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FJ칼럼] 오리진을 밝히는 사회로
[KSFJ칼럼] 오리진을 밝히는 사회로
  • 유혁수<요코하마국립대 교수>
  • 승인 2012.08.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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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예춘추 '작은 거인'에 실린 장훈 선수 기사를 보고

유혁수 요코하마국립대 교수
필자: 유혁수<요코하마국립대학 교수>

지난 달 배달된 문예춘추 6월호를 표지부터 읽어내려 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300회를 맞이한 '작은 거인' 코너에 장훈, 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가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작은 거인'란에 실리는 것은 아주 명예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문예춘추는 애초부터 보수(保守)색이 선명한 월간문예지인데, 현재 다른 어떤 잡지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확고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더구나 한국인이 실렸으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으랴.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읽고난 나는 다시 한번 놀랬다. 왜냐하면 어디에도 장훈이 한국국적의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외국인이라도 걸맞는 사람이 있으면 실어주지만 그가 누군지 오리진을 밝히지 않는 상반되는 양면성을 어찌 받아드려야 할까?

'작은 거인' 코너 표지 맨위에는 'Guess Who I am'이라 쓰여있고, 페이지 맨아래에 힌트가 온다. 장훈의 경우 힌트가 “일본 프로야구사상 유일하게3000개 이상 안타를 날린 선수는?”이었다. 나머지 페이지들은 힌트 내용에 답하기 위한 것임으로 힌트에 관계없는 오리진에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장훈의 오리진이 이 상황에서 무슨 상관이냐 편집자는 말하리라.

문득 '작은 거인'코너가 300회가 될 때까지 외국인이 몇명 선정되어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해 보니까 25년전인 1987년 7월호부터 시작한 셈인데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 도서관에는 문예춘추가45회째부터 밖엔 없었다. 45회 이후 선정된 외국인은 모두 7명인데 순서대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68회 클린턴 미국 대통령(힌트 기재 없음), 123회 李登輝 대만 총통(힌트: 대만의 기적적 발전을 이룬 사나이), 128회 프란소와즈 모레셔스(힌트: 불란서와 일본을 가교한 서양인),181회 陳建一 사천반점 오너 쉐프(힌트: 부친이 사천요리의 달인인 '중화철인'이라면…),242회 金美鈴(힌트: 대만 출생의 배짱큰 아줌마라면…), 252회 아그네스 챵(힌트: '개양귀비 꽃'으로 일본 데뷰한 홍콩출신 가수라 하면…), 270회 도널드 키(힌트: 미국에서 일본 문학 연구의 제일인자라 하면…).

이상의 7명이 장훈과 다른 것은 이름에서부터 외국인이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모든 경우 힌트에 오리진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장훈의 경우 힌트가 “일본 프로야구사상 유일하게3000개 이상 안타를 날린 한국국적 선수는?”이 되지 않은 것일까?

선의로 해석하자면 현재 일본에서 장훈선수가 한국출신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리라. 王貞治를 보라. 대만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일히 오리진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국민영예상을 받았고 세계야구대회 일본 감독까지 하지않았는가? 하지만 王貞治와 장훈은 경우가 같지 않다. 아마도 세계에서 王貞治가 일본국적을 갖고 있지않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장훈이 일본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설령 대부분의 일본인이 장훈이 한국인이란 것을 알고 있다해도 한 인물의 일생을 다루는 지면 4페이지짜리 코너 어디에도 오리진이 밝혀져 있지 않은 점은 역시 석연치않다. 게다가 문예춘추는 필자와 같은 외국인도 보고 있고 해외에서도 구독하고 있다 듣고있는데 대부분의 일본인이 알고 있으니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이렇게까지 오리진에 민감할 필요가 있겠냐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오리진을 밝히지 못한(않은)채 일본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상당수 있는 만큼 이번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일본명을 사용하는 데에 문제가 있지않느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도 오리진을 밝히기가 어려운 사회분위기가 남아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수 없다. 이번 '작은 거인' 코너의 오리진 누락이 이런 사회분위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칼럼은 장훈선수가 게재된 기사를 소재로 한 것 뿐이며 장훈선수 개인의 명예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 양해바랍니다-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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