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 김성기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죽장망혜(竹杖芒鞋) 집고 신고
요금(瑤琴)을 빗기 안고 서호(西湖)로 드러가니
노화(蘆花)에 떼 만흔 갈며기난 내 벗인가 하노라
김성기(金聖基, ?~?): 조선 후기 강호가, 낭옹신보를 지은 거문고 명인이다. 이 시조에서 죽장망혜, 요금, 갈며기는 모두 속된 세상을 떠난 소재로 작자의 진정한 ‘벗’들이다. 자연을 즐기며 그 안에서 근심 없이 친구들을 찾고 있는 작자의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무척 평화롭고 한가하다. 속세의 번거로움을 모두 떨쳐 버리고 자연과 함께 삶을 살아가겠다는 작자의 인생관은, 죽림칠현에서 이어져 온 선인들의 처세관이기도 하다. 하얀 갈대꽃밭과 떼 지어 있는 갈매기들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의 시각적 이미지를 선사해 주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隱士)의 유한(悠閑)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 현대시조
조약돌
- 류제하
나비를 만나면 나비와 조잘대고
구름을 만나면 구름과도 조잘댄다
저 혼자 마냥 심심해도 조잘대는 조약돌
류제하(柳齊夏, 1940∼1991)는 1966년 시조문학 천료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활동한 시인이다. 조약돌 위에서 잠시 머무는 나비와 조잘대고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물 위를 비춰 지나가면 구름과도 무어라 무어라 조잘대고 있다. 나비도 지나가고 구름도 지나가고 나면 조약돌은 혼자가 되어 마냥 심심할 때쯤엔 끝없이 물이 흐르는 그 물소리와 조잘대고 또 조잘댄다. 조약돌의 ‘조’ 자를 의성화(擬聲化)하여 ‘조잘댄다’란 말을 활용하여 단순하면서도 리듬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조약돌은 얕은 냇물에 매끈매끈 닳아서 있는 돌이다. 그 돌 때문에 잔물결이 일어난다. 그 작은 파문이 조약돌과 조잘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