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63] 파친코
[유주열의 동북아談說-63] 파친코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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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이 당면한 문제의 하나로 100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일본과의 역사적 유산을 지적했다. 제3국인이 보기에는 지구상 가장 가깝고 문화도 비슷해 쌍둥이 같은 한일 두 나라가 과거 문제로 미래를 희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 것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일본과의 역사에서 피해자가 된 부산 출신의 어느 재일교포(ethnic Koreans)의 4세대에 걸친 삶을 추적한 《파친코》라는 소설이 출간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수 도서로 추천했고 지금은 29개국에서 번역돼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미국에서 TV드라마로 제작돼 곧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난 저자(이민진)는 어릴 때 부모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성장해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명문 로스쿨을 졸업해 기업변호사로 미국 주류사회 진입에 성공한 재미교포 여성이다.

저자는 재일교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한 대작을 쓰게 된 경위로, 학부 시절 우연히 일본에서 귀국한 미국 선교사의 한 강연에서 재일교포가 일본사회의 경제적 사다리 아래쪽에서 차별받고 신음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한일 양국의 불행한 역사 속에 감추어진 재일교포의 삶에 대해 역사학도로서 관심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역사자료를 읽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써 오다가 일본계 미국인 남편 따라 4년간 도쿄 거주의 기회를 얻어 실제 재일교포를 취재해 자신이 쓴 소설을 보완해 30년 만에 출간하게 됐다고 한다.

저자가 책 머리에 언급한 “역사는 우리를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라는 말처럼 과거 한일 양국의 지도자들에 의해 잘못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지만 삶을 지속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재일교포의 고뇌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어 큰 울림을 주는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한일 두 나라의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는 모습도 유사한 데가 많다. 그러나 특별히 다른 점을 찾는다면 파친코점의 유무다. 일본의 대도시와 중소도시 가리지 않고 기차역 근처라든지 시장 주변에는 파친코라는 게임방이 번쩍번쩍하는 네온사인으로 손님을 끌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때 일본의 파친코가 한국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한국정부가 사행심을 조장하는 도박으로 여겨 진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자동구유기(自動球遊器)라고도 부르는 파친코는 유리로 덮인 케이스 안에 핀볼머신처럼 쇠 구슬을 이용, 점수를 따는 슬롯머신과 유사한 일종의 아케이드게임이다. 파친코는 금품(현금 또는 유가증권)을 걸어 승부 결과에 따라 재분배하는 도박과 달리, 경품(상품)을 주는 게임으로 분류된다. 사실 경품을 최종적으로 현금화하기 때문에 도박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전후 특별한 놀이문화가 없었던 서민을 위해 일본정부가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행성 있는 파친코점의 음산한 분위기와 때로는 폭력단체와의 유착으로 일본인의 기피 업종이 됨에 따라 민단 및 조총련 소속의 재일교포가 파친코점의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민단 산하의 상공회의소 회원의 70% 이상이 파친코점 경영자라는 통계가 있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조총련계 교포의 파친코 수입이 송금돼 활용됐다는 분석도 있다.

《파친코》의 저자도 소설의 제목을 처음에는 다른 것으로 생각했으나 과거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 재일교포사회가 비교적 진입이 용이한 파친코점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함축적 의미를 가진 파친코를 소설의 제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서민의 스트레스 배출구 또는 심리적 해방구 역할을 해 와 부정적 의미의 파친코에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개념을 도입해 화제를 일으킨 재일교포가 있다. “구슬의 제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일본 ‘마루한’의 창립자 한창우 회장이다.

한창우 회장은 경남 사천군 삼천포의 가난한 소작농인 아버지와 삯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1931년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당시 대부분 가난한 농촌 자녀가 인근 대도시로 나가 공장노동자가 되기도 했으나 소년 한창우는 형이 있는 일본으로 향했다.

한일국교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16세의 한창우는 어머니가 싸준 쌀 두 되와 영어사전을 품에 안고 시모노세키로 가는 밀항선을 탔다. 일본에서 형을 만나 일용직을 하면서 전후혼란기에 특별영주자격을 얻고 조선장학회 지원으로 호세이(法政)대학을 어렵게 졸업했으나 조선인에게는 일자리가 없었다.

한창우는 교토부 미네야마에서 파친코기계 몇 대를 두고 소규모 경영을 하고 있는 매형을 도우다가 가게를 물려받아 파친코사업을 하게 됐다. 그는 사업이 번창하게 되자 장바구니를 든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과거 영세 파친코점의 상식을 벗어나 스웨덴의 이케아를 벤치마킹해 땅이 싸고 주변환경이 쾌적하며 수많은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교외에 대형 파친코점을 열었다.

건물은 값싸게 조립식으로 짓는 대신 새로운 IT기술이 접목돼 승률이 좋으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신형 기계를 배치하고 실내 분위기를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락실처럼 꾸며 담배 연기 자욱하고 혐오감을 부르는 종전의 파친코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마루한의 파친코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 일본 전국에 310개 점포에 12,500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2조엔(20조원 상당)에 가까운 매출 실적을 올리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해 한창우 회장은 한때 일본 재계 7위의 부호로 등극 되기도 했다.

재일교포가 파친코사업을 하게 된 것은 차별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시대에 맞춰 혁신한다면 더 큰 경제적 성공기회가 부여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금융업이라고 하면 선망의 업종이지만 본래 기독교의 유럽 주류사회에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금지된 대금업이 시초였다. 멸시와 차별을 받아왔던 유대인이 천시받은 대금업에 종사했고 수백 년에 걸쳐 시대 상황에 따라 혁신과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금융업을 이루어 낸 성공역사가 연상된다.

한창우 회장의 마루한은 파친코의 둥근 쇠 구슬 동그라미(일본어 ‘마루’)에 자신의 성인 한(韓)을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회장은 일본식 이름이 아닌 부모님이 지어준 한국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일본에 귀화했다고 한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뿌리(정체성)는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 회장은 돈은 기술적으로 벌어 예술적으로 써야 한다면서 거액이 투입된 문화재단을 만들어 한일문화교류에 기여하고 전 재산을 자신을 낳고 키워준 한일 양국의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해 놓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생각한다면 재일교포의 영향력이 커져야 일본사회에서 그 위상이 높아지고 양국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한 회장이 이민진의 《파친코》를 읽는다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놓았지만 그래도 이를 극복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할 것 같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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