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㊷] ‘나비야 청산 가자’와 ‘곁’
[우리 시조의 맛과 멋㊷] ‘나비야 청산 가자’와 ‘곁’
  •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자문위원
  • 승인 2023.09.15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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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나비야 청산 가자
- 작자 미상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무러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닢에서나 자고 가자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이의 작품으로 ‘나비야, 초목이 우거진 푸른 산으로 가자, 범나비야. 너도 같이 가자구나, 가다가 해 저물거든 꽃에 들어가 자고가자. 만약 꽃이 잘 수 없다고 푸대접하거든 잎에서 자고 가자’하는 시조로 청산은 사람이 풍기는 바람과 먼지 즉 허위 과 같은 간악이 전혀 없는 세상이다. 허위의 간악한 속세를 부인하는 의식 철학이 기조가 되어 청산은 사람이 살만한 이상형으로 보며 현실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읽을수록 감칠맛이 돋는 시조로 자연 몰입의 시상이 담겨 있다. 

* 현대시조


- 류미야

상자 속 귤들이 저들끼리 상하는 동안
밖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무심하다
상처는 옆구리에서 나온다네, 어떤 것도

류미야(柳媚也, 1969~): 2015년 4월호 월간 <유심> 신인상 시조로 등단한 시인이다. 이 시조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상으로 잡아 썼다. 보이지 않는 상자 속 ‘귤’이 서로 ‘곁’이 되어 부딪쳐 어떻게 상처를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자 속 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오고가는 동안 서로 부비고 서로 부딪쳐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상처를 입고 또 내기도 한다. 그런데 상자 밖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요하고 평화롭고 무심하여 멀쩡한 모습이다. 그러니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한다. 시간의 밀봉 속에 귤만 상처를 안고 있다. 이 상처는 ‘옆구리’ 즉 ‘곁’에서 나온다고 시적 화자는 말하고 있다. ‘어떤 것도’ 즉, 모든 것이 이런 원리에 맞닿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내는 것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고, 곁인 이웃이나 가까운 이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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