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30] 왕조실록박물관
[아! 대한민국-230] 왕조실록박물관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4.03.23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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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23년 11월 12일,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개관했다. 이 박물관에서, 그동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전시해오던 오대산 사고본 75책과 의궤 82책을 포함해 관련 유물 1,207점을 관리·전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박물관이 개관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제1대 국왕 태조로부터 제25대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年月日) 순으로 정리한 조선의 공식 국가기록물이다. 이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의 역사적 사실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 조선의 역사를 비롯한 한국학 연구에서 필수 자료라 말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의 공정성과 객관성 측면에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국의 기록물보다 월등하게 우수하다. 실록편찬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인 사관(史官)의 사초(史草)는 왕조차도 볼 수 없도록 엄격하게 관리되었는데, 이는 사관들이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이렇게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은 서울과 지방의 사고(史庫)에 보관되었는데,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후기에는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등 깊은 산속에 분산 보관했다. 이는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본 실록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이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겪으면서 실록의 안전한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왜란 이후 실록을 복간할 때 재정 여력이 부족해서 한 부는 정본 대신 최종 교정본을 사고에 봉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대산 사고본이다. 태종에서 명종 대에 이르는 오대산 사고본 실록은 왜란으로 소실된 실록의 복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오대산 사고에는 20세기 초까지 실록과 의궤를 포함해 총 4416책이 소장되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조선왕조실록 788책 전량이 일본의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고 그 가운데 상당량이 1923년의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불에 탔다. 가까스로 화마를 피한 일부 실록은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27책이 이전되었고, 2006년 도쿄대에 남아있던 47책이 서울대로 반환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 일본의 경매시장에 등장한 효종실록 1책을 국립고궁박물관이 추가로 사들였다. 조선왕조의궤 역시 비슷한 아픔을 겪어야 했는데, 오대산 사고본 의궤는 1922년 일본 궁내성으로 반출되었다가 2011년에야 돌아왔다. 이 의궤는 모두 19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고종·순종대 의궤로 일제가 조선 왕실을 일본 황실에 편입시켜 ‘왕공족실록(王公族實錄)’을 편찬하려는 의도로 반출한 것이었다.

개관된 박물관의 전시장에 펼쳐진 중종실록 첫 장에는 붉은 인장 두 개가 찍혀있다. 하나는 도쿄제국대학 도서인(圖書印), 다른 하나는 경성제국대학 도서장圖書 章)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돌아온 왕조실록의 아픈 역사가 표지 면지와 첫 장에 또렷이 남아있는 것이다.

오대산 사고본의 귀환은 학계는 물론 불교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불교계가 수년간의 격론 끝에 국회의 관련 결의안까지 끌어냈고, 마침내 기존 월정사의 성보박물관이 운영해 오던 왕조실록 의궤 박물관을 국고를 들여 새롭게 단장하여 조선왕조실록박물관으로 개관하게 된 것이다. 실로 오랜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야 비로소 오대산 사고본 실록과 의궤가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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