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의 포스트 펜데믹 로드맵⑮]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
[이종호의 포스트 펜데믹 로드맵⑮]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3차 산업혁명
  •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인협회장
  • 승인 2021.09.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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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1, 2차 산업혁명을 생산혁명이라고 부르며 3차 산업혁명을 생산을 위한 정보혁명이라고 부른다. 1, 2차 생산이 단순히 필요한 상품을 생산했다면 3차 산업혁명은 생산방법을 정보에 의하여 분석한 생산 방식으로 바꾼 혁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3차 산업혁명을 정보혁명의 시작으로 간주하는데 이를 기존의 아날로그 전자 및 기계 장치에서 업그레이드된 디지털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어떤 혁명도 기본 단계가 있어야하듯 제3차 산업 혁명의 발전에는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및 정보 통신 기술(ICT)이 포함된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3차 산업혁명을 인터넷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컴퓨터를 건너뛰어 인터넷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인터넷이 정보공유시대를 열었으며 이어서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컴퓨터(Computer)라는 단어 자체가 ‘계산기’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초창기의 전자식 컴퓨터들이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기계로 독일의 암호기인 ‘애니그마’가 만든 암호를 재빨리 계산하여 해득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의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컴퓨터는 단순한 계산기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정보 단말기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특히 컴퓨터가 처리하는 데이터가 다양화되고 용량이 방대해지면서 한 대의 컴퓨터로는 이를 모두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이르자 개발자들은 두 대 이상의 컴퓨터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디스크(Disc)로 대표되는 보조기억장치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직접 들고 다니며 데이터를 교환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 단점이었다.

2대 이상의 컴퓨터를 케이블로 직접 연결해 데이터를 교환하는 방식도 도입되었지만 문제점이 만만치 않았다. 케이블 길이의 제한도 있고, 3대 이상의 컴퓨터와 데이터를 교환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거리의 제한 없이 많은 수의 컴퓨터와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의 도입이 요청되었는데 1962년, 미국의 MIT공대의 릭라이더(Joseph Carl Robnett Licklider, 1915~1990) 박사가 ‘은하 네트워크(Galactic Network)’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컴퓨터를 상호 연결하자는 구상인데 그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이론도 도출했다.

여러 명의 사용자가 하나의 컴퓨터에 접속하여 작업하면서도 처리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시분할 시스템(Time Sharing System, TSS)’이다. 그의 이론은 컴퓨터의 연산 속도에 비해 사용자의 데이터 입출력 속도가 느리다는 것에 착안한 것인데, 예를 들어 A 사용자가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출력하는 사이의 공백 시간 동안 컴퓨터가 B 사용자에게 입력 받은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시분할 시스템은 이후 등장하는 거의 모든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의 기본 이론이 된다.

인터넷은 사실 냉전의 유산이다. 미국은 핵전쟁이 발발해 통신시스템이 파괴될 때 대체할 수 있는 네트워크 통신 기술을 개발이 필요하자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연구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p서 릭라이더 박사의 시분할시스템을 기반으로 ‘아르파넷(ARPANET: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시스템을 구축했다. 아르파넷은 컴퓨터들을 직접 연결하는 회선 교환 방식 대신, 대규모의 기간 통신망을 구축해 이에 연결된 컴퓨터끼리 자유롭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백본(backbone) 방식을 도입했다.

아르파넷은 1969년 처음으로 가동될 때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UCSB),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소(SRI), 그리고 유타 대학을 비롯한 당대의 대표적인 연구기관 4곳이 참여했다. 그러므로 아르파넷이 복수의 통신망을 집합시킨 광역 통신망을 뜻하는 일반명사인 ‘인터네트워크(internetwork)’의 최초의 사례이다.

아르파넷은 기본적으로 미국방부에서 개발된 것이므로 페쇄적으로 사용하였으나 아르파넷의 효용도가 입증되자 많은 기관들이 이에 참여를 요청하여 1971년 말 23개 호스트 컴퓨터가 아르파넷에 연결되는 등 점차 망을 넓혀가면서 프로토콜 관련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전자우편 서비스 등이 속속 개발된다. 1972년 10월, 공개 시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아르파넷은 자리를 잡는데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의 대표가 참가한 〈국제컴퓨터커뮤니케이션학술대회(Internatinal Computer Communication Conference)〉에서 40대의 컴퓨터를 연결하여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새로운 네트워크 테크놀로지인 아르파넷을 최초로 보여 주었다.

제한된 컴퓨터만 연결되어 있던 아르파넷이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넷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개방형 구조의 네트워크화(open-architecture networking)’라는 아이디어가 도출된 이후다. 이는 독특한 환경과 요구에 의해 설계된 개별 네트워크들을 독특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상호 연결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다른 네트워크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메타 수준의 ‘상호네트워킹 구조(Internetworking Architecture)’를 구축했다. 원래는 ‘인터네팅(internetting)’이라는 이름으로 패킷 무선 네트워크용으로 개발된 것을 아르파넷에 적용한 것이다.

1969년 구축되어 인터넷의 기간망 기능을 수행한 아르파넷은 1983년, 미국방성이 군사용 네트워크 기능을 밀넷(MILNET, Military Network)으로 분리시키고, 아르파넷을 민간용 네트워크인 미국 〈국립과학재단〉 네트워크, 즉 NSFNET로 변형시킴으로서 범용적인 도구로 변형된다. 여기에서 초창기에 사용하던 NCP(Network Control Program)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 및 안정성이 향상된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를 공식 프로토콜로 도입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들에 의해 비로소 현대적인 컴퓨터 네트워크의 기본 구조가 갖춰졌으며, 이때부터 ‘인터넷(Internet)’은 단순히 일반명사 ‘인터네트워크’의 약자가 아닌 고유명사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인터넷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현재 지구인들이 활용하는 상업화 체제로의 활용이다. 이는 인터넷 이용자가 특정 엘리트에서 일반 연구자, 그리고 일반인으로 확대될 수 있게 된 요인이다. 최초로 설립된 상업적인 인터넷 회사는 1987년 UUNET으로, 상업적으로 UUCP와 유스넷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다른 회사들이 잇따라 설립되었지만 당시에는 전자우편 서비스, 뉴스그룹 제공, 채트 서비스, 게임 등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효용도가 알려지자 1989년 10만을 돌파한 호스트 수는 1990년에 30만을 돌파한다. 이와 같은 폭발적인 증가로 아르파넷의 임무가 완료되고 몬트리올 맥길대학교에서 인터넷 검색 엔진인 아키(Archie)가 개발되자 현재와 같은 상업적인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nternet Service Provider, ISP)가 등장한다. 더불어 1991년 NSF는 백본 컴퓨터의 민간 이용을 금지하던 기존의 정책을 철회함으로써 보다 활발한 상업적 이용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인터넷 상업화의 결정적 전기가 마련된 것은 월드와이드웹이 개발되기 시작한 1991년 이후이다. 인터넷의 망(web) 자체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음에도 메일을 주고받거나 특정 목적의 프로그램끼리 통신하는데 주로 쓰였기 때문에 이용형태 및 이용 가능한 데이터의 종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걸림돌 때문에 인터넷의 활용도는 주춤하였는데 1989년,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연구원인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박사가 문자 및 그림, 음성 등의 다양한 데이터를 포함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그에 의해 이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준 문서 형식을 규정하고 문서 속에 연결된 특정 항목은 또 다른 문서로 연결되는 정보 검색 시스템과 연결이 가능했다. 그의 아이디어로 ‘월드와이드웹(WWW, World Wide Web)’으로 표현되는 세계적인 정보 공유 공간 및 이를 구성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서로 연결되는 문서) 방식의 인터넷 표준문서인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웹 문서는 URL(Uniform Resource Locator)이라는 고유한 주소(address)를 가지고 있어 인터넷 정보에 접근하는 보편적(universal)인 체계를 제공한다. 웹 문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인 웹 브라우저가 필요한데, 최초의 그래픽 브라우저인 모자이크, 텍스트 중심의 링스(Lynx),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Microsoft Internet Explorer)가 대표적이다. 요즘은 인터넷 익스플로와 더불어, 구글의 크롬(Chrome)을 위시해 오픈소스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 애플의 사파리(Safari) 등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WWW는 1991년 8월 6일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다. WWW가 인터넷 서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팀 버너스 리는 ‘웹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인터넷의 놀라운 점은 PC 통신처럼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심이 되는 호스트 컴퓨터도 없고 이를 관리하는 조직도 없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ISOC(Internet Society)가 있지만 인터넷망을 총괄 관리하는 기구는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총괄적으로 관리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상의 어떤 컴퓨터 또는 통신망에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통신망 전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실제의 관리와 접속은 세계 각지에서 분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장점을 토대로 현재 인터넷은 전화망 버금가는 거대한 세계적 정보 기반이 되었으며 통신량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공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인데 학자들은 인터넷이 성공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성공 비밀이 있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① 인터넷의 첫 번째 성공 비밀은 ‘아키텍처’로 인터넷 개발자들이 처음부터 남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터넷이 개방될 당시 전화는 교환국의 교환기와 연결돼 있었다. 이런 연결 방식은 모든 도로가 하나의 원형 로타리로 연결되는 도시 도로구조와 유사하여 통제가 쉬운 반면 중앙 허브에 교통 체증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인터넷 개발자들은 실제 도시에서 차량이 운행되는 도로망과 유사한 분산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방식은 트래픽이 적체되는 곳을 데이터가 우회하도록 하여 필요한 곳에 관리자가 용량을 추가할 수 있다.

② 성공의 둘째 비밀은 데이터를 개별 다뉘로 쪼개 온라인상으로 이동시킨 후 재조합하는 기술이다. ‘패킷 교환(packet switching)'이라고 하는 이 과정은 개별 철도 차량이 독립적으로 운행하는 철도와 유사하다. 즉 다른 목적지로 가는 차량이 같은 경로를 공유하기도 한다. 또한 같은 목적지로 가는 차량이 모두 같은 경로로 갈 필요도 없다. 각 차량이 주소를 가지고 있고 각 교차로가 선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 같은 목적지의 차량은 한곳에 모이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므로 인터넷은 더욱 신뢰할 수 있고 견고하며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③ 세 번째 성공의 비밀은 데이터가 다른 네트워크에 전송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즉 데이터 메시지가 전송선을 통해 건물 내를 이동하고, 광섬유 케이블을 통해 도시를 가로지르며 인공위성을 통해 다른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다. 컴퓨터 과학자들이 데이커 패킷의 전송 방식을 표준화한 인터넷 프로토콜을 개발한 이유다. 철도에서 이와 상응하는 개발이 바로 열차가 국경을 건너도록 한 표준 궤도 게이지(선로 양 레일의 간격을 측정하는 기구)의 도입이다. 이러한 IP 표준 덕분에 서로 다른 여러 데이터를 상용 프로토콜에 따라 전송할 수 있다.

④ 네 번째 비밀은 인터넷의 기능이 데이터 트래픽을 라우팅(routing)하기 위해 미리 마련된 중간 노드보다 네트워크의 끝에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단대단 원칙(end-to-end principle)’으로 알려진 이 디자인 덕분에 전체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할 피료 없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통상 기존 전화의 기능은 단지 전화가 연결된 전화국에서 교환기가 발전해야 사용자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인터넷의 계층화된 아키텍처에서는 이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의 마지막 성공 비결은 아무래도 경비 문제에 의한다. 처음의 인터넷은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지만 지금은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사용가능하다. 어떤 시스템과 비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생활에서 인터넷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그야말로 무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우편(e-mail), 원격 컴퓨터 연결(telnet), 파일 전송(FTP), 유즈넷 뉴스(Usenet News), 인터넷 정보 검색(Gopher), 인터넷 대화와 토론(IRC), 전자 게시판(BBS), 하이퍼텍스트 정보 열람(WWW), 온라인 게임 등 다양하며 동화상이나 음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서비스나 비디오 회의 등 새로운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와 풍부한 정보자원 때문에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한다.

필자소개
고려대학교·대학원 졸업,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 및 과학국가박사 학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연구 활동
저서: 「침대에서 읽는 과학」,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등 10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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