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㉒] 비바 베르디! 꿈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가라
[홍미희의 음악여행 ㉒] 비바 베르디! 꿈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가라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1.04.2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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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개선의 합창(베로나 페스티벌)
아이다 개선의 합창(베로나 페스티벌)

(서울=월드코리안신문) 홍미희 기자= 지난 3월23일, 길이 400m 폭 59m의 거대한 배가 수에즈운하의 제방을 들이받아 운하의 물길이 완전히 막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세계의 유가, 물류, 주식시장은 크게 들썩였다. 이렇게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 있는 수에즈운하는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며 이집트 땅을 지나간다. 이 운하는 인도로 가고 싶어 하던 유럽인들에게 멀리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지 않아도 유럽과 아시아를 빠르게 연결하며 경제적·시간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수에즈운하는 1869년 개통됐는데 이는 그 당시에도 엄청난 사건이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극장의 초연작이 ‘아이다’이다. 이 공연을 위한 작곡자로는 프랑스의 구노, 독일의 바그너, 이탈리아의 베르디가 지목됐는데 그중 선택된 작곡자가 베르디다. 이집트의 부왕인 이스마일 파샤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곡비, 무대장치와 의상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돈을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무대장치는 이집트의 유적을 기본으로, 의상은 람세스 3세의 무덤에서 출토된 병사의 의상을 참조했으며 이 모든 것은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됐다. 그러나 초연은 뜻밖의 사고로 일 년 후에야 이루어졌다. 보불전쟁이 일어나 프랑스에서 무대장치와 의상이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2막 2장에서 라다메스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부분으로 개선행진곡 합창인데 ‘아이다’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나중에는 군대뿐 아니라 코끼리와 낙타, 말까지 등장시키는 등 무대장치에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오페라는 무대장치와 의상뿐 아니라 첫 단계인 기획부터 공연에 이르기까지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우선 좋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음악에 맞게 대사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작곡자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잘 부르는 성악가가 필요하다. 그들의 외모가 이야기와 어울려야 함은 덤이다. 폐병에 걸려 몇 시간 후면 죽어야 하는 여주인공이 너무 건장하다거나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왕자가 초라하다면 관객의 몰입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주인공들의 외모가 극에 잘 어울리면서도 알려진 스타라면 금상첨화다.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의 합창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의 합창

다음은 무대장치다. 초라한 무대장치는 초등학교의 학예회와 같아 예술성은 뚝 떨어진다. 그리고 의상 역시 주인공만 입힐 수 없으니 모든 출연진이 입어야 한다. 심지어 오페라의 시대적 배경은 주로 신화나 고대, 전쟁 등 현대와 다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정확한 의상고증비와 제작비는 한없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준비가 돼도 이를 공연할 공연장이 없으면 설 곳이 없다. 심지어 반주는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와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돈과 직결되는 오페라는 공연을 통해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기 어렵다.

또, 볼거리가 많아야 좋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지루할 수도 있어 눈요기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과 동일하게 들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대사가 노래이기 때문에 대사의 전달이 어렵고 배경은 3막 또는 4막으로 한정돼 있어 시간과 장소에 따른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내용은 관객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빠른 전개와 함께 이야기의 강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다’의 경우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는 장군인 라다메스를 사랑하지만 막상 라다메스는 포로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아이다는 암네리스의 몸종으로 라다메스는 아이다와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 ‘리골레토’의 내용은 어떨까? 리골레토는 꼽추지만 그에겐 예쁜 딸 질다가 있다. 바람둥이인 공작은 질다를 유혹하고 그의 정체를 모르는 질다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공작이 바람둥이임을 알게 된 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본 리골레토는 살인청부업자를 시켜 공작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게 된 질다는 공작을 대신해서 살인청부업자 스파라푸칠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오페라의 내용이 흥미진진할 것 같지만 막상 17세기까지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음악중심이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17세기 음악중심 오페라에서 벗어나 선율과 음악을 살리면서도 스토리를 부각시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독일 오페라를 대표하는 인물은 바그너인데 이 두 명은 같은 해인 1813년에 태어났다. 이들이 활동했던 19세기는 에디슨과 파스퇴르, 퀴리부인, 다윈과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입센 그리고 마네, 모네, 고흐 등이 활동했던 낭만과 개인존중의 사상 그리고 과학이 용암처럼 끓어오르던 시대였다. 베르디는 어쩌면 의도치 않게 이탈리아의 오페라의 수준을 높였을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주어진 느낌과 영감에 따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예술가의 직관이며 능력일 것이다.

베르디
베르디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부세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23세에 결혼했지만 가난에 시달렸으며 27세가 되던 해 그의 부인과 두 자녀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절망적인 시기에 작곡된 ‘나부코’는 바빌로니아에서 유배된 유대민족의 불행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곡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제 아래 놓인 이탈리아의 상황과 겹쳐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히브리노예의 합창대가 부르는 ‘꿈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가라’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곡이다. 이어 작곡된 ‘롬바르디아인’도 폭발적인 성공을 하면서 베르디는 극장주와 감독들에게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는 실제적이고 대중적인 인기 있는 음악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고급예술이 아니라 축구, TV드라마, 영화처럼 생활 속에서 열광하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흥행에 성공한 영화감독이나 유명한 배우는 TV에 나와 작품의 홍보도 하고 만남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더욱 많은 일과 만남에 시달리던 베르디는 밀라노의 생활을 접고 고향인 부세토의 새 저택 ‘산타가타 빌라’로 돌아간다.

1851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며 작품을 고르던 그가 선택한 대본은 빅토르 위고의 ‘환락의 왕’이다. 이전작품이 오스트리아의 압제아래 있던 이탈리아인에게 애국적인 내용을 연상시킨다 하여 검열에 걸렸다면 이 작품은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저속한 음란성’으로 지적을 받았다. 천한 광대가 군주 프랑수아 1세에게 대항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제시된 타협안은 ‘군주를 대신해서 공작으로, 광대는 불구자로, 제목은 바꿀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붙인 제목이 리골레(재미있게 웃다. 장난치다.)에서 따온 ‘리골레토’이다.

베르디 장례식
베르디 장례식

‘리골레토’ 중 질다가 숨어서 보는 줄도 모르고 공작이 부르는 경쾌한 칸초네 풍의 아리아가 바로 ‘여자의 마음’이다. 전자제품의 CF에도 사용돼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곡은 바람둥이인 공작이 오히려 여자란 다 그런 것이라고 조소하는 내용이다. 이 아리아 다음에 이어지는 곡은 4중창이다. 일반적인 중창곡은 같은 멜로디와 가사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오페라의 중창은 멜로디는 같지만 대사는 다른 경우가 많다. 이 4중창의 경우 공작은 여자를 유혹하는 거짓맹세를, 유혹당하는 집시는 웃음소리로, 이 장면을 본 질다는 슬픈 마음을, 리골레토는 복수의 저주를 하는 대사로 구성된다. 이렇게 같은 멜로디를 부르며 서로 다른 대사로 속마음을 깊게 표현하는 노래는 등장인물들의 아픔과 슬픔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후 베르디는 리골레토에 이어 3개의 대작이며 음악적으로도 가장 베르디 적이라 할 수 있는 ‘일트로바토레’, ‘라트라비아타’를 작곡한다. 1857년 47세가 된 베르디는 여전히 수많은 검열에 걸려 흔들렸지만 전 이탈리아에서 광란에 가까운 지지를 받는다. 베르디가 공연할 때마다 환호했던 ‘비바 베르디(Viva Verdi)’는 이탈리아의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지칭하는 중의적표현이었다. Vittorio Emanuele Re D'Italia의 앞글자만 읽으면 'VERDI'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탈리아인들은 ‘나부코’, ‘일트로바토레’,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돈 카를로’, ‘롬바르디아인’들을 보면서 독립의 꿈을 키우며 비바 베르디를 외쳤다. 그리고 터진 4월 전쟁에 베르디는 건강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지방군을 위한 소총 172정을 개인의 돈으로 구입하기도 하고, 부상자와 사망자를 위한 기부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마침내 1860년 이탈리아 통일이 이루어졌고 다음해 베르디는 이탈리아의 초대 상원의원이 된다. 임기를 끝낸 베르디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7년 후 만들어진 곡이 ‘아이다’이다.

말년에 그는 밀라노에 ‘안식의 집’이라는 음악가를 위한 양로원을 건립했고 그의 모든 유산 역시 양로원에 기증됐다. 1901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안식의 집’ 뜰에 묻혔다. 장례식에는 30만명의 인파가 몰렸고 토스카니니의 지휘 아래 900명의 합창단이 ‘나부코’의 합창곡 ‘꿈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가라’를 연주했다. “꿈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가라. 조국의 따뜻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내음이 풍겨 나오는 고원이나 언덕 위에 내려앉으라. 요르단 강변과 시온의 무너진 탑에 인사하라. 잃어버린 나의 아름다운 조국이여!”

음악가 양로원과 베르디의 동상
음악가 양로원과 베르디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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