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54] ‘간 밤의 우던 여흘’과 ‘구십령 고갯길’
[우리 시조의 맛과 멋-54] ‘간 밤의 우던 여흘’과 ‘구십령 고갯길’
  •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자문위원
  • 승인 2024.03.01 0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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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간 밤의 우던 여흘
-원호

간 밤의 우던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우러 보내도다
저 물이 거스리 흐르고져 나도 우레데리라

원호(元昊, 생몰 미상)는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초장의 여울 울음이 중장에 가서 임금에 대한 울음으로, 그것을 다시 종장에서는 나의 울음으로 전개하고 있다. 단종과 나의 슬픔을 여울물에 감정 이입시켰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단종을 사모하여 영월까지 따라가 서쪽 물가에 있는 석실에 기거하면서 단종이 있는 곳을 향하여 눈물을 지으며 지냈다. 단종을 향한 연군의 정이 사육신들과 같이 적극적인 자세로 곧은 절개를 나타내지는 못했으나, 일생 단종을 생각하는 애달픈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종장에서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다면 자신도 함께 단종의 슬픔을 걸머지고 싶다는 것으로, 단종을 향한 끝없는 충정을 엿보이고 있다.
 
* 현대시조

구십령 고갯길
- ​이근구

낡은 몸 휘청거려 지팡이는 요양사 ​
기억도 느슨해져 돌아서면 깜빡깜빡
겨운 몸 만나는 이들 은혜로운 연(緣)이다


이근구(李謹求, 1934~)는 1997년 시조와 비평으로 등단하였다. 구십령은 중의적 표현으로 고갯길을 지칭하는 구십 령(嶺)과 나이를 지칭하는 구십 령(齡)으로 자연의 길이나 인생길이나 힘겹게 넘는 여정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 나이 구십이 되면 몸은 낡아 휘청대어 지팡이에 기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팡이는 인생을 돌봐주는 요양사 같은 존재가 된다. 젊을 때는 또렷했던 기억력도 쇠퇴하여 가물거리고, 깜빡깜빡 잊기 마련이다. 어느새 망백(望百)을 바라보며 주변의 인연을 이어가는 일이 은혜롭게만 느껴진다. 딸리는 기운 부여잡고 인생의 고비를 넘어가는 지은이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졸수(卒壽)의 구십 령(齡)이 허허롭기만 하다. 파란만장한 삶이 이 시조 바닥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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