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24]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
[아! 대한민국-224]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3.09.23 0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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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원자폭탄의 투하로 일본이 마침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사실상 종결되었다. 원자폭탄을 맞음으로써 일본은 2차 대전의 전범으로서 마땅한 응징을 당한 셈인데, 거꾸로 일본은 자신들이 원자폭탄의 희생자라는 입장을 애써 드러내 보이고는 한다. 일본이 2차 대전을 일으킨 원죄를, 원폭 피해자라는 엄살로 덮으려는 태도는 적어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으로서는 인정하기 어렵고 차라리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어쨌든, 그날 아침 8시 15분의 원폭 투하로, 34만명의 도시 히로시마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됐다. 미군이 원폭 투하의 타깃으로 히로시마를 선택한 것은 일본의 전쟁수행에 핵심 역할을 하는 군사기지이자 군수기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히로시마에는 징용으로 강제동원 됐거나 혹은 생계를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한국인 8만여명도 살고 있었다. 이 가운데 2만여명 이상이 원폭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일본인의 희생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20만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어쨌든 히로시마가 원자 폭탄을 맞은 비운의 도시가 되면서 히로시마는 평화의 상징도시, 원자 폭탄의 사용과 같은 폭력이 다시는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시금석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연히 히로시마에는 평화를 염원하고 상징하는 평화기념공원이 생겼다. 그렇지만 식민지배 아래 이중의 아픔을 겪은 한국인으로서는 원폭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의 코스프레에 마냥 동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재일동포들은 1970년, 뜻을 모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를 세웠다. 검은 대리석의 비석 앞면에는 한자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라고 적었고, 비석 뒷면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다. “1945년 8월 6일의 원폭 투하로 인해 2만여 명의 한국인이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 비석이 현재의 위치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으로 옮겨진 것은 1999년 5월이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희생당한 한국인 영혼이 당당하게 위로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희생자 전체를 위로하는 조형물은 많지만, 특정국가 피해자를 기리는 것으로는 한국인 위령비가 유일하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2023년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9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함께 이 위령비에 참배했다. 두 사람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양국 관계에서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현직 총리로서 최초의 참배자는 오부치 게이조(1937~2000)였다. 그는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 일본 지도자들의 히로시마 위령비 참배와 사죄는 한국에 피해를 입힌 침략의 역사를 상기하면서, 인류의 평화를 함께 구현해 나갈 수 있는 공감을 모색하는, 모처럼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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