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㉛] 귀족의 모순과 속내를 통렬히 비웃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
[홍미희의 음악여행 ㉛] 귀족의 모순과 속내를 통렬히 비웃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02.21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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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공연된 '피가로의 결혼'<br>
2016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공연된 '피가로의 결혼'

우리는 비극을 보면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슬픔에 공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모두가 비극의 카타르시스로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극을 보면서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것이 더 힘든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찾는 것이 희극이다. 그 안의 웃음 속에서 잠시 현실에서 빠져나와 편안함과 페이소스를 느끼고 귀한 희망과 힘을 얻는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은 희극이다. 두 곡 모두 보마르셰의 연극 피가로 3부작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이중 첫 번째 내용을 바탕으로, 피가로의 결혼은 뒷부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이기 때문에 흔히 세빌리아의 이발사 속편이 피가로의 결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에,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1816년에 초연됐다. 또 작곡자도 달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롯시니,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작곡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발표순보다는 이야기의 순서대로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먼저 보고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하는 편이 더 쉽다. 이야기의 연결이 더 부드럽기 때문이다. 우선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주인공은 피가로, 알마비바백작, 로지나, 바르톨로, 바질리오 등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첫 장면은 사랑에 빠진 알마비바 백작이 집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로 시작된다. 그리고 피가로가 ‘나는 이 거리의 제일가는 만능일꾼’이라는 오늘날 랩보다도 더 박자도 빠르고 가사도 많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곡을 부른다. 피가로는 이발사로 동네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재주 많은 사람이다. 옛날의 이발사는 이발뿐 아니라 사람을 고치고 물건도 고치고 손으로 할 수 있는 잡다한 모든 일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발소에는 동맥, 정맥, 붕대를 의미하는 빨갛고 파랗고 하얀 등이 막대사탕처럼 돌아간다.

2017년 런던에서 공연된 '세빌리아의 이발사'<br>
2017년 런던에서 공연된 '세빌리아의 이발사'

이 집에는 로지나라는 예쁜 아가씨가 있다. 이 아가씨는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많은 재산을 남기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예쁜 얼굴, 어린 나이 등이다. 로지나의 옆에는 바르톨로라는 재산관리인이 있는데 이 나이도 많은 바르톨로는 로지나와 결혼해서 로지나와 재산까지 갖고 싶은 엉큼한 계획이 있다. 그런데 이 세빌리아에 멀리 마드리드에서 돈도 많고 멋지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총각백작이 놀러 왔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깜짝 놀란 바르톨로는 로지나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집안에 가둬놓는다. 그러나 모든 사랑에는 조력자가 생기는 법. 외출했던 로지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 집까지 따라온 알마비바 백작은 이미 피가로를 만나 도움을 얻고 있다. 이쯤 되면 이미 행운의 여신은 알마비바 백작에게 돌아섰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신고를 받고 군대가 나타나자 모두가 당황해서 숨는 모습, 술에 취한 척하면서 알마비바 백작이 로지나를 찾아가는 장면, 심지어 음악 교사인 척 변장을 하기도 하고 또, 바질리오가 오히려 둘의 결혼식 증인이 되어 버리는 순간까지 곳곳에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노래와 장면을 품고 있다.

특히 바르톨로와 로지나의 피아노 레슨선생님인 바질리오가 음모를 꾸미면서 부르는 La calunnia è un venticello는 트릴과 고음, 피아니시모에서 크레센도까지 빠른 박자로 난이도가 높아 성악가라면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 곡이다. 소문은 조용하고 은밀해서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소문의 주인공이 파멸하게 되니 로지나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자고 둘이 표정까지 쑥덕거리면서 음모를 꾸미는 이 곡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나쁜 소문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인간사에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안토니오 롯시니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안토니오 롯시니

그럼 이 곡의 작곡자 롯시니는 어떤 사람일까? 오늘날 작곡자들은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나 장범준의 벚꽃엔딩처럼 평생을 보장받는 작품하나가 꿈이다. 롯시니 역시 20대에 작곡한 세빌리아의 이발사 성공으로 평생을 편하게 살았다. 심지어 생의 마지막 40년 정도는 작품 활동도 거의 안 하면서 음식에 탐닉해서 미식가로 살았다. 그에 반해 피가로의 결혼을 쓴 모차르트의 일생은 모두가 알다시피 참으로 험난했다. 천재로 소문을 떨쳤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일자리를 찾으러 유럽 전역의 왕족과 귀족들을 찾아다녔던 그가 귀족의 뒷모습을 고발하여 상연금지가 된 연극을 소재로 오페라를 쓴다는 것은 배짱인지 천재의 숙명인지 알 수 없다.

피가로의 결혼 내용은 오늘날 어지간한 막장드라마보다 더 심하다. 로지나와 결혼한 알마비바 백작은 잦은 바람기로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면서 속을 태우고 급기야는 피가로와 결혼을 약속한 로지나의 하녀인 수잔나의 첫날밤까지 탐낸다. 또 백작부인인 로지나를 사모하는 어린 케루비노. 피가로의 부모인 줄도 모르고 피가로와 결혼까지 계획하는 나이 많은 마르첼리나와 피가로에게 복수하려는 바르톨로 등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지만 이런 여러 사건사고를 거쳐 피가로와 수잔나는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훌륭한 셰프는 시든 배추쪼가리로도 멋진 정찬 요리를 만들어낸다. 갈수록 이게 뭐지 싶은 대본을 가지고 모차르트는 고급스럽고 멋진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또, 같은 희극이지만 피가로의 결혼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진지함과 씁쓸함이 있다.

피가로의 결혼을 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을 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도 유명한 곡이 많지만, 그 중 알마비바 백작을 속이려고 편지를 쓰면서 로지나와 수잔나가 불러서 편지의 이중창으로 알려진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가 있다. 이 곡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사용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 노래가 나오는 부분에서 영화의 앵글은 작은 방에서 문을 잠가버리고 앉은 주인공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넓어진다. 고요하고 명징한 이중창 역시 교도소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방 하나하나마다 그리고 벽을 넘어 마당으로, 교도소의 울타리를 넘어 자유로운 세상으로 습자지에 먹물이 번지듯 천천히 그러나 선명한 자국을 남기며 점점 밖으로 퍼져 나간다. 변화가 없이 한 곳을 응시하는 죄수들의 표정에도 뭔지 모를 아픔과 슬픔 그러나 인간의 단단함이 새겨진다.

롯시니와 모차르트, 두 사람의 삶을 단순히 비교하긴 어렵다. 사실 지금도 피가로의 결혼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더 많이 공연되고 인기가 있다. 그것은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이 여전히 필요로 하고 선호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의 늙고 무식한 흑인 친구 레드가 “난 지금도 그 이탈리아 숙녀분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몰라. 사실 알고 싶지도 않지.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나은 것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그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라고 생각해”라고 한 말처럼 지식과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한 아름다움도 존재한다. 사실 인생에서 비극과 희극은 항상 서로 교차하여 혼재한다. 피가로의 결혼과 세빌리아의 이발사 두 작품 모두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인 자유와 존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br>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된 세빌리아의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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