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 ⑯] ‘대탕평’과 대화합
[삼강만평(三江漫評) ⑯] ‘대탕평’과 대화합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3.01.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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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새 정부의 조각을 앞두고 ‘대탕평’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의 유서 깊은 역사를 알아야 그의 심오한 뜻을 터득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탕탕’과 ‘평평’은 약 2,500년 전의 고전에 이미 등장한다. <상서·홍범(尙書·洪範)>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에서 ‘탕탕’은 그저 ‘광대하다’는 뜻이다.

공자의 <논어·술이(論語·述而)> ‘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에서 ‘탕탕’에 흉금이 넓다의 의미가 확대되었다. <상서·홍범> ‘무편무당,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平平)’에서 ‘평평’은 ‘다스림에 질서가 있다’는 뜻이다.

후세의 중국 고서에 등장하는 ‘탕평(蕩平)’이란 단어에는 ‘역적의 무리를 소탕하고 평정하다’와 ‘길이 평탄하다’라는 두 가지 뜻 만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한반도에 들어오며 ‘탕탕평평(蕩蕩平平)’이라 4글자를 붙여 썼거나 ‘탕평’이라 썼으며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의 뜻으로 이용되었다.

조선 때 ‘노론’이요, ‘소론’이요, ‘남인’이요, ‘북인’이요 하는 사색당쟁이 얼마나 심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나 하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가 당쟁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하여 내놓은 정책을 ‘탕평책’이라 일컬었다. 뿐만 아니라 영조 18년(1742)에 ‘탕평비(蕩平碑)’를 세우고 탕평책을 천하에 널리 알려 유생들을 경계하였다.

그 위치가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앞 반수교(泮水橋) 옆이다.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군자는 단결하고 결탁하지 않지만 소인은 결탁하고 단결하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말씀을 영조가 직접 비문으로 쓰셨다. 22대 임금 정조도 꿈에도 잊지 않고 영조의 탕평책을 실시하므로 정조의 침실을 ‘탕탕평평실’이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의 정치를 보면 말이 아니다. 정당별 경중의 차별이 좀 있기는 하지만 말이 의회민주주의이지 각 정당은 서로 헐뜯는 일만 일삼아 왔다. 무릇 라이벌 정당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한다. 국익에 좋던 나쁘던 우선 반대하고 본다. 원칙과 정의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하여 국민의 마음속에는 실망밖에 없다.

안철수 현상도 아마 이래서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구태정치’라 일괄하며 쇄신을 호소하였는데 그 구태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쩌면 조선 때 사색당쟁의 재현이라고 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 박근혜 당선자인지, 아니면 새누리당의 어느 고명한 정치인이 사색당쟁을 연상했고 당쟁의 부리를 뽑아버리고 국민의 대 통합을 실현하고자 하며 영조의 탕평책 생각이 났으며 ‘대탕평’이라는 말을 슬로건으로 내세웠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 딱 들어맞는 슬로건을 내 세운 그 정치인이 고명하다.

현존하는 모든 병폐는 사회관계, 이런 병폐가 산출되는 사회기초의 산물이다. 즉 당쟁이 생길 수 있는 토양이 있는 한 슬로건 하나로 철저한 해결을 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이렇게 볼 때 정치쇄신의 길은 아직 멀고도 멀다.

조선 21대 영조와 22대 정조 때 ‘탕평’의 기치를 내세우고 당쟁의 모순을 얼마 해결하였고 어느 정도의 화합을 이루었는가를 필자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정조가 사망한(1800) 후 불과 몇 십 년이 지난 시대에 당쟁이 얼마나 심하였는지를 <명성황후>라는 소설을 중국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필자는 잘 안다. 단 새로운 시대에 그 형식이 변하였을 뿐이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열강이 이 지역을 침략하고 분할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였다. 그때 조선은 친일파요, 친러시아파요, 친청국파요, 개방파요, 쇄국파요 하며 당쟁의 싸움이 옛날 사색당정 못지않게 치열하였다. 임금도 청국에 쏠렸다, 일본에 쏠렸다, 러시아에 쏠렸다, 개방의 꿈을 꾸었다, 쇄국에 기울어졌다 하며 우왕조왕 하였다.

그러다가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 되었다. 2차 대전 이후 광복을 이룩하였지만 남북이 갈라지고 남한은 동서(영남과 호남)의 갈등이 만만치 않다. 산업화를 이룩하여 생활수준은 향상되었지만 빈부의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모순 또한 웬만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여당, 야당 하며 정당간의 싸움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였다.

즉 당쟁을 중심으로 하는 불화는 조선 500년에 이어 지금가지 현재진행형이다. ‘대탕평’을 내세운 새 정부도 이 문제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 즉 국민의 불화와 대탕평을 통한 대화합은 둘 다 현재진행형이며 아직 오래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중국 고시 한 마디를 기증 한다: ‘산수원기요요혜, 도만만기무시(山修遠其遼遼兮, 塗漫漫其無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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