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다정한 나를 위하여
[대림칼럼] 다정한 나를 위하여
  • 조은경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문학박사)
  • 승인 2023.08.25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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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다정함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이 꽤 눈에 뜨인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다정한 매일매일> 등 많은 책 가운데 다정(多情)이라는 단어를 아예 표지 제목으로 내보냈다. 말 그대로 정이 많다는 의미의 단어를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좋아할까 생각해보니 이에는 정에 대한 관심을 제외하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책 내용을 떠나 제목으로 뽑을 정도라면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의 중요성, 나아가 공감이나 이타심을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알게 하고 싶은 욕심이 큰 게 아닐까. 반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다정함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는 “내가 나를 돌보지 못했어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다정함을 실천하는 지름길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나를 돌보는 일이 가장 적격하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을 잘 돌보는 삶이야말로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강한 인생일 테니 말이다.

최근 과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유정이 “살인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자백했다는 것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은둔형 삶의 패턴이 증가한 것과 연관해 정유정의 범행 동기 중 하나로 ‘은둔형 외톨이’를 제기했고,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28점을 받은 것을 근거로 만약 택시기사의 신고로 잡히지 않았다면 정유정 역시 연쇄살인마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기사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너무 하대했구나.’ 성장배경과 가정환경이 어떻든 정유정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긴 시간 동안 칩거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비뚤어진 가치관이 더 나빠진 듯싶다. 물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 가치를 찾는 데에 어느 정도 외부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3년 넘는 코로나19 기간을 거쳐 최근 규제가 완화되면서 우리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익숙하면서도 낯선 삶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 전의 생활로 돌아가든, 비대면 일상에 적응했든 부정적인 욕망을 품는 것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별개 일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은둔형 삶의 패턴, 즉 사회적 연대감이나 사회적 유대의 고리가 없는 상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관계나 통제력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관리 등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기관이 많지 않고 있다고 해도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이 그 실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2의 정유정’이 나타나지 않을까. 정유정은 정말로 ‘은둔형 외톨이’에 포함될 수 있는가. 수많은 ‘은둔형 외톨이’들은 잠재적 범죄자인가. ‘은둔형 외톨이’는 언제 어떻게 집 밖으로 나오는가.

‘새끼 서 발’이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어머니와 게으른 아들이 살았다. 어머니가 새끼 서 발을 주고는 아들을 내쫓았다. 도중에 만난 옹기장수가 새끼가 필요하니 동이와 새끼를 바꾸자고 해서 새끼를 주고 동이를 얻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동이를 깨뜨린 색시의 쌀 한 말과 동이를 바꾸었다. 하룻밤 묵던 집의 쥐가 쌀을 다 먹어서 대신 그 쥐를 가져갔다. 어느 집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어서 그 고양이를 대신 받았다. 어떤 집 말이 고양이를 밟아 죽여서 그 말을 대신 받았다. 죽은 처녀를 묻으려던 사람을 만나 말과 처녀의 시신을 바꾸었다.

어느 곳에 이르러 한 예쁜 처녀가 시신을 밀어 쓰러뜨렸다. 멀쩡한 처녀를 죽게 했다고 야단을 친 끝에 그 예쁜 처녀를 대신 얻었다. 처녀를 데리고 길을 가다가 부자를 만났다. 처녀를 보고 욕심을 낸 부자가 내기를 요청하여 수수께끼 내기를 하였다. 게으름뱅이가 “새끼 서 발이 동이로, 동이가 쌀로, 쌀이 쥐로, 쥐가 고양이로, 고양이가 말로, 말이 죽은 처녀로, 죽은 처녀가 산 처녀로 바뀐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내어 이에 답하지 못한 부자의 재산을 빼앗고 색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잘 살았다.

이 설화는 전 세계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부귀영화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보아낼 수 있다. ‘게으름뱅이’로만 여겨졌던 사람이 집에서 쫓겨난 후 뜻밖의 지략으로 배우자와 부를 얻었다는 내용으로서 그야말로 ‘은둔형 외톨이’의 성공한 삶으로도 볼 수 있다. 아들의 행위 자체에는 사기성 기질이 들어 있지만, 설화는 점층하는 구조를 지닌 형식 이야기로서 이야기의 목적은 ‘집으로 돌아가 잘 살았다’는 부분에 있다. 그런데 모든 ‘은둔형 외톨이’가 설화 속 아들처럼 성공하기는 힘들다. 가족 구성원의 협동은 물론 용기와 자존감, 자신감, 지혜와 입담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엮여서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점차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살고 있던 공간을 떠나 직접 밭을 일구어 식물을 가꾸고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치유한다. 최근 방영하고 있는 ‘박하경 여행기’에서 주인공은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추스른다. 이들의 행위는 자신을 구하려는 다정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무엇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자의든 타의든 내가 지금 머문 공간(오프라인·온라인)에서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다정해질 기회는 이미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용기를 내 발을 들어보자. 아울러 ‘위축된 나’를 포용할 수 있는 좀 더 다정한 사회를 만나는 그날을 기대한다.

필자소개
소설가. 중국 화룡시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한국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수필, 소설 수십 편 발표, 수상 다수.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작가협회 이사. 재한동포문학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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