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 ⑫]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면…
[삼강만평(三江漫評) ⑫]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면…
  • 정인갑<북경 청화대 교수>
  • 승인 2012.11.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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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에 ‘秀才造反, 十年不成(수재조반, 십년불성)’이란 격언이 있다. ‘수재가 반란을 일으키면 10년 걸려도 성사할 수 없다’이다. 즉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면 10년 걸려도 성사할 수 없다’이다. 왜 10년 걸려도 성사할 수 없는가? 우선 역사상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조선왕조의 탁월한 젊은 학자 조광조(趙光祖)는 중종(中宗)의 지지를 받아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하고 신진 사류(士類)를 등용하며 공신을 삭훈(削勳)하고 부패정치를 제거하는 등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수구세력에 의해 결국은 실패하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하였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국은 대만과 요동(遼東)을 일본에게 내주고 백은 2억 냥을 배상하기로 하였다. 과거시험 차 북경에 모여든 수재들은 이에 분노하여 강유위(康有爲)와 양계초(梁啓超)의 창의 하에 광서황제(光緖皇帝)에게 청원서를 올렸고 이내 전국 시민단체들의 호응을 받았다. 1898년(무술년)에 드디어 황제의 지지를 받아 무술변법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서태후의 쿠데타로 103일 만에 폐지되었다.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여 5년 만에 실패한 예이겠다.

1966년 8월 모택동은 인류역사상 전례 없는 문혁을 일으켰다. 그 ‘혁명’은 학자 섭원재(聶元梓, 북경대 교수) 등을 선두로 발동하였고 전국의 학생 홍위병이 주력이었으므로 학자와 학생이 기성 정치권에 도전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모택동이 서거하자 1976년 10월, 4인방이 분쇄됨과 아울러 실패로 돌아갔고 대부분 ‘혁명’자들은 옥살이를 면치 못했다.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여 10년 만에 실패한 예이다.

중국, 한국 및 세계 역사상에서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여 실패한 예는 무궁무진하게 많으며 10년 내에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미국의 경우 학자가 대통령을 한 예는 단 제 28차 우드로 윌슨(Woodrou Wilson) 한차례뿐이었다.

학자가 국민의 정서에 못 이겨 정치에 도전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천진한 생각이며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 다수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1966년 모택동이 문혁을 발동할 때 다수 중국인민의 지지와 옹호를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문혁은 인류역사상 있어서는 안 될 가장 황당무계한 정치비극이었다. 문혁은 모택동이 저지른 한 차례의 정치 대 망신이었다. 중국 10억 인민이 그것을 발광적으로 따랐으니 정말 역사의 아니러니 이다.

학자가 정치에 도전하여 성공할 수 없는 원인은 우선 사회를 보는 방법론이다. 학자는 사회를 교조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 현실을 너무 암담하게, 부정적으로 보며 ‘이상’사회를 실현하려는 욕망이 강렬하다. 현실주의가 아닌 이상주의와 낭만주의에 벅차다. 현존의 모든 것에 실망과 회의를 품고 부정정인 견해를 가지고, 참신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생각은 좋지만 너무 천진하며 실현 가망이 없다. 이런 현상을 레닌은 소자산계급의 유아유치명(幼兒幼稚病)이라고 일걸었다.

인간사회는 극히 특수한 암흑단계를 제외하고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엄중한 문제가 존재하더라도 이는 모두 발전도상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아야 하지 그 사회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 안 된다. 성과가 주류이고 문제점은 지엽적이라고 보아야 정확하다. 현존 현상은 모든 인간관계의 집대성이며 필연성의 반영이다. 무릇 현존하는 것은 다 필연적인 것이며 무릇 필연적인 것은 모두 합리한 것이다. 발전과정에서 점점 필연성과 합리성을 잃어가며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를 대충 7:3으로 나누고 70%는 긍정하고 보완하며 30%를 부정하거나 개혁해야 한다. 일체를 부정하는 개혁은 위험한 발상, 실패의 작품이다.

정치판에 금방 뛰어든 젊은 학자는 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우선 인간으로서 자존자립하기 어렵다. 아첨, 모해, 금전, 미녀…. 이런 구정물 속에서 양심 하나만으로 고상하고 정직한 인간성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구정물 속에 뛰어들어 10년 이상의 시련을 거쳐 우선 온 몸에 구정물 묻힌 인간으로 되어야 성사 가능하다.

다음은 인간관계의 처리가 어렵다. 정치꾼들과 상종하려면 권모술수가 필요하다. 원칙성이 있는가 하면 영활성도 있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저질 인간과 결탁할 때도 있고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합리하지만 따를 수 없고 비합리적이지만 임시로 수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정치꾼 고수로는 가능하지만 학자의 정직한 기질로서는 10년 안에 불가능하다. 산전, 수전을 다 겪어보며 10년 이상의 시련을 거친 후라야 가능하다.

학자가 대권도전에 승리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극은 당선된 후에 시작된다. 많은 유토피아식 정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시비를 판가름할 때 번번이 정치꾼에게 당하고야 만다. 정치판의 구정물에 합류하면 자기의 몸을 더럽히고 뛰어들지 않으면 외로운 왕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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