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체험수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들(입선)
[병역체험수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들(입선)
  • 박준서(한미연합군사령부, 예비역 병장)
  • 승인 2024.03.04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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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자녀들이 모국에 들어와 자원입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병무청(청장 이기식)은 이들의 군 생활 체험을 담은 수기 공모전을 2년마다 진행해 이북(e-book)으로 발간해왔다. 월드코리안신문은 병무청의 승낙을 받아, 최근 발간된 이북 <2023년 대한사람 대한으로>에 실린 우수 체험수기들을 연재로 소개한다.[편집자주]

박준서(한미연합군사령부, 예비역 병장)
박준서(한미연합군사령부, 예비역 병장)

나는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도네시아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나의 유년시절을 모두 인도네시아에서 보냈지만,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강조했으며, 가장 먼저 인도네시아 현지에 있는 한인 학교와 교회를 다니게 하여 대한민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했다.

부모님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랜 세월 인도네시아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인도네시아 현지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Saya dari Korea, aku orang Korea.”(“나는 한국에서 왔어, 한국 사람이야”),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은 다시 “Korea selatan atau utara?”(“남한 아니면 북한?”)하며 반문하는 경우가 있었고, 왜 한국이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한민국의 역사, 특히 남북분단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대충 얼버무리며 상황을 모면했고, 이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부모님으로부터,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또 역사책으로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 위인들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꼈고, 그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여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세계 최초의 나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한국 사람이라고 밝혔을 때 현지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웃으며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경제적, 문화적 또 군사적인 면에서 한국의 위상이 매우 높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을 만큼, 해외 생활을 하며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졌다는 점이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되었고 감사했다. 이렇듯, 인도네시아에 오랜 세월 거주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운 감정과 애국심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은 만큼 나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국방의 의무가 있고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 오히려 나에게는 기회로 다가왔다. 병역의무를 수행함으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의 안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군 입대를 하자고 결정하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군 복무를 하며 겪었던 에피소드 및 보람을 느꼈던 경험과 솔직한 나의 소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훈련소에서 겪었던 에피소드 및 소감

2021년 8월 30일에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하며 나의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인도네시아에 계셨기 때문에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훈련소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매우 아쉽고 서러웠지만, 짧은 전화 통화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나마, 부모님을 대신해 훈련소까지 배웅해준 삼촌이 있어서 외롭지 않게 입대할 수 있었다. 훈련소에 들어서니 나와 같이 입대한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오랜 세월 거주한 내가 이렇게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적응하고 군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두려움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나의 진실된 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자연스레 해결될 고민이라 생각되었다. 실제로, 훈련소에서 생활하며 정말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서로 좋아하는 관심 분야가 비슷하여 대화가 잘 이어지는 동기가 있는 반면,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동기들도 있었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하는 방식이 다 제각각이었지만, 하나의 목적인 조국을 지키고자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온 대한민국의 귀한 전우들이라는 생각으로 힘든 일이 있거나 서로에게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해 주기로 약속했다. 비록, 솔직한 심정으로 훈련소에서의 모든 순간이 완벽했고 좋았다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14명의 분대원과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특히,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훈련소에서 편하게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교육대장님과 조교들이 밤을 새워가며 교육생들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기 때문이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편하게 쉬고 있는 동안 그 시간에 훈련소 취사병들과 배식담당 분대가 힘들게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편하게 생활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것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희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큰 그림으로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가 평상시에 마음 편히 다리를 뻗고 잘 수 있는 것은 나를 대신해서 대한민국 군대의 구성원들이 밤을 새우며 나라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고, 늦은 밤에도 대중교통을 타고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분들이 당직을 서며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고 또 밤늦게까지 버스를 운행하는 버스 기사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이 사실을 나는 망각하고 있었고 훈련소 생활은 이런 나에게 일상의 소중함과 나라의 안전과 운영을 위해 힘써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주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임무 수행하며 겪은 에피소드 및 소감

나는 어학 특기를 부여받아 한미연합군사령부라는 부대에서 통역병으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때 한국 전쟁과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한미동맹이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철통같은 한미동맹의 중추인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졌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미동맹과 같은 동맹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며, 이와 같은 굳건한 조직이 운영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이바지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고, 연합사에서의 군 복무가 기대되었다.

또한,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고자 다짐했다. 연합사에서는 한국과 미국 양국의 장병들이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논의하는 여러 가지 회의체들을 진행한다. 내가 속해있던 부서에서도 이와 관련된 여러 실무회의를 진행했었는데, 나는 이때 회의 통역을 도와주고 평상시에는 간부님들의 발표 자료 및 다양한 군사 기밀문서를 번역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외에도 내가 속한 부서에서 필요한 다른 행정적인 업무도 도맡아 했다. 비록, 해외에 거주하며 자연스럽게 배운 영어라 영어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전문적인 군사 통·번역 업무는 해본 적이 없어 처음 통·번역 업무가 주어졌을 때는 매우 긴장되었고 두려웠다.

실제로 통·번역 업무, 특히 통역 업무는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군사 영어 실력과 더불어 순발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되었다. 처음에는 군사 용어도 익숙하지 않았고 통·번역 경험도 없다 보니 실수가 잦았다. 해당 부서에서 업무를 하며 적응하는 초기에는 실수가 많아 마음속으로 자책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서의 장교님들은 항상 ‘괜찮아, 처음에는 원래 다 어렵고 누구나 실수한다’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이러한 간부님들의 격려와 배려에 힘입어 군 입대를 하기 전 대한민국의 안보에 도움을 주고 싶었던 나의 초심을 상기하면서 나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평소에는 전혀 접할 기회가 없었던 군사 어휘와 표현들에 빨리 익숙해져야 통·번역 업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업무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일과시간 이후 개인 정비 시간에도 자주 쓰는 군사 어휘들을 외웠고, 다양한 군사, 정치 관련 해외 언론 기사 및 지문을 번역해보고 영상을 시청하며 꾸준히 순차 통역 연습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다행히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져 통·번역 업무를 하면서 실수가 줄어들었고 이에 자신감이 생기며 업무 능률도 향상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이후, 연합사에서 매년 주관하는 한미연합연습에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대한민국의 안보에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군대에서의 경험은 살면서 평생 해보지 못할 귀중한 경험이며, 이를 통해 얻은 자긍심, 자신감, 도전정신,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사고방식은 나를 더 성장시켰고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되었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

병역이행에 대한 나의 생각 및 소감

몇몇 사람들은 군 복무에 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군대를 단순히 시간을 버리는 곳이라 생각하고, 다치지만 않고 전역을 해도 성공적이라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한, 뉴스나 언론에서도 병역기피 현상을 자주 취재하며 이러한 주제에 노출이 많이 되다 보니 우리의 무의식 속에 군 복무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합사에서 미군 장병들과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을 때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 가치 있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된다.

연합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군 장병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생겼고,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근무하고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받는 복지 혜택은 실로 엄청났다. 물론, 미국은 국방비에 약 1000조 원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기저에는 군인과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사회적 인식이 매우 높고 그 가치를 거의 모든 자국민이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도 이를 본받아 군인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라의 안전과 운영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이들에 대한 존중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자원병역 이행을 고민하고 있거나 자원병역 이행을 선택하여 군 복무를 했던 혹은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건네며 나의 자원병역이행 체험 수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대한민국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그대들의 자랑스럽고 용기 있는 선택 덕분이며, 그대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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