰지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일기장에 옮길 용기를 잃었고 분주한 하루의 끝에 차분하게 일기를 적어나갈 체력과 여유가 고갈되었다. 무엇보다 20대의 세계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자주 세상과 거칠게 스치곤 마음의 살갗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고자 애썼지만 한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느껴지는 역풍을 이겨내지 못했다. 다들 사랑을 살랑살랑 봄바람에 비유하지만 봄바람의 실상은 매우 거칠며 심지어 산불의 위험이 된다는 걸 알고 있을까? 원룸에서, 작은 중고 냉장고의 엔진이 드렁드렁 돌아가는 바로 옆에서 미처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푸석한 얼굴로 코를 골며 잠드는 고단한 하루가 이십 대 후반에 동전처럼 쌓였다.

그래서 난 서른을 맞은 날 희로애락을 타이핑하며 꽤 쓸쓸하고 괴로웠다. 기쁜 일은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첫달 월급이 입금됐던 날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 기쁨에 비하면 내가 좋아했던 사람도 날 좋아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됐을 때가 더 기쁘지 않았을까? 헌데 그건 기쁨이라기보다 설렘이 압도적으로 컸다. 희로애락을 한가지씩 적는 일이 스무살때에 비해 극명하게 어려워졌음을 직감하고 몇 번이고 쓰다 지운 텅 빈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서른 살의 나는 그날 깨달았다. 이젠 나도 이른바 그레이존에 들어섰다는 것을. 기쁨도, 슬픔도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았다. 얼룩덜룩한 감정들은 뒤엉켜져 있었고 실타래처럼 꼬여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으로 가장 희로애락에 가까운 감정들을 찾아 끄적였다.

4년 뒤면 곧 마흔이다.

요즘은 버스 역 정거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아침 일찍 일어나 양치질을 하며 실눈을 뜨고 거울 속 모습을 들여다보다가도 마흔의 나는 어떤 일들을 십년 동안의 기념할만한 희로애락으로 꼽게 될까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지금 예상하는 희로애락을 뒤집을만한 일들이 생길 수 있을까. 희와 락은 단골고객처럼 반색하며 맞이할 요량이지만 노와 애는 더이상 업그레이드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애(哀)는, 더욱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怒)야 마음을 다스리는 영역에서의 일이니 거부감이 덜하지만 애(哀)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 왕왕은 나의 작은 의지로 감당이 안 되는 거대한 파도 같은 슬픔일 확률이 높아서 내게 올 희와 락의 찬스를 다 써서라도 더 큰 애(哀)만은 막고 싶다는 마음을 알아챈 순간, 이것도 아직 삼십대라서 가능한 욕심이겠구나 싶은 깨달음에 슬며시 웃고만다.

다들 나이가 들수록 희로애락은 옅어진다고 말한다. 만날 설레면 심장병이 온다고 철석같이 믿듯이 자잘한 일에 자꾸 웃다 보면 얻는 건 눈가에 피어날 자글자글한 잔주름뿐이고 화를 내봤자 혈압만 오를 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모두의 소확행이 된 지도 꽤 오래된 얘기 같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더이상 아무 기대를 하지 않고 마모되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큰 애(哀)일지도 모르지. 이대로라면 세상만사에 덤덤해진다는 노인이 될 때 쯤에 난 희로애락을 적어낼 수 있을까?

차라리 더 크게 웃고 더 많이 슬프더라도, 그래서 조금 더 일찍 생명이 소진되더라도 결코 덤덤해지지 않는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마흔 살 그날엔 다시 연필을 들어 또박또박 나의 희로애락을 적어봐야겠다.

필자소개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연변대학교 조문학부를 졸업했다. 2011년에 한국에 왔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글을 쓰고 있다. 중국 조선족 문예지들에 소설과 수필을 발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설집 <야버즈>를 출판했다.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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