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의 ‘해외 입양인 소개’ 문제없나?
[수첩]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의 ‘해외 입양인 소개’ 문제없나?
  • 이종환 기자
  • 승인 2023.10.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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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점령' 지역에 '기지촌’...‘혼혈아동’들로만 소개해서야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전경
인천 한국이민사박물관 전경

인천항에 자리잡은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가을 단풍이 절정이었다. 이곳을 찾은 것은 10월27일 금요일 오전이었다. 마침 인천에 위치한 인하대에서 재외한인학회와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가 개최한 공동국제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여하는 기회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았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한국 해외이민의 역사를 소개하고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5대양 6대주로 떠난 해외 이민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물들로 구성돼 있고, 기획전시관은 내용이 바뀌는데, 이곳을 찾았을 때는 재일동포의 역사가 기획전시로 소개되고 있었다. 기획전시 타이틀은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조선인, 자이니치, 다시 재일동포’였다.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82만여 명의 재일동포가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국적이나 조선적을 가진 일본 거주자, 넓게는 일본국적을 취득한 한민족을 ‘재일조선인’ ‘자이니치’ ‘재일코리안’ ‘재일한인’ 등으로도 부릅니다.”

이렇게 소개한 ‘에필로그’는 “재일동포의 궤적은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비롯됐다”고 적고 있었다,

“식민지의 조선인은 가난을 피해서 또 원하지 않았음에도 ‘내지(내지)’라고 불렀던 일본 열도에서 ‘선인(조선인)’이라 불리며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삶을 살았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은 1947년 5월 ‘외국인등록령’에 의해 외국인으로 간주되면서 일본 헌법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제도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이니치(재일)가 되었습니다. 지난한 분투 속에서도 정상국가를 꿈꾸는 모국에 무한한 사랑을 보내었던 이들을 우리는 재일동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에필로그에서 소개한 기획전시는 제2부 ‘식민지 조선인에서 내지의 선인으로’, 제3부 조선인에서 자이니치로, 제4부 재일동포, 열도에서 우뚝 서다, 제5부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었다.

전시관에는 관동대지진, 차별, 지문날인 등 어려운 시기는 물론 재일동포의 모국사랑도 소개하고 있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인천상륙작전과 평양탈환작전을 위해 642명의 재일동포 청년들이 군번도 없이 재일의용군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재일동포들은 1960년대부터 경제적으로 모국을 지원하였습니다. 수출강국 대한민국의 원조인 구로공단 개설, 제주 관광시설 확충, 재일동포 모국투자단, 88서울올림픽 모금운동, IMF 외환위기때 외화 송금운동 등이 그것입니다.”

이와 함께 소개된 전시물에는 ‘제주도에 밀감 묘목’을 대거 보내온 사진도 들어있었다.

상설전시관을 찾았을 때는 전시관이 어린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국제학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외국인 선생님들의 인솔 아래 현장 탐방 학습을 하는 듯 손에 필기구를 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공책에 뭔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상설전시관은 우리 이민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잘 전시돼 있었다. 연해주와 중국, 하와이와 멕시코, 남미 농업이민, 독일 광부간호사 등을 소개한 전시물들을 둘러보며, 이민사를 짧게 요약한 한권의 책을 읽는듯한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상설전시관 한켠에 소개된 해외입양인 부분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해외 입양인들의 영원한 고향, 인천’이라고 소개된 부분의 설명은 이렇게 돼 있었다.

“인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보육기관으로 알려진 해성보육원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보육시설들이 운영되어 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미군은 일제 강점기 부평역 인근지역에 위치했던 육군 조병창과 군수공장 일대를 점령하고 이곳을 애스컴 시티라 불렀다. 자연적으로 신촌을 비롯한 부대 인근마을에는 미군을 상대하는 영업장인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수많은 혼혈 아동들이 태어났다. 일신동의 이온 영아원, 신곡동의 명성원, 성원선시오의 집, 보양원, 부평3동의 성가정의 집 등 대표적인 보육시설들이 부평 애스컴 인근에 위치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이렇게 소개한 설명은 “인천의 보육시설을 거쳐간 해외입양인들은 인천을 모국에서의 마지막 보금자리로 기억하면서 입양국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해외 입양인들이 과연 미군이 점령한 지역 기지촌의 혼혈아동들로만 이뤄져 있을까? 굳이 미군이 육군 조병창 등을 ‘점령’했다고 해야만 할까?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이름붙인 곳이 과연 부천지역 ‘혼혈아동’을 해외입양인 전체인듯 소개해도 될까? 박물관을 빠져나올 때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해외입양인을 소개한 설명부분
해외입양인을 소개한 설명부분
국제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국제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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