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도로에서 사람이 우선인 미국문화
[김재동칼럼] 도로에서 사람이 우선인 미국문화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09 10: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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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앞에서뿐만 아니라 우회전할 때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인해 차량이 인도까지 올라와 보행자를 덮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한국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지난 22일부터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일시 정지 의무를 어기는 차량 운전자에 대한 단속이 본격화됐다. 핵심은 전방 신호가 빨간 불일 때 직진 방향 횡단보도 앞에서 ‘완전히’ 멈춘 뒤 보행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시속 5km로 서행하더라도 일시 정지를 하지 않는다면 단속 대상이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안전교육부 교수는 25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우선 (전방) 차량 신호가 적색이라면 일시 정지를 해야 한다. 일시 정지 상태에서 보행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우회전하시면 된다”며 “일시 정지의 의미는 속도가 완전히 0인 상태”라고 말했다.(한겨레신문에서 발췌)

미국에 와서 얼마 안 된 일이니 3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그날 출근길 왕복 4차선 도로는 생각보다 차량 소통이 원활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앞서가던 차량이 브레이크 라이트에 빨간불을 일제히 밝히며 급정차를 했다. 사고가 났나? 창문을 내리고 앞쪽을 내다 보았다. 사고는 아닌 것 같은데 양방향에 길게 늘어선 차들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꼼짝도 안 하고 저러나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기어를 멈춤으로 갖다 놓고 열린 창문 너머로 목을 늘어뜨려 앞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주 작은 치와와 한 마리가 도로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차들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강아지는 한참을 우왕좌왕하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반대쪽 도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윽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인도를 향해갔다.

미국에서는 강아지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서식하는 개구리나 두꺼비, 오리 새끼들이 엄마의 지휘 아래 위험한 길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경우, 사람을 포함해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그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다. 동물에게도 저렇게 하는데 사람에게는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이후 한동안 운전할 때나 보행할 때 거리의 차량과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횡단보도 앞이나 교차로 등은 물론, 특히 아이들이 많은 동네 길에서 사람들의 운전 습관이 궁금했다. 차들은 한결같이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일단정지 한 다음, 먼저 좌우를 살피고 사람이나 동물 등 움직이는 물체가 없을 때 우회전하는 운전자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초보 운전 시절 우회전을 할 때 대충 보고, 일단(완전)정지를 하지 않고 급하게 오른쪽으로 운전대를 꺾었던 적이 많았다. 자전거나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하마터면 접촉 사고를 낼 뻔한 적도 있었다. 그날 아침 강아지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내 운전 습관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는 좌우를 살피며 서행을 했다. 우회전할 때에는 신호등 색깔에 상관없이 일단정지를 한 다음, 주위를 살피고 천천히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면 한국 사람들은 뛰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런 한국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보행자 신호등의 하얀색 걷는 모양이 빨간색 손바닥 모양으로 바뀌어 깜빡이며, 경고성 숫자가 10.9.8 작아지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건너는 미국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차량이 도로 위를 달리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도로교통법이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우회전할 때 신호등 색깔과 무관하게 일단정지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후진국의 운전자들은, 그 법규를 지키지 않고 우회전을 하다 인명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우회전 사고는, 후진국에 비해 적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비교적 우회전 교통사고가 적다. 미국인들은 도로교통법에 앞서 운전대를 잡는 순간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운전 습관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누가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법규를 지키는 선진시민의식 또한 몸에 배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결코 빨리빨리 건너가라든지, 빵빵거리며 보행자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경이로움 마저 느낀다.

심지어 강아지까지도 미국인 운전자들이 기다려 주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이 먼저라는 선진의식의 발로(發露)는 아닐까? 어디에 살든 어디서 운전을 하든, 보행자를 도로 위의 귀찮은 존재가 아닌, 자기 가족, 친구, 이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운전자 자신도 때로는 도로 위의 보행자가 된다는 사실을 미국인 운전자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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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걸부 2023-11-16 13:35:08
처음 미국와서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문화를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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