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오빠 부부의 첫 호주 나들이
[해외기고] 오빠 부부의 첫 호주 나들이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브리즈번)
  • 승인 2023.07.28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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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은퇴를 한 후에 첫 번째로 찾아온 귀한 손님이 있다. 뉴욕에 사는 오빠 부부가 처음으로 브리즈번을 방문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의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우리 남매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3년 7월이 되어서야 오빠는 북반구 미국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남반구 호주에 사는 동생을 만나러 오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었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은 마치 연인을 기다리듯 긴장과 설렘으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오빠가 호주를 방문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는 참으로 긴 시간이 걸린 듯하다. 막냇동생에 대한 유난한 사랑은 뉴욕과 브리즈번 사이의 지리적인 먼 거리를 잊게 할 만큼 늘 가깝게 이어지고 있다. 카톡이라는 정보기술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덕분이다. 그래서, 서로 간에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남매가 살아가는 다른 두 공간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오빠 부부가 브리즈번을 방문하기로 한 후에 3주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양한 계획을 세워보았다.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동생이 사는 호주라는 나라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70대 중반인 오빠는 아주 세심하고 자상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호주에 오면 코알라와 캥거루를 직접 볼 수 있는지, 오페라 하우스에도 갈 수가 있는지를 호기심에 차서 여러 차례 묻곤 했었다. 나는 오빠 부부가 도착한 날부터 떠날 때까지의 여행 일정을 세우면서 건강을 염려했는데 한낱 우려에 불과했다. 여행지에서 보여준 왕성한 에너지는 나이를 잊을 만큼 활력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도착 첫날의 즐거움은 점심으로 시작되었다. 1800년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환영의 잔을 부딪쳤다. 식후에 시내 구경을 하면서 깨끗한 거리와 바둑판처럼 연결된 길의 배치에 연신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뉴욕과 브리즈번, 두 도시의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는 오빠가 그토록 보고 싶다던 코알라와 캥거루를 만나러 브리즈번 외곽에 있는 론파인 야생동물 보호구역(Lonepine Sanctuary)에 갔다.

나무 둥지에 붙어서 하루에 18시간 이상 잠을 자는 코알라지만 다행히도 잠이 깬 상태로 있는 코알라들과 눈을 마주치는 행운을 얻었다. 오빠 부부의 얼굴에는 실물로 보는 코알라의 모습이 신기한지 연신 카메라를 누르며 즐거워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조용했던 론파인에도 관광 붐이 새롭게 부는지 관광객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코알라를 직접 안고 사진을 찍는 포토샵 이벤트의 하루 예약이 이미 이른 오전에 마감이 되었을 정도였다. 상상만 하던 코알라를 품에 안고 사진을 찍은 오빠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지며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넓은 풀밭 위에 군데군데 드러누운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고, 펄쩍거리며 뛰어가는 캥거루를 보며 즐거워하는 오빠 부부의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선샤인코스트의 긴 해변과 골드코스트의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야간 벼룩시장 구경하기, 미숫가루처럼 부드러운 하얀 백사장에서 맨발로 걸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 모든 순간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벽돌처럼 하나씩 가슴 안에 쌓였을 것만 같다.

골드코스트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 스펙타큘러 쇼(Australia Outback Spectacular Show)를 관람했다. 백인 정착인들이 이 땅에 자리 잡으며 살아온 고된 개척사를 말 묘기와 함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호주의 역사를 시작한 애버리지니를 호주 땅의 첫 거주자로 인정하며 그들의 전통문화와 삶의 모습을 영상으로 먼저 보여주었다. 백인들이 부시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들의 힘든 공동체 생활을 소 떼 몰이, 양무리, 야생말 길들이기, 부시 화재와 같은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호주인의 전통 레인코트를 걸친 기병대들이 호주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호주 국기를 손에 들고 힘찬 행진을 하는데 가슴 뛰는 감동을 받았다. 손이 아프도록 손뼉을 치면서 “아~~ 내가 어느새 호주를 사랑하는 진짜 호주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2박 3일의 여정으로 시드니에 여행을 다녀왔다. 가능한 이름난 장소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기에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다링하버에 숙소를 잡고 가까운 지역부터 가이드와 함께 본다이 비치, 메리 대성당, 바랑가루와 오페라 하우스를 차례로 둘러보았다. 오빠 부부는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감동에 젖은 모습으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보고 싶었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블루마운틴, 로라마을, 동물원에도 가보았고, 다른 지역에도 갔었지만. 도시 중심가의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걷는 야간 투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한눈에 바라보는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야간 풍경 그리고, 불빛에 휩싸인 시드니 도심의 아름다운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하버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가는 야간걷기 투어는 예전의 어떤 여행보다도 더 깊고 진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함께 만들었던 시간은 우리 남매가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날 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오빠와 올케언니의 호주 방문이 뜻깊고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했기를 바라며, 이런 소중한 추억들이 오래도록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공통의 추억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서로가 나이 들어가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나눔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가족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기쁨은 형제애를 표현하는 것이며 따뜻함을 느끼고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제 3주간의 만남을 정리하면서 오빠 부부가 남은 생애를 건강하고 서로에게 향기로운 부부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자신들의 집이 있는 곳, 뉴욕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가시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본다.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브리즈번)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브리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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