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가장 잔인한 달 4월에 깨쳐본다(상)
[정대성칼럼] 가장 잔인한 달 4월에 깨쳐본다(상)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0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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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T.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는 그 첫 시구,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유명하다. 한 여인을 상실한 상심, 철학적 고민을 시적 언어로 장식해, 1차 세계대전을 거친 서구 문명 몰락에 대한 절망을 은유적으로 시화, 승화한 걸작이다. 그런 해석이 의아스러우면, 라파엘 전파의 일련의 ‘여인의 수사(水死) 자살’ 그림들에 녹아든 영국 산업혁명에 대한 냉정한 사실주의적 시선을 간파하면서, 이 시가 그런 예술사 문맥에서 훌륭한 계승에 불과함을 확인하면 족하리라. 허나, 여기서, 그림이나 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에 힘입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두 비극, 제주4.3사건과 4.19혁명을 비롯 세월호 사건, 윤봉길 의거에 관련 지어, 역사에 있어서의 은닉, 또는 망각에 대한 어떤 시각을 환기시키고자 함이다.

제주도 4.3평화공원에서 제주4.3사건 74주년 추념행사가 윤석열 당선인, 차기대통령 참석 하에 열렸다. 대선 때 약속이 지켜진 것인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진상규명, 제주사람들의 재심, 무죄판결, 명예회복, 유족들에 대한 사죄, 배상, 보상, 특별법 제정, 유해발굴, 신원확인, 반환, 트라우마 센터 운영 등으로 이루어져 온 국가정책이 변함 없음을 확인한 셈이라 일단 반갑다 하겠다. “보상 못 받은 분들을 계속 발굴하여 보상한다”는 공통인식이 주목된다. 필자는 일본에 살던 때에 제주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많이 봤다. 오사카의 코리안 타운에 가면, 지금도 사진촬영이 금기시돼있는 걸로 안다. 밀항해서 온 사람들이 많아 혹시 얼굴이 찍힐까 봐 그렇다는 것으로 들었다. 당시 그들은 민단에도 조총련에도 속하지 않았다.

제주4.3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못하고, 동시에 남조선로동당과의 공모혐의, 그 악몽을 지우고 싶어선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추념행사에서 언급된 ‘보상 받지 못한 분들’ 중 중요한 부분이 위와 같은 오도가도 못한 분들이다. 필자가 유심히 보건대, 보상자의 범위에는 늘 ‘한국국적’이라는 국적사항이 깔려있다. 위의 사람들은 한국국적도 북한국적도 일본국적도 아니다.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무국적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에 한국국적으로 일부 바뀌었지만, 무국적으로 남거나 생활편의상, 또 그 후손들은 일본국적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들까지 아울러 보듬어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필자가 대학생 시절에 한국 운동권 사람들이 망명, 추방당하듯이 많이들 동경에 왔고, 그들은 한국 민중문화운동을 동경에 이식했는데, 필자가 참여한 바 있었다. ‘제주할망’이라는 마당극을 일본어로 만들어 시민회관 순회공연을 했다. 필자는 할방 가면을 쓰고 할망 남편인 할방(4.3 사건 때 밀항자) 역할을 했고, 각본에는 당시 뜨겁게 퍼져나가던 지문날인반대 운동 내용도 담았는데, 마당극이라 공연 뒤에 그 자리에서 시민토론회를 가지곤 했다. 가면을 벗은 필자를 보고 사람들이 “한국에서 오신 제주도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젊은이구나!” 해서 놀라곤 했는데, 지문날인의 잔인성을 일본 공무원이 알게 돼 눈물 흘리면서 사죄하기도 했다.

그 문화활동을 함께 하신 분이 일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이회성 작가, 브루스 커밍스 학파 임철 교수였고, 그 옆에는 김석범, 양석일 작가 등이 계셔서, 자연스레 일본어 글쓰기 한인 작가들의 이름 나신 분들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일본어 글쓰기를 부정해서 그 분들과 괜히 결별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회성 작가는 사할린 동포 문제나, 님 웨일스(스노)의 아리랑 문제 등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계셨고, 김석범 작가는 잘 알려진 대로 4.3사건을 주제로 역작을 발표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 선배님들의 삶의 모습의 본질적 단면에 필자는 모종의 모순을 느꼈다. 민단도 조총련도 아닌 문화공간을 일본 매스컴이나 출판계로부터 제공받아 매문활동을 하는 일이 결국은 일본문화공간에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팔아먹는 행위 이상의 것이 안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필자는 무모하게도 ‘한국어’를 붙잡는 길을 선택해서 우여곡절 고생만 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아무튼, 김석범, 양석일 작가, 김시종 시인 등을 만났는데,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왔다. 김석범 작가는 필자를 만났을 때, 결국 자신의 4.3 작품들이 ‘니힐리즘’이 주제라고 밝힌 바 있었고, 김시종 시인은 필자를 만났을 때, 필자에게 “미안합니다”를 일본어로 연발하신 기억이 난다. 두 분은 ‘재일조선인’을 대표하는 작가와 시인, 이른바 문화인이다. 그들이 일본 독서계에 인기가 있어서 일본문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평가는 하지만, 그 다음 세대에 이양지 작가, 카네시로 카즈키 작가 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부족함을 불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결국 그것은 ‘일본어 글쓰기의 주박(저주)’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본어를,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대어의 후계자로 보고 거기에 우리 천손민족의 넋이 깃들어있다는 의미에서 일본어를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까지 느끼지만, 현대일본어는 현대문화로 오염돼 얼빠진 꼴이다. 현대한국어도 오염돼있지만, ‘한국어’를, 그 얼을 건져내야 된다.

이번 제주도 행사가 열렸을 때를 같이 하여 일본 대마도에서는 4.3 때 흘러내려온 몇 백 구의 시신을 위령하는 행사가 열렸고 김시종 시인이 참석하셨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도 마음 속에서 “미안합니다”라고 일본어로 연발하고 계셨을까? 필자는 남로당이던 그의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 역시도 역사의 희생자이고, 일본어 시인으로서 훌륭하신 분이라 인정한다.

그런데, 필자가 우연히 알게 된 행사로, 미국에서 최초로, 그것도 최고의 학문전당인 하버드대학에서 열렸다는 추념식이 있다. 줌으로 보지는 않았는데, 유튜브에 도올 김용옥 교수가 하버드 행사에 보내신 추념사가 공개되어있어 봤다. 그는 추념사 마지막에 자신의 하버드대 지도교수 은사님에 대한 그리움을 언급했는데, 동양의 ‘인’의 정신을 미국이 지녀야 한다는 비판적 메시지인 셈이다. 그래서, 요 몇 년 사이에 있던 4.3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과 도올 선생의 KBS 강연을 다시 찾아봤는데, 4.3의 주범으로 미군정이 지목돼있고, 거기에 잘 보이려고 행동한 이승만의 책임을 묻는 논조가 짙다. 미군정에는 하우스만 대위, 로버츠 준장 등이 있어 학살명령 등을 했고, 냉전시대를 맞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한국을 단독으로라도 세워놓고 이끌기에 바쁜 이승만은 미국에 아부하기를 아끼지 않았던 걸로 알려져 있어, 지탄을 받고 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4.3에 대한 사과를 한 당시,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나 노엄 촘스키 교수 같은 분들이 미국 책임론을 인정하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바 있고, 요새 몇 년 사이에는 미국의 전 국무부장관이 심포지엄에 참석해서 미국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이승만의 책임을 거론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거기에다가 민중미화론이 가세하게 된다. 문화 콘텐츠들이 정서적으로 민중의 정당성을 뒷받침하여, 우리는 자극, 또는 유도(세뇌)된다.

허나, 역사적 책임론이나 민중미화론은 계몽으로선 유의하지만, 대개 비본질적다. 역사적 책임자와 이른바 열사, 또는 민중들은 비유컨대, 시 수사학에서 말하는 ‘객관적 상관물’에 불과하다. 그 배후에 숨겨진 ‘그 무엇’을 꿰뚫어봐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더글러스 맥아더의 부친, 아더 맥아더를 상기해도 된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 인디언 전쟁, 미국-필리핀 전쟁에 참전했고, 러일전쟁을 참관한 군인(중장)이다. 특히, 인디언 전쟁에서 아파치 족을 섬멸하는 데에 앞장섰다. 여러 인디언 부족들 가운데, 외지에서 고생하는 신참 백인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주고 친해진 세력이 생겼는데, 그들 중에는 백인들이 서쪽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길안내해준 협력자들이 있었다.

아파치 족처럼 끝까지 저항하고 항쟁한 세력들은 섬멸 당했다. 하와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고, 일본, 중국대륙, 한반도 차례인데,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자체를 협력자로 삼는 전략이었다가, 일본이 만주침략까지 함으로써 약속(카츠라-태프트 밀약)을 어겨 배신하는 바람에 제2차 대전에서 응징하게 됐고, 한국은 얼떨결에 해방됐다. 일본 천황 위에 군림한 게 미군정을 이끈 그 아들이다. 그런 역사의 보다 큰 흐름, 보다 깊은 물줄기를 읽어낸다면, 얄팍한 감정적 책임론, 민중미화론에 머물러있을 수 없게 된다.

윤석열 당선인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한다고 발표하자 북한은 핵공격 가능성마저 들먹이면서 협박하기 바쁜데, 북한이 아파치 족이라면, 남한은 협력자일까? 역사 해석, 정세 분석에는 사람마다 주관이 있기 마련이나, 역사상 증명된, 현재진행형의 큰 흐름이 ‘언어전쟁’이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정신을 죽이고 영토화하는 것이다. 남북한이 갈라져 있지만, 동일한 ‘한국어’ ‘조선말'을 시처럼 아름답게 사용해 계승하는 한, 미래에 한 오라기 희망이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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