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12월이 올 때면
[Essay Garden] 12월이 올 때면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2.12.12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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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 가장 분주한 달이 12월인 것 같다. 바로 곁에 사는 이웃집에서 우편으로 보내온 크리스마스카드를 해마다 받으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걸어가서 직접 이웃의 얼굴을 보며 카드를 드리려고 한다. 문화 차이는 이토록 엄청나다. 집안에서 우리는 신발을 벗고, 그들은 신발을 신고. 하지만 나도 고마운 인사말을 꼭 전해야 할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카드를 쓰는 행복한 시간을 미국에서 배운다. 왜냐하면, 약속할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에, 지금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면 안 되니까.

남편의 나이가 환갑이 되던 겨울이었다. 그의 생일에 부녀를 위해 나는 좀 기발한 생각을 내었다. 샌디에고 도심지 거리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에게 빵을 나누어주자고 제안한 것이다. 모두 대찬성이었다. 20대의 딸은 가난한 사람의 실상을 통해 무엇을 느끼며 배울 것인가가 난 궁금했다.

1960년대 고생하면서 국비로 대학을 나온 남편은 짠돌이 아저씨다. 공짜로 베푸는 일에는 늘 고개를 흔든다. 일하라는 것이다. 반면에 나는 어려운 사람 보면 돕고 싶은 마음이 천성이라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한국전쟁 후 가난함 속에서 여러 형제와 한방에서 자라며 양보하는 것도 배우면서 학교에 다녔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세대들이 아닌가.
미래의 취직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으로 역사를 전공하던 대학생 딸의 앞날을 걱정하던 남편. 졸업 후 철없는 젊음을 믿고 직장을 찾지 못해 일 년을 방황하던 딸. 시간이 흐르며 딸은 자신 생각을 낮추고 바꾸더니 직장을 찾았다. 본인의 취미와 전혀 다른 곳이었지만, 책임을 지니 열심히 세상을 배우며 뜻밖에 잘 해내고 있었다.

12월의 으슥한 밤거리를 따라 나는 차를 서서히 몰면서 부녀를 뒤쫓아 갔다. 남편과 딸은 지저분하고 남루한 노숙자를 만나고 있었다. 술에 취해 자는 사람은 다 귀찮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 했고, 이불을 뒤집어쓴 어떤 이는 그냥 곁에 빵을 놔두고 가라고 말했다며 딸은 소감을 나에게 진지하게 전했다. 불쌍한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는 실감으로 그날 밤 딸은 상당히 마음이 언짢아 보였다. 어려운 사람의 실상을 보고 작지만 나눔의 마음을 딸에게 나는 길러주고 싶었다. 남편도 돈 벌기에만 욕심 부리지 말고, 우리의 현실에 많이 감사하기를 바라는 나의 의도였다. 매년 이 행사를 하려고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위험하다며 모두 반대하여 그만두었다.

미국은 가난한 서민들에게 공짜를 많이 퍼주던 나라였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공짜를 악용하는 얌체들이 있어 국고를 해마다 텅 비게 한다. 지난날 미국으로 방문 온 한국 아이들도 친척 집에 주저앉으면 공짜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심지어는 재산을 교묘하게 감추어 놓고 매우 가난한 서민으로 행사하는 한국인 노인들도 꽤 된다. 비싼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십 년 넘게 세금을 바쳤는데 어쩜 훗날 그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부가 지나치게 퍼주어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경제가 안 돌아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니, 우리는 시대의 운명을 따라가는 수밖에.

얼마 전 한국의 대통령 후보 토론을 보니 서민의 걱정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이야기는 전혀 이해가 안 간다. 비싼 등록금을 받고 사회에 써먹을 수 없는 사람을 기르는 부실 대학들이 왜 그렇게 많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술학교를 많이 세워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인도 양성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 이민 와 보니 당시의 은행지점장들은 고졸 출신도 많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의 음악가들이 연주하고 싶은 나라가 되었고, 컴퓨터 공학의 발전으로 경제적 부를 이룬 나라로 보이지만 실상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된다. 연탄 몇 장으로 겨울을 나는 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쇼핑만 하지 말고, 아이들 손잡고 외로운 노인과 결식아동들을 찾아보는 흐뭇한 겨울을 만들면 어떨까.

19일 대통령 선거일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중국과 일본, 북한의 사이에서 강하게 존재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이 탄생해야 한다. 책임감 있고, 정직하며, 국민을 챙기는 지도자를 향해 투표임무를 마쳐야 하리라. 자랑스러운 조국이 있는 따뜻한 봄을 나는 또 기다린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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