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27] 십장생도(十長生圖)
[아! 대한민국-227] 십장생도(十長生圖)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3.12.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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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십장생이란 오래 사는 동식물이나 경물을 가리킨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은 인간의 오랜 욕망으로, 실제로 그렇게 오래 사는 동식물을 그림으로 그려 소망을 담아냈으니, 이른바 십장생도가 그것이다. 십장생을 자연에서는 해(日), 달(月), 산(山), 내(川), 식물로는 대나무(竹), 소나무(松), 영지버섯(靈芝-불로초), 동물로는 거북, 학, 사슴 등을 일컫는다. 때로는 돌(石), 물(水), 구름(雲)을 꼽기도 하고, 신선이 먹는다는 천도 복숭아(天桃)를 넣기도 한다.

십장생은 대개 그림으로 그려져, 조선시대 궁중으로부터 민가에 이르기까지 아주 널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흥준 교수에 의하면, 십장생은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신선사상과 민간신앙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모상이며 관념체계라는 것이다. 같은 동양사회이지만 중국과 일본에는 십장생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장생은 있어도 십장생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십장생에 관한 기록이 있었으니, 고려말 목은 이색이 “우리 집에는 십장생 세화(歲畵-설맞이 그림)가 있는데, 10월인 지금도 아직 새 그림같다”고 노래했으며, 조선초 성현은 연초에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은 십장생에 대한 시를 남겼다.

십장생도상의 기본은 궁중에서 사용한 십장생도 병풍이었다. 8폭이나 10폭 병풍을 대폭의 화면으로 삼아 험준하면서도 환상적인 산자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아래쪽으로는 소나무, 천도 복숭아가 줄지어 펼쳐지며 그 사이로는 냇물과 사슴, 거북, 영지가 점점이 배치된다. 화면 위로는 해와 달이 떠있고, 학이 무리 지어 날고 있다. 불로장생의 현장 같기도 하고, 신선 세계의 풍광 같기도 하다.

십장생도[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비록 화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고, 주어진 도상을 그린 것이지만, 십장생도는 진채로 그려진 장엄한 청록 산수화로 강렬한 예술적 감동마저 불러 일으킨다. 고려시대에는 고려불화와 수월관음도가 있었다면 조선시대에는 궁중 장식화의 하나로 십장생도가 있었다고 할만하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십장생도 병풍을 많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왕과 왕비의 내전을 장식했던 실내장식용도 있고 옥외행사를 위해 상시 준비되어 있던 것도 있다. 왕실의 혼례나 환갑 같은 큰 잔치때는 별도의 십장생도 병풍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잘 그려진 왕실의 십장생도 병풍들은 거의 똑 같은 도상의 청록 진채화로 대개 19세기 작품들이다. 시대가 오래된 것이 없는 까닭은 실제로 사용하다가 장식 병풍이 낡으면 새로 만들어 교체했기 때문이다. 왕실의 그것은 그렇다 치고, 그 대신 민간 사이에서 민화(民畵)로 된 십장생도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여 그 후광을 메우고 있다.

본래 궁중의 십장생도 병풍은 민간에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일제 강점기에 와서 ‘이 왕가(李 王家) 유물’로 전락, 외부로 흘러나오면서 30여점 정도가 남아있다. 십장생도는 한동안 장식그림으로 취급되면서 본격적인 회화작품보다 낮게 평가되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일찍부터 한국적 특색이 강한 이 왕실 유물에 주목하여 외국의 박물관에 전하는 것이 많게 되었다. 더러는 왕이나 세자의 병이 완치된 것을 축하하거나 돌이나 회갑 때 장수를 기원하여 그린 기념화가 국내외에 꽤 많이 남아있다.

장생은 어디에나 있지만, 십장생과 십장생도는 조선에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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