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마누라
[이영승의 붓을 따라] 마누라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8.24 09: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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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표현은 참 풍부하다. 배우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부인, 아내, 집사람, 마누라 등 실로 많다. 이외에도 국제화 시대에 맞춰 요즘은 와이프(wife)라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가장 한국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마누라’는 속된 말로 오인되어 사용을 기피한다. 과연 비하하는 표현일까? 마누라가 순수 우리말이라는 설도 있고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남자에게 마누라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기에 먼저 그 말의 어원부터 알아본다. 

마누라는 원래 조선시대 왕가에서 성별을 불문하고 마마와 같은 존칭어로 사용되었다. 왕에서 후궁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일원을 모두 마노라 혹은 말루하(抹樓下)로 불렀는데 19세기 고종실록에 처음 존칭어가 아닌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아내나 중년 여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존칭어인 폐하(陛 섬돌 폐), 전하(殿 대궐 전), 저하(邸 집 저) 등은 ‘건축물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의미라니 마노라나 말루하도 ‘마루 아래에서 예를 갖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도 마마와 같은 극존칭어로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당상관 이상 관리에게 사용하던 ‘영감’의 상대어가 된 것도 같은 무렵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마누라는 비하나 경시하는 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니 부담 없이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세상에 부부싸움 하지 않는 사람 얼마나 될까? 그 싸움의 승자는 아마도 거의가 아내일 것이다. 예외로 남편이 이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바보 아니면 폭군이 아닐까 싶다. 나도 지난날 누구 못지않게 부부싸움을 많이 했으며 지금도 적지 않게 싸우고 있다. 다만 그 싸움이 오래 가지는 않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뒤끝은 없었다. 그렇게 다투고 토라지며 살아온 세월이 어언 44년이다. 부부가 정이 없으면 싸울 이유도 없을 테니 다툰다는 것은 그래도 애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아들이나 딸이 부부싸움을 했다는 말이 들려도 우리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나는 웬만하면 마누라 말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하고 가급적 토를 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솔직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동안 마누라와 싸워서 덕본 적 없으며, 상대를 굴복시키고 이겨본들 그 뒤는 도리어 개운치 않았다. 결국 ‘마누라와 싸움은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가 틀림없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아내와의 싸움에 양보를 몰랐으나 긴 세월 함께 살면서 터득한 지혜다. 

내가 겪은 사례를 하나 들면, 수년 전 뱃살을 빼려고 아파트 계단을 무리하게 오르내린 적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하와 옥상까지 합하면 계단이 29층이다. 한 층이 16계단이니 모두 464계단인데 하루 최고 14번까지 오르내린 적도 있다. 1회 왕복에 10분 정도 소요되니 2시간 넘게 무모한 운동을 한 셈이다. 아내가 지인들이 겪은 사례까지 들며 무릎에 해롭다고 수차 만류했으나 나는 한 번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몇 개월 후 체중은 3kg 정도 빠졌으나 무릎에 이상이 나타났다. 급히 병원에 가서 진찰했더니 의사가 당장 운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그로인해 고생했던 생각을 하면 어이가 없다. 마누라 아닌 다른 사람이 그 같은 충고를 했다면 틀림없이 관심 있게 들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지만 더 이상 발설하면 체면이 손상될 것 같아 이만 멈춘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넣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돈을 내 주머니에 넣는 일이다. 앞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선생님이고 뒤의 일을 하는 사람은 사장님이다. 그런데 두 가지 일을 한방에 다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마누라다. 따라서 선생님에게 대들면 배우기 싫은 사람이고, 사장님에게 항의하면 돈 벌기 싫은 사람이며, 마누라에게 이기려고 하면 살기 싫은 사람이다.

비록 세상에 회자되는 에피소드지만 이 이상 명언은 없을 듯하다. 남자가 피해야 할 3가지 불행이 있다. 초년 출세(出世), 중년 상처(喪妻), 말년 무전(無錢)이다. 젊어서 출세가 왜 나쁜지를 나는 알지 못했는데 최근 정치권에서 젊은 표심을 얻기 위해 준비 안 된 젊은이에게 감당키 어려운 큰 옷을 입혀 놓고 난리법석 떠는 것을 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말년 무전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도 타고난 복일 테니 어쩔 수 없겠으나 중년 상처만은 모든 남편들이 피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위대한 그 이름 마눌님, 자식 낳아 키우느라 한평생 오만 고생 다하고, 늙어서까지 영감 위해 온갖 고충 면할 길 없구나! 어느 날 그님이 훌쩍 먼저 떠나버리면 홀로 감당하며 살 수 있는 남자 몇이나 될까? 때늦게 후회한들 무엇 하리. 있을 때 잘할 지어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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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배 2022-08-30 01: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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