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25] 장독대
[아! 대한민국-225] 장독대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3.10.2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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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장독은 장을 담은 독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장독대란 이런 장을 담은 독을 늘어놓은 곳이라는 뜻이다. 장독대는 부엌과 가까운 뒤뜰 높직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양지 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자연 속에 있어야 한다. 장독대는 음습한 곳이 아니라 비교적 양지 바른 곳에, 담을 쌓아 높게 만들고, 네모 반듯한 너른 돌로 장독 받침을 만들기도 한다. 장독대는 한 집안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건강을 담보하는 징표이기도 해서 장독대를 보면 대충 그 집안의 품격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장독이 가지런히 널려 있는 평화로운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우선 편안하게 해준다.

외양이 그런 것이라면, 장독 안의 간장, 고추장, 된장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며, 식생활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지방마다 집집마다 맛있고 특색 있는 음식 맛은 이 장독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은 장독대를 더 없이 소중하게 가꾸었다. 정갈한 가운데, 할 수만 있다면 아름답게 가꾸었으니 거기에는 우리 어머니들의 심성과 인정이 담겼으며 그래서 토담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장독대는 제일 뒤쪽으로 서너덧 개의 큰 독을 한 줄로 놓고, 그 앞에 그보다 조금 작은 중두리를 네다섯 개 놓고, 그 앞에는 좀 더 작은 독을 일고여덟개 놓고, 맨 앞에 작은 항아리들을 가지런히 놓는다.

항아리의 모습도 지역에 따라 달라서, 경기 서울의 독은 연꽃 봉오리 형태의 꼭지가 달린 뚜껑으로 덮고, 전라도 장독은 배가 불룩하고 크며, 둥근 탑 모양의 꼭지를 가진 뚜껑이나 아니면 큰 자배기 형태의 뚜껑으로 덮여 무리를 지으니,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을 이룬다.

장독대의 자리가 좋고, 장독들이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높여 있으면 그 집안이 크게 일어날 것이라는 속설이 있었고 이사 갈 때도 장독부터 옮겨 놓았다. 주부는 매일 장독 주변을 정갈하게 하고 장독을 깨끗하게 닦아 장독에서 윤이 났다. 시집갈 규수를 보러 온 매파나 시집 식구들은 장독대를 보고 집 안주인의 규모와 인품을 가늠했다.

장독을 향해서 쏟는 정성도 지극해서, 집안의 평안함을 빌고 재앙을 떨쳐달라는 고사를 지내는 곳도 장독대였고,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정한수를 떠놓고 온 가족의 안녕을 두 손 모아 빌고 간구하는 곳도 장독대였다. 여기에는 독에 담긴 장이 변하지 않고 항상 맛있게 해달라는 주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일단 여염집에서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대궐의 상당한 부분이 장독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었고, 이를 관리하는 상궁을 ‘장고마마’라고 하여 마마라는 별칭을 붙일 만큼 우대했다.

겨울에 눈이 와, 장독대의 장독 위에 하얀 눈이 쌓인 모습은 전형적인 시골의 겨울 풍경이었으니, 그것은 아늑한 평화와 안녕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영주에는 장독대를 아름답게 꾸며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지가 된, 장을 숙성하는 집이 있다. 그 집 장독대는 낮은 돌담으로 둘려 있고, 그 안에 수백 개의 장독이 나란히 정돈되어 있어, 눈이 소복히 그 장독대에 쌓일 때는 더없이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드러낸다. 이처럼 장독대는 우리네 옛 시골 풍경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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