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싸워 이긴 혼(魂)의 음악 김민호 클라리넷 독주회
암과 싸워 이긴 혼(魂)의 음악 김민호 클라리넷 독주회
  • 탁계석(음악평론가)
  • 승인 2012.09.24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쳐냈다. 비오듯 흘러내린 땀이 눈을 가렸다. 영문을 모르는 청중이라면 울고 있나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편도선암 3기 판정. 죽음의 벼랑 끝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음악이었다. 그 뜨거운 열정이 없었더라면 결코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9월 21일 클라리넷 주자 김민호 독주회가 순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있었다. 18일 서울 나음아트홀에서의 연주 후 3일 만에 다시 열린 독주회다.

지난해 4월에 발병하기 전 워낙 건강했던 그는 20kg이나 되는 체중 감량과 5개월 집중 치료를 이겨내고 다시 소생했다. 바로 옆 침대에서, 다른 병실에서 날마다 사라지는 공포와 죽음의 엄습을 겪으며 窓(창)으로 보인 것은 음악뿐이었다. 다시 살아나기만 한다면 음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껴안고 싶고, 어린이들에게 이 소중한 음악을 전하고 싶었다. 투병하며 클라리넷을 불고 싶은 갈망이 희망의 전부였다.

편도암이라 침샘이 말라 물도 삼킬 수 없는 고통의 연속, 轉移(전이)가 되면 턱을 갈라서 수술을 해야 하는 극단적 위험의 상태를 생각하는 것 역시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암 투병으로선 비교적 짧은 기간에 1차 치료가 완료되자 그는 클라리넷부터 손에 잡았다.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6개월의 연습을 통해 무대에 선 것이다. 호흡으로 부는 관악기는 바로 목과 직결되는 것이어서 다시 힘겨운 사투가 벌어졌다.

이번 독주회 제목은 로만틱 아벤트(Romantic Abend). 슈만의 세 개의 로만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크라이슬러, 그리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모차르트 곡을 제외하면 클라리넷 주 레퍼토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청중을 배려해 클라리넷으로 편곡된 익숙한 레퍼토리들을 선택했다.

긴장된 표정은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태풍에 버티는 벼랑의 한 떨기 꽃이 이럴까.

설상가상 이 날은 소극장 바로 위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어 쿵쿵 소리가 전해지자 음에 집중해야 하는 그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죽음의 터널을 뚫고 사력을 다하려는 연주자에게 예상치 못한 복병은 더욱 체력을 소진시켰다.

그러나 슈만 특유의 낭만적인 선율이 입김을 타고 흘러나오자 이번엔 관객들이 눈가를 훔쳤다. 마치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는 듯한 호흡, 한 음(音) , 한 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역동적인 힘이 아니라 순수한 톤에 담백한 음악의 진솔함이 묻어난 감동의 표출이었다. 후배인 은웅기 피아니스트가 그를 잘 도왔다.

연주회 중간 중간 동료 사회자가 힘을 비축할 수 있도록 관객과 대화하며 틈새를 열어 주었다. 곡이 끝나자 앙코르가 이어졌다. 계속되는 환호에 김민호는 클라리넷 폴카 등 모두 3곡의 앙코르를 선물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잘못될까봐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무대에 선 것이라 했다. 탈진한 모습이었다. 등을 두드려주며 손을 잡으니 차가운 손에 땀이다. 목숨을 걸고 연주를 감행한 그는 자신을 암에 이기게 해준 음악에, 그리고 부모님과 동료, 자신을 아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음악회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아직 완치가 아니니 투병중인 것이다. 5년을 통과해 결과를 봐야한다고 하니 무리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음악에서 생명의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魂(혼)의 음악으로 가슴이 뜨거워진 감동의 밤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