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96] 정월대보름과 다리밟기
[아! 대한민국-196] 정월대보름과 다리밟기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1.05.29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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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정월은 12간지 중 셋째 달이다. 밤이 가장 깊은 자시(子時)에 하루가 시작하듯, 밤이 가장 긴 동짓달 자월(子月)이 원래 한 해의 시작이었다. 이를 바꾼 것은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이었다. 천체를 기록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그는 새해를 봄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천문의 법칙으로는 추운 동짓달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맞겠지만, 봄을 맞는 인월(寅月), 즉 12간지 중 셋째 달에 새해를 맞는 것이 보다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기원전 104년에 발표된 새 달력에서 이듬해 ‘인월’이 1월로 바뀌고 세 번째 달의 보름이 정월대보름이 되었다.

정월대보름은 사람들이 1년 중 가장 달을 많이 올려다보는 날이요, 다행히 날씨가 좋아 하늘 가에 밝은 달이 떠오르면 그 보름달을 향해 작은 소망들을 띄워 보냈다. 달빛 아래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두 손 모아 합장 기도하거나, 시골 논에 나가 볏짚 단에 불을 놓는 모습은 반세기 전만 해도 흔한 풍경이었다. 또한 집에서는 지난해 거두었다가 남겨두었던 갖가지 나물과 새봄에 싹을 내민 산뜻한 채소로 가지가지 반찬을 만들어 오곡밥에 얹어 먹는 풍속이 일찍부터 자리잡았다. ‘네 더위, 내 더위 다 가져가라’는 더위팔기도 우리 몸에 익숙했던 정월대보름 놀이였다.

여기에, 정월대보름 밤에는 ‘다리밟기’라는 색다른 풍속이 조선시대에 유행했다. 다리밟기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다리(橋)를 밟는 풍습으로 이날 밤에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脚病)을 앓지 않는다고 알려진 세시풍속이 그것이다. 일명 답교(踏橋) 또는 답교놀이라고 불렸는데, 조선시대에는 한양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성행했다.

“정월대보름에 달이 뜨면 그 해에 풍년이 들 것인가를 점치며 다리밟기 놀이를 하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것으로서 대단히 성행했다. 남녀가 다리 위에 들어차서 밤새도록 밟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어떤 때는 법으로 금지하고, 심지어는 체포하기까지 했다”(이수광의 지봉유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정월대보름 밤이면 우리나라 남녀들이 성 안 큰 다리에 모여서 노는데,그것을 일러 ‘답교’라고 하며 답교놀이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다리병을 앓는다고 한다”(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 주교(走橋’)).

서울에서는 광통교(廣通橋)에서 다리밟기가 있었는데 오늘날의 광교가 바로 그곳이다. 다리밟기는 그림과 시로도 많이 남아있는데, 19세기 초반에 활약한 임득명(1767-1822)은 글씨, 문장, 그림이 모두 훌륭해 삼절(三絶)로 불렸는데 그의 그림, 가교보월(街橋步月)이 특히 유명하다. 천수경이라는 사람의 같은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렇게 되어있다. “대보름은 아름다운 명절이라 술에 취하여 서로를부르네/달빛이 대낮처럼 밝으니 봄놀이가 오늘부터 시작되네/ 노니는 발끝이 큰길을 밝게 하고 무리의 악기 소리가 광통교에 들끓는데/통금도 없는 밤에 맘껏 이야기하니 기쁜 마음이 갑절이나 더해라.”

다리밟기는 외국인의 눈에도 신기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개설한 H. N. 앨런은 자신의 『조선견문록』에서“첫 보름이 떠오르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달빛 아래로 나와 발에 병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를 건너가는 놀이를 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당대의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출생,사망연도 미상)이 이러한 당대의 풍속을 그린 그림이 의외로 세계에 널리 퍼져, 정월대보름의 다리밟기는 한국의 대표적 민속놀이의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진=국가기록원
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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