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내가 선택한 고뇌의 길
[이영승의 붓을 따라] 내가 선택한 고뇌의 길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11.2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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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권력기관 고위직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지인이 있다.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며 온종일 방안에서 컴퓨터게임만 한단다. 아마도 잘나가던 지난날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리라. 그의 얘기를 들을 때면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심하며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 수필을 쓰게 되면서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년 없는 평생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무기력한 은퇴자의 무료한 시간을 무엇으로 메우고 있을까? 최소한의 자존(自尊)은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관심을 주지 않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온 산천을 헤매고 다닐지도 모르며,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바둑으로 그 많은 시간을 무참히 죽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며 있는 돈도 쓸 줄 모르고, 폐쇄된 사고에 갇혀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짜릿할 정도로 회복했었다. 고심하여 쓴 글을 여러 사람 앞에 발표하는 것도 재미있고, 문인들과 함께 문학기행을 다니며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것도 더없이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은 글쓰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랴! 글 한 편을 쓰는데 나처럼 고통을 치르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이 고역스러운 일을 왜 해야만 할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 고뇌(苦惱)의 길을 과연 언제까지 걸어야 할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요즘 글쓰기가 너무
고역스러운 것은 나의 문학적 재능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혹자는 글쓰기를 ‘산고의 아픔’에 비유하기도 한다. 많은 무명작가가 겪는 고통이겠지만 특히 내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 글재주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무엇보다 나는 글감의 소재를 쉽게 잡지 못한다. 어쩌다 소재가 머리에 스쳐 떠올라도 바로 메모하지 않으면 곧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탈 때, 혹은 잠을 자다 깼을 때도 글감 소재가 떠오르면 지체 없이 메모를 해야 한다. 메모지가 없으면 핸드폰에라도 적는다. 그 순간을 놓쳐 반짝 지나가는 글감의 소재를 놓쳐버린 때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뿐만 아니라 나는 근본적으로 어휘력이 빈약하며 글을 쓸 수 있는 문학적 상상력과 감성도 부족하다.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단어를 수없이 바꾸며 쓰고 다시 쓰는 곤욕을 치른다. 그 문맥에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애를 태울 때도 많다. 끝내 생각나지 않으면 미뤄뒀다가 언젠가 기억나면 또 수정한다. 그렇다 보니 남들보다 밀고 두드리는 퇴고를 많이 해야 한다. 글 한 편 쓰는데 열 번 이상 고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어찌 글쓰기가 고역스럽지 않겠는가?

이토록 어렵게 완성한 글이건만 내 글을 누가 과연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어줄까를 생각하면 또 좌절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를 모르는 일부 지인들은 내가 글을 꽤나 잘 쓰는 것으로 착각하여 칭찬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수필을 쓴지 어언 7년이 넘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만의 비밀을 일부나마 솔직하게 털어놓고 나니 막혔던 가슴이 조금은 터지는 듯하다. 

내가 만약 수필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시 한번 자문해본다. 여전히 확신 있게 대답할 말이 없다. 퇴직 후 지나온 세월 뒤돌아보니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글을 쓸 때가 아니었나 싶다.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잃어가던 자존을 지켜왔다. 그 시간만은 누구의 간섭이나 제재도 받지 않았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글쓰기는 내가 선택한 회심의 평생직장이다. 둔재인 나에게는 고뇌의 길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칠순 고개를 넘고 나니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건강 제일주의다. 그렇다고 편안함과 안위만을 추구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고뇌의 그 길이 벅차더라도 생각하는 갈대로 살아가리라.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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